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서울은 예상 외로 무더웠다. 도모미朋美와 어머니 기요코淸子, 그리고 외동딸 유메나夢奈 세 사람은 경복궁 넓은 부지 여기저기를 함께 돌아다니다 지쳐버려서 시내 관광을 서둘러 끝내고 호텔로 돌아왔다. 자기 회사를 운영하는 어머니는 활력이 넘친다고 생각했지만 일흔을 넘긴 뒤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은 때가 잦았다. 체력도 몽땅 소진된 것 같았고, 조금 전까지는 방에서 선잠을 자다가 그 뒤 스파에 갔다. 호화로운 것을 좋아하는 어머니에 맞춰 선택한 웨스틴조선호텔의 이그제큐티브 플로어에 묵고 있다. 여기는 입지도 좋고 중학교 3학년인 유메나의 물욕을 만족시키는 명동 거리로부터도 가깝다.
샤워를 마치고 목이 말랐던 도모미는 이그제큐티브 플로어 숙박객 전용 라운지로 왔다. 라운지는 칵테일 타임으로, 비즈니스맨처럼 보이는 백인 남성 두 사람이 맥주잔을 한 손에 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중국인 커플이 커피와 스위츠를 앞에 두고 미소를 짓고 있다. 유리창 너머 내려다보이는 서울시청 앞 광장에는 곧 야외 콘서트가 열리는지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월드컵 때는 이 광장에 설치된 스크린 앞에 엄청난 군중이 모여 압도당했던 일이 생각난다. 자기와 한국과의 벗어날 수 없는 연결고리를 생각하면서 혼자서 샴페인을 마신다.
도모미는 일 때문에 셀 수 없을 정도로 한국을 오가고 있다. 작가로서 처음 취재하러 왔던 때가 1992년이었다. 그 후 한류 붐이 일었고 한국과 관련된 기사를 쓰는 일이 잦아졌다. 드라마나 영화, 음악, 음식이나 거리 소개 등 한국의 사정에 밝은 작가로서 일은 계속 이어졌지만 그것도 근년 들어 차츰 줄어들다가 재작년쯤부터는 점점 없어졌다.
“야, 엄마다-.”
K-POP에 푹 빠져 한국이 무조건 좋다는 유메나가 옆에 앉았다.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우면서 배우는 즉시 그 말을 쓰고 싶어 한다.
“텔레비전은 다 봤어?”
“응, 나중에 또 볼 거야. 나도 뭐 마실래.”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소의 반항기는 있지만 걱정거리 없이 자라주었다고 유메나의 등을 보면서 가만히 생각한다.
“나도 마실까?” 어머니가 와서 도모미 맞은편 자리에 앉는다.
“사우나는 어땠어요?”
나쁘지 않았어.”
어머니는 플로어의 종업원에게 샴페인을 주문했다. 유메나가 접시에 과일을 수북하게 담아온다.
“저기, 할머니, 내일은 어디 가나요? 서울 재미있어요. 와서 좋았어요. 아빠도 함께 왔다면 좋았을 텐데.”
들뜬 듯이 말하는 유메나는 첫 번째 한국방문을 만끽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할머니가 한국에 처음 왔다고는 생각 못 했어요.”
“유메나는 정말로 한국이 좋은가 보네.” 어머니가 웃음을 띠며 말한다.
“응, 한국인 남자친구가 생겼으면 좋겠어. EXO의 찬열 같은.”
“잘 모르겠는데 한국 탤런트야?”
“아이돌이야. 할머니 몰라?”
유메나는 EXO라는 K-POP 아이돌 그룹이 중국이나 일본에서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자기가 그 아이돌 그룹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열띠게 말했다. 어머니는 몹시 귀여운 듯 눈을 가늘게 뜨면서 듣고 있다.
“유메나처럼 할머니도 그랬어.”
어머니는 거기서 샴페인을 한 모금 마셨다.
“젊었을 때, 정말 좋아했던 사람이 한국인이었어.”
도모미가 깜짝 놀라 어머니의 얼굴을 보자 어머니는 도모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면서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그랬구나-.”
유메나가 눈을 빛낸다.
“할머니가 좋아했던 사람, 어떤 사람이었어?
“뜻이 높고 훌륭한 사람이었어.”
“잘 생겼었어?”
“응, 장난 아니었지.”
“지금도 그 사람 좋아?”
“글쎄.” 어머니는 중얼거리며 창밖으로 눈길을 보낸다. 하늘에 상현달이 떠 있다.
“계속 좋아했어. 싫어하려고 해도 그럴 수 없었어.”
“그렇다면 헤어지지 않았으면 좋았잖아.”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어.”
어머니는 유메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달을 볼 때마다 그 사람도 이 달을 어딘가에서 보고 있겠거니 생각하면 가슴이 괴로워져.”
“그렇구나, 할머니의 사랑은, 열렬했구나.”
유메나는 제법 그럴 듯하게 말하면서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좋아했던 그 사람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에게는 비밀이었어?”
유메나에게는,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고 설명하고 있다. 복잡한 사정을 말하기에는 아직 너무 어린 까닭이다.
“마음 한 구석에 계속 담아 두고만 있었는데, 서울에 오니까 생각나고 말았네. 그리고 할머니가 아직 젊었을 때 친했던 일가도 한국 사람들이었고 그들과 많은 추억이 있어.”
“그 사람들, 뭐하고 있어? 한국에 있어? 만나러 가면 되잖아.”
“언젠가 만나고 싶어.” 어머니가 그늘진 표정이 된다.
“뭔가, 할머니, 한국과 인연이 있네.”
“이웃 나라이니까 인연이 깊은 거야, 그래도 지금 한국인이라는 것만으로 싫어하거나 험하게 말하거나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유메나는 절대로 그런 사람이 되면 안 돼. 그리고 한국인이기 때문에 좋다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아. 어느 나라 사람인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해.”
“당연하죠, 할머니.”
유메나는 뾰로통한 얼굴로 휴대전화의 시각 표시를 확인한다. 설교풍의 이야기라고 느끼면 곧바로 찌무룩해 하는 것은 사춘기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지도 모른다.
“M카가 시작될 시간이네, 방으로 갈 거야.” 자리에서 일어나 가버렸다. M카란 ‘M COUNTDOWN’의 약칭이다. 한국 케이블 텔레비전 음악방송으로 유메나는 일본에서도 매주 빼먹지 않고 M카를 보고 있다.
두 사람만 남게 되자 어느 쪽이랄 것도 없이 잠자코 있다. 이제서야 이렇게 마음 편하게 어머니와 마주 앉아 있을 수 있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가슴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온다. 한때는 어머니와 인연을 끊고 싶다고까지 생각했다.
---「프롤로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