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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당전쟁

: 건곤일척의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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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한국문화 top100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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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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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3년 09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458g | 152*225*16mm
ISBN13 9791190429320
ISBN10 1190429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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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요동 선제공격은 신의 한 수였다. 당은 북쪽 옛 고구려 지역에 신경 쓰느라 남쪽 옛 백제 지역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신라는 이 틈을 노려 전격적으로 웅진도독부를 차지했다. 원래 신라가 당과 전면전을 치르기 위해서는 북쪽의 안동도호부, 서쪽의 웅진도독부를 모두 감당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특수부대로 요동을 공격해 당의 이목을 돌린 후 주력부대로 웅진도독부를 전격적으로 장악한 것이다. 이제 신라 서쪽의 방어전면이 사라져버렸다. 신라는 서쪽 방어전면을 지키던 병력까지 북쪽으로 전환해 당군의 남하에 대비할 수 있었다. 만일 신라의 웅진도독부 점령이 늦어지고 그 사이 당군의 병력이 증원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당전쟁에서 신라의 승리는 장담하기 어려웠다.
--- p.14

신라군 5만 명이 백제 원정을 위해 동원되었다. 태종무열왕은 경북 상주에 위치한 금돌성金?城에 머물렀다. 7월 9일 신라군을 이끌던 김유신이 충남 논산에 위치한 황산벌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계백의 5,000 결사대가 신라군의 진격을 막아섰다. 신라군이 계백군을 4차례나 공격했지만 진군로는 쉽게 열리지 않았다. 결국 반굴盤屈, 관창官昌을 비롯한 화랑의 활약에 힘입어 신라군이 분발함으로써 계백군을 물리쳤다.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이 황산벌에서 계백과 전투를 벌일 무렵, 소정방이 이끄는 당군은 금강 하구로 진입하고 있었다. 7월 9일 소정방은 충남 서천에 위치한 기벌포伎伐浦에 상륙해 백제군과 전투를 벌였다. 당군은 금강 이북의 기벌포와 금강 이남의 군산 일대를 장악한 후 금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당군이 사비성 남쪽 합군 장소에 먼저 도착했다.
--- p.22

장기간 전쟁을 통해 장악한 비열홀 지역은 문무왕에게 있어서도 무척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만약 비열홀에서 당에 굴복해 물러난다면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며 수년간 전투를 수행해 왔던 신라로서는 지탱할 여력을 상실하게 된다. 특히 비열홀에 새로 임명된 신라 관리와 새로운 땅을 가지게 된 백성의 불만을 잠재우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전후 보상 문제에 민감하던 신라군의 사기도 자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신라 국왕의 권위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악화되었을 것이다. 전쟁의 미시적 원인 가운데 하나로 ‘좌절론’이 자주 언급된다. 좌절이란 행위의 연속 속에서 적절한 때에 고무된 목표?반응instigated goal-response의 발달을 방해하는 것이다. 사회의 정신적 유대관계가 붕괴되고 사람들이 방황하며 혼란과 불안을 느낄 때, 즉 사회가 좌절을 경험하는 시기에 이를 전쟁과 결부시킨다는 것이다.
--- p.38

수도 경주에서 오골성(봉황성)까지 거리는 740여 킬로미터다. 서울에서 오골성까지 거리는 400킬로미터 정도다. 당시 하루 행군 속도는 30리(12킬로미터) 내외였다. 설오유 부대가 경주 인근에서 출발했다고 한다면 62일이 소요된다. 서울 인근에서 출발했더라도 33일이 소요된다. 당시 행군로나 보급 상황을 무시한 도상圖上 계산이다. 대동강, 청천강, 압록강 등을 도하하는 데도 시간이 소모된다. 설오유 부대는 최소한 한두 달 이상 행군했다고 보아야 한다. 늦어도 670년 1월 무렵 이미 주둔지를 출발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부대의 편성이나 협조 관계는 늦어도 669년 하반기에 이루어져야 한다. 670년 3월 오골성 전투는 669년 전쟁 준비의 결과로 실행된 것이다.
--- p.54

그렇다면 671년 1월 설구성을 포위한 말갈병은 어떤 존재일까? 설구성 전투에 참가한 말갈병은 새롭게 투입된 병력일 가능성이 있다. 670년 3월 오골성 전투 때 등장한 말갈병이 오골성 전투 이후 웅진도독부로 투입되었을 수 있다. 하지만 웅진도독부 내 잔류 병력과 일부 증원된 말갈병만으로는 신라군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이때 당군이 웅진도독부를 구원하려 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웅진도독부는 670년부터 지속된 신라의 웅진도독부 공격을 막기 위해 당에 구원을 요청했다. 신라는 대아찬 진공과 아찬을 보내 대응케 했다. 이들은 군사를 거느리고 수군과 함께 옹포를 수비했다. 하지만 당군은 옹포를 지키던 신라 수군을 물리치고 금강 하구를 통해 옛 백제 영토로 진입했다.
--- p.73

석문 전투에서는 대아찬을 비롯한 신라의 진골귀족 상당수가 참전했다가 당군에게 참패를 당했다. 석문 전투를 지휘한 대표 장수는 의복·춘장이며 사망한 장수로는 대아찬 1명, 사찬 2명, 아찬 2명, 일길찬 2명 등이었다. 장창당 이외에는 투입된 부대를 확인하기 어렵지만 여러 당幢이 참전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석문 전투에 투입된 신라군은 신라의 정규군이라 할 수 있다. 672년 한시성·마읍성 전투와 백수성 인근 전투 그리고 석문 전투는 모두 황해도 일대에서 8월 한 달간 일어난 사건이다. 이는 672년 8월 이전 신라의 대규모 정규군이 황해도 지역에 미리 주둔하지 않고서는 시간상 설명하기 어려운 일정이다. 고구려 부흥 세력이나 당의 입장에서 신라 병력은 지원군이지만 신라 입장에서는 정규군을 파견한 군사 작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신라가 황해도 일대에 늦어도 672년에는 대규모 정규군을 파병·주둔시켜 당군의 남하에 대비한 사실을 알 수 있다.
--- p.93

