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그래서, 금능리』
‘제주에 살아서 좋습니까?’라는 질문이라면 무조건 ‘YES!’ 소문자 예스가 아닌 대문자 예스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경제활동은 금능에서 〈아베끄〉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책방이 제 아무리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해도, 금능에서 책방을 한다는 나의 정체성이 유지된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에 살아서 좋다’는 대답을 살짝 고쳐야겠다. 제주에 살아서 좋은 게 아니라, 금능에 살아서 좋다.
--- 「제주 책방 〈아베끄〉입니다」 중에서
_『그래서, 삼도동』
매일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회사로 출근하는 길. 제주 중앙초등학교를 항상 지나간다. 중앙이라는 단어 때문인지 제주에서 가장 크고, 학생도 많을 것 같지만 학교 크기에 비하면 학생 수는 현저히 적다. 저녁이면 학교 운동장은 동네 주민들의 만남의 장소가 된다. 헬스장에 갈 필요가 없다. 서울에서는 퇴근할 시간이면 퇴근하기 바쁘고, 지옥철부터 떠올리는데 여기서는 퇴근길도 멈추게 한다. 몰래 농구공을 사서 혼자 농구를 했는데 어느새 동네 주민들과 같이 팀을 짜서 내기 농구를 하는 나를 보기도 한다. 삼도동에서 같이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저녁 시간을 이렇게 보낼 수 있다니. 그래서 이 곳만큼은 해가 늦게 졌으면 좋겠다.
--- 「삼도동에 살고 있어요」 중에서
_『그래서, 송당리』
쉬지 않고 지붕과 창을 때리는 빗소리, 거의 비워져 얼룩만 남은 세 개의 커피잔과 몸을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짚단의 자근자근한 감촉에서 느껴지는 고즈넉한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그보다 좋았던 것은 그곳에 켜켜이 쌓여가는 일상과 여행을 지켜보는 즐거움이었습니다. 이따금 웃는 얼굴로 들어서는 마을 주민과 푸근하게 그를 맞는 산장지기, 제주에서의 꿈을 이뤄가고 있는 H의 일상과 모처럼 이 섬을 찾은 이들이 품고 있는 여행의 설렘들이 그 공간을 중심으로 공존하고 교차하는 풍경, 그 어지러움을 보고 듣는 것이 좋았습니다. 어쩌면 자연과 신화, 신과 사람이 공존하는 송당 마을이라 더 진한 향을 풍긴 건지도 모르겠어요. 복작대는 도시를 늘 숨 막혀 하는 제가 ‘이런 소란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야’라는 생각을 다 했으니.
--- 「제주의 조각, 우리의 단어」 중에서
_『그래서, 신창리』
그렇게 제주의 바다, 바람, 노을이 나를 도와준 덕에 무사히 집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하고 나서야 깨달았던 것은 한림에서 신창까지 무려 3시간 가까이를 걸었다는 사실이었다. 고작 빨래만 했을 뿐인 나는 도대체 어떤 하루를 보낸 걸까. 만신창이로 집에 들어와 방구석으로 시선을 옮겼다. 열어 놓은 캐리어 한 켠에 자리한 서울에서부터 꼭꼭 싸왔던 세탁 세제가 유독 눈에 띄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옷가지들을 벗은 뒤 다시 한 번 세제를 바라보고 ‘또 빨래를 하러 가야겠구나.’ 생각하며 나는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아무렴 어떤가 싶었다.
--- 「그 해 여름, 제주」 중에서
_『그래서, 우도와 제주도의 책방들』
사람들은 왜 제주까지 가느냐 물었지만, 지구 반대편에 있는 그를 만나러 잘만 오갔던 내 입장에서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랑을 하러 유럽도 가는데, 이별을 기념하러 제주는 왜 못 가? 생각했다. 헤어진 책 덕에 새로 만나게 된 인연이 많다는 것만으로 기쁜데, 친한 친구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한 마음을 저 멀리 섬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서 본전이나 수익은 생각할 바가 아니었다. 그와의 이별을 팔아서 돈이나 벌어보자 생각한 건 사실이지만, 그와의 이별을 빌미로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니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묘한 쾌감마저 느껴졌다. 이 이별의 최종 승자는 나인 것 같은 근거 없는 쾌감! 너 없이 잘 사는 것을 넘어서서, 나는 니가 없어져서 새로운 챕터를 열었단다 하는 이상한 기쁨! 그런 기념비적인 책을 디자인까지 내 손으로 해내고 나서 예쁜 내 새끼가 서점 어디에 놓이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부족한 점 많은 내 새끼 부디 잘 좀 봐주십사 하는 부탁도 얼굴 보고 드리고 싶어졌던 것이다.
--- 「제주도 남자 만나지 마세요」 중에서
_『그래서, 조천리』
조천리를 처음 만났던 때는 뚜벅이 여행을 하던 2015년의 어느 봄날이었다. 섬의 곳곳을 느린 걸음으로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 한창 제주올레를 걷고 있을 시기였다. 제주시에서부터 시작된 올레 18코스는 봄바람에 흔들리는 유채꽃 옆으로, 한 낮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위로 기분 좋게 이어졌다. 얼마나 걸었을까. 아름다운 제주의 북쪽 해안으로 이어지던 길은 나를 자연스럽게 조천리로 이끌었다.
--- 「이야기가 흐르는 오랜 마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