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일꾼일 바엔 남의 세토 마지기라도 얻어 제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30을 바라보도록 남의 집 머슴살이만 하고 다니던 코삐뚤이 삼복이가 하루아침 무슨 생각이 났던지, 돈벌이를 간답시고, 조석이 간데없는 부모에게 처자식 떠맡기고는 훌쩍 일본으로 떠나버렸다. 그것이 열두해 전. 떠난 지 7, 8년을 별반 신통한 벌이도 못 하는지, 돈 한 푼 보내는 싹도 없더니, 하루는 느닷없이 중국 상해에 와 있노라 기별이 전해져왔다. 그러고는 감감 소식이 없다가 3년 만에 퍼뜩 고향엘 돌아왔다. 10여 년을, 저의 말마따나 동양 3국 물 골고루 먹고 다녔으면서, 별로이 때가 벗은 것도 없어 보이고, 행색은 해어진 양복 누더기에 볼 꿰어진 구두짝을 꿰고 들어서는 모양이, 군데군데 김질은 하였으나 빨아 다린 무명 고의적삼을 입고 고향을 떠날 적보다 차라리 초라한 것 같았다.
---「미스터 방」중에서
한생원은 참으로 일본이 항복을 하였고, 조선은 독립이 되었다는 그날― 8월 15일 적보다도 신이 나는 소식이었다. 자기가 한 말豫言이 꿈결같이도 이렇게 와 들어맞다니…… 그리고 자기가 한 말대로, 자기가 일인에게 팔아넘긴 땅이 꿈결같이도 도로 자기의 것이 되게 되었다니…… 이런 세상에 신기하고 희한할 도리라고는 없었다. 조선이 독립이 되었다는 8월 15일, 그때는 한생원은 섬뻑 만세를 부르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았어도, 이번에는 저절로 만세 소리가 나와지려고 하였다. 8월 15일 적에 마을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설도를 하여 태극기를 만들고, 닭을 추렴하고 술을 사고 하여놓고 조촐히 만세를 불렀다. 한생원은 그 자리에 참례를 하지 아니하였다. 남들이 가서 같이 만세를 부르자고 하였으나 한생원은 조선이 독립이 되었다는 것이 별양 반가운 줄을 모르겠었다. 그저 덤덤할 뿐이었
---「논 이야기」중에서
게다가 사월의 긴긴 해에 한낮이 훨씬 겨워 거진 새때나 되었으니 안먹은 점심이 시장하기까지 하다. 끙끙 힘을 쓰는 소리에 지게가 삐이득뼈이득, 지게 밑에 매달린 밥 바구니가 다그닥다그닥 서로 궁상맞게 대답을 한다. 중간에 한 번이나 두 번은 쉬었어야 할 것이지만, 고집이 그대로 떠받고 올라간다. 지게 밑으로 통통하니 알이 밴 새까만 두 다리가 퇴육살이 불끈불끈 터지기라도 할 것 같다. 고개 마루턱에 겨우겨우 올라서자 휘유 휙 쟁그랍게 숨을 몰아 내쉬면서 한옆으로 나뭇지게를 받쳐놓고 일어선다. “작것이! 나는 저 때문에 이렇기…….” 미럭쇠는 공동묘지께를 힐끔 돌려다보고는 두런두런, 허리의 수건을 뽑아 땀 흐르는 얼굴을 쓱쓱 씻는다.
---「쑥국새」중에서
“허! 그게 안 된 생각이야…… 자기가 먹고 살 재산이 있으면서 사회를 위해서 일도 아니하고 번들번들 논다는 것은 그것은 타락된 생각이야.” P는 K사장이 억담을 내세우는 것을 보고 속으로 싱그레 웃었다. “그렇지만 지금 조선 농촌에서는 문맹퇴치니 생활개선이니 합네 하고 손끝이 하얀 대학이나 전문학교 졸업생들이 몰켜오는 것을 그다지 반겨하기는커녕 머릿살을 앓을 것입니다…… 농민이 우매하다든지 문화가 뒤떨어졌다든지 또 생활이 비참한 것이 근본 원인이 기역 니은을 모른다든가 생활개선을 할 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니까요. 그러고 조선의 지식청년들이 모두 그런 인도주의자가 되어집니까?” “되면 되지 안 될 건 무어야?” “그건 인도주의란 그것이 한개 공상이니까 그렇겠지요.” “허허…… 그러면 P는 XX주의잔가?”
---「레디메이드 인생」중에서
내지여자가 참 좋지요. 나는 죄선여자는 거저 주어도 싫어요. 구식 여자는 얌전은 해도 무식해서 내지인하고 교제하는 데 안 됐고, 신식 여자는 식자나 들었다는 게 건방져서 못쓰고, 도무지 그래서 죄선여자는 신식이고 구식이고 다 제바리여요. 내지여자가 참 좋지 뭐. 인물이 개개 일자로 이쁘겠다, 얌전하겠다, 상냥하겠다, 지식이 있어도 건방지지 않겠다. 좀이나 좋아! 그리고 내지여자한테 장가만 드는 게 아니라 성명도 내지인 성명으로 갈고 집도 내지인 집에서 살고 옷도 내지 옷을 입고 밥도 내지식으로 먹고 아이들도 내지인 이름을 지어서 내지인 학교에 보내고……. 내지인 학교라야지 죄선 학교는 너절해서 아이들 버려놓기나 꼭 알맞지요. 그리고 나도 죄선말은 싹 걷어치우고 국어만 쓰고요.
---「치숙」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