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한 장의 사진이 가장 기괴하다. 이제는 나이를 짐작할 수도 없을 정도다. 머리는 희끗희끗하다. 그런 남자가 몹시 더러운 방(방 벽이 세 군데 정도 허물어져 내린 것이 그 사진에 뚜렷하게 찍혀 있었다.) 한쪽 구석에서 작은 화로에 양손을 쪼이고 있는데, 이번에는 웃고 있지 않다. 아무런 표정이 없다. 말하자면 쭈그리고 앉아 화로에 양손을 쪼이다가 그냥 그대로 죽어간 것 같은, 정말로 기분 나쁘고 불길한 냄새를 풍기는 사진이다. 이상한 것은 그뿐이 아니다. 그 사진에는 얼굴이 비교적 크게 찍혀 있어서 그 생김새를 자세히 살펴볼 수가 있었는데 이마도 평범, 이마의 주름도 평범, 눈썹도 평범, 눈도 평범, 코도 입도 턱도... 아아, 그 얼굴에는 표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인상조차 없다. 특징이 없는 것이다. 예컨대 내가 이 사진을 보고 나서 눈을 감는다 치자. 나는 이미 그 얼굴을 잊어버렸다. 방 벽과 작은 화로는 생각나지만 방 주인의 얼굴은 안개가 스러지듯 사라져서 아무리 애를 써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얼굴이다. 만화조차도 안 된다. 눈을 뜬다. 아아, 이런 얼굴이었지. 이제 생각났다. 이런 기쁨조차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눈을 뜨고 사진을 다시 봐도 생각나지 않는 얼굴이다. 그저 무턱대고 역겹고 짜증나고, 나도 모르게 눈길을 돌리고 싶어진다.
소위 '죽을 상'이라는 것에도 뭔가 좀 더 표정이라든가 인상이라든가 그런 것이 있을 텐데, 사람 몸뚱이에다 짐 끄는 말의 목이라도 갖다 붙이면 이런 인상이 되려나? 어쨌든 딱히 무엇 떄문이랄 수도 없이 보는 사람을 섬뜩하고 역겹게 한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기묘한 얼굴의 남자를 역시 본 적이 한번도 없다.
--- pp.11~12
저희는 그때 희극 명사, 비극 명사 알아맞히기 놀이를 하였습니다. 이것은 제가 발명한 놀이로, 명사에는 모두 남성명사, 여성명사, 중성명사 등의 구별이 있는데 그렇다면 희극 명사, 비극 명사의 구별도 있어야 마땅하다. 예컨대 증기선과 기차는 둘 다 비극명사고 전철과 버스는 둘 다 희그 명사다. 왜 그런지를 이해 못하는 자는 예술을 논할 자격이 없다. 희극에 하나라도 비극 명사를 삽입하는 극작가는 이이 그것만으로도 낙제. 비극의 경우도 똑같다는 논법입니다.
"자, 준비됐어? 담배는?"
제가 묻습니다.
"비(비극명사의 준말)."
호리키가 일언지하에 대답합니다.
"약은?"
"가루약이야 알약이야?"
"주사."
"비."
"그럴까? 호르몬 주사도 있는데 말이야."
"아니야 단연코 비지. 주사 바늘이라는 게 우선 훌륭한 비 아닌가?"
"좋아 인정해 주지. 그렇지만 자네, 약이나 의사는 말이야, 그래 보여도 제법 희(희극명사의 준말)라고. 죽음은?"
"희. 목사도 중도 그렇지."
"아주 잘했어.그리고 삶은 비지."
"아니. 그것도 희."
'아니야. 그렇게 되면 모든 게 희가 돼버려. 그럼 하나만 더 묻겠는데, 만화가는? 설마하니 희라고 하지는 않겠지."
"비, 비. 대비극 명사."
"뭐야, 대(大)비는 자네 쪽이지."
이런 시시껄렁한 익살이 되어버리면 재미없습니다만, 저희는 그 놀이가 일찍이 온 세상의 살롱에 한번도 존재한 적 없는 극히 재치있는 놀이라고 득의만만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p.110
어제는 테쓰한테 칼모틴을 사오라고 마을 약국에 심부름을 보냈더니 여느 때의 상자와는 다른 칼모틴을 사왔는데,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전에 열 알 정도 먹고 나서 도통 잠이 오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던 차에 배가 이상해져서 서둘러 화장실에 갔더니 맹렬한 설사가이어졌습니다. 게다가 그러고 나서도 연달아 세 번이나 화장실에 갔던 것입니다. 하도 이상해서 약상자를 잘 살펴보니 그것은 헤노모틴이라는 설사약이었습니다.
저는 똑바로 누워서 배에 유단포를 올려놓고, 테쓰에게 잔소리를 하려고 했습니다.
"이봐, 이건 칼모틴이 아니야. 헤노모틴이지."
그렇게 말하다 말고 후후 웃어버렸습니다. 아무래도 '폐인'이란 단어는 희극 명사인 것 같습니다. 잠들려고 먹은 것이 설사약이고, 게다가 그 설사약 이름은 헤노모틴이라니.
--- p.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