유인궤 귀국 후 이근행이 안동진무대사安東鎭撫大使로 임명되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이근행의 직함이 ‘진무대사鎭撫大使’라는 점이다. 원정을 위한 행군이 아니라 방어적 성격의 ‘진鎭’이 편성된 것이다. 행군이 임시로 조직되는 정벌 부대라면 진수鎭守는 주둔해서 방어하는 성격을 지닌다. ‘군사軍使’는 진수를 통괄한다는 의미다. 당의 진수 연한은 1년이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길게는 2년에서 4년까지 주둔하기도 한다. 고간과 이근행의 행군은 670년에 편성되어 671년부터 675년까지 작전을 수행했다. 투입된 지 벌써 4년을 초과하고 있었다.
--- p.124

전쟁에서 전공을 세우고 나면 으레 포상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나당전쟁이 종결된 676년 11월 군부 세력에 대한 포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반反군부 세력인 허경종 계통의 이경현이 중서령으로 임명되었다. 물론 이경현이 중서령이 되었다고 해서 당장 군부 세력이 약화되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다만 상대적으로 반군부 세력이 중용되었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이것은 나당전쟁의 결과가 군부 세력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못한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나당전쟁을 주도한 군부 세력이 나당전쟁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했거나 결과적으로 패배했음을 시사한다.
--- p.153

이러한 연구를 수용해 오골성 전투에서 신라와 당의 교전은 없었다고 보는 견해가 끊이지 않고 제시된다. “고구려 무리가 서로 다시 반叛하자 조서를 내려 설인귀를 계림도행군총관으로 삼아 경략經略하게 했다”라는 『구당서』의 기록과 “고구려의 남은 무리가 반叛하자 계림도총관이 되었다”라는 『신당서』의 기록을 근거로 삼아, 설인귀의 계림도행군 편성은 고구려 부흥 세력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를 바탕으로 신라와 당의 최초 교전은 672년 8월 석문 전투라고 인식하기도 한다.
--- p.193

한편 신라는 고구려 포로 7,000명을 이끌고 경주로 돌아왔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11월 5일에 왕이 포로로 잡은 ‘고구려 사람’ 7,000명을 이끌고 서울로 돌아왔다”라고 되어 있다. 또 『삼국사기』 「설인귀서」에는 “지금 강한 적은 이미 없어졌고 원수들은 나라를 잃게 되어 ‘군사’와 말과 재물을 왕 또한 갖게 되었습니다”라고 전한다. 두 기록을 참조해보면, 신라 국왕이 가지게 된 군사는 고구려 사람 7,000명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p.221

『삼국사기』의 기록을 시간순으로 그대로 수용한다면 675년 전투 양상은 ①칠중성 전투(2월) ②천성 전투(9월) ③매소성 전투(9월 29일) ④아달성 전투 ⑤칠중성 전투 ⑥적목성 전투 ⑦석현성 전투 순이다. 하지만 ④아달성 전투는 675년 봄에 발생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⑦석현성 전투의 경우 그 위치가 명확하지 않다. 당군이 675년 2월 임진강을 건너 칠중성을 공격한 것과 9월 임진강 하구의 천성을 공격한 것, 그리고 신라군이 9월 29일 매소성에 주둔한 당군을 공격한 것은 분명하다.
--- p.240

토번은 662년에 최초로 서역로西域路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665년 소륵과 궁월은 토번을 끌어들여 우전을 공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토번의 본격적인 서역 진출 시기는 안서安西 4진鎭을 점령한 670년 4월이다. 토번의 안서 4진 점령은 당의 서역 경영에 큰 타격을 주었기 때문에, 당은 설인귀가 주도하는 나사도행군을 편성·투입한 것이다. 즉 당이 ‘토번위환吐蕃爲患’이라고 인식한 시기는 엄밀히 말하면, 1차적으로 나사도행군을 이끌던 설인귀가 대비천에서 패배한 670년이다. 결정적으로는 이경현이 청해에서 패배한 678년 이후라고 할 수 있다.
--- p.259

661년 고구려 원정 때는 장군 24명이 동원되었다. 백제가 이미 멸망한 상태였지만 완전히 평정한 상태가 아니었으므로 치안 유지와 후방 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병력은 남겨둔 것으로 보인다. 663년 백제 부흥군을 제압할 때는 장군 28명이 동원되었는데, 장군 수로써 감안해보면 661년 고구려 원정군 편성을 거의 그대로 이용하면서 약간 강화된 느낌을 준다. 다음으로 668년 고구려 원정의 경우 장군 28명이 동원되고 임시 편성 군단으로 여겨지는 경정京停 이 동원된 점 등으로 볼 때 신라의 전력을 기울인 행군 편성으로 판단된다. 668년에는 백제라는 후방의 위험 요소가 제거된 상황이므로 661년의 고구려 원정군 편성 시보다 동원 규모가 더욱 확장되었을 것이며, 백제 원정 시보다 행군 거리가 멀기 때문에 보다 많은 치중병과 지원병이 동원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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