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제 이야기하려는 백성수의 아버지도 또한 천분 많은 음악가였습니다. 나와는 동창생이었는데 학생 시대부터 벌써 그의 천분은 넉넉히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작곡과를 전공하였는데 때때로 스스로 작곡을 하여서는 밤중에 혼자서 피아노를 두드리고 하여서 우리들로 하여금 뜻하지 않고 일어나게 하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밤중에 울리어 오는 야성적 선율에 몸을 소스라치고 하였습니다.
그는 야인野人이었습니다. 광포스러운 야성은 때때로 비위에 틀리면 선생을 두들기기가 예사이며 우리 학교 근처의 술집이며 모든 상점 주인들은 그에게 매깨나 안 얻어맞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야성은 그의 음악 속에 풍부히 잠겨 있어서 오히려 그 야성적 힘이 그의 예술을 더 빛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광염 소나타」중에서
기자묘 솔밭에 송충이가 끓었다. 그때, 평양 ‘부府’에서는 그 송충이를 잡는 데(은혜를 베푸는 뜻으로) 칠성문 밖 빈민굴의 여인들을 인부로 쓰게 되었다.
빈민굴 여인들은 모두 다 지원을 하였다. 그러나 뽑힌 것은 겨우 오십 명쯤이었다. 복녀도 그 뽑힌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복녀는 열심으로 송충이를 잡았다. 소나무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서는, 송충이를 집게로 집어서 약물에 잡아 넣고 잡아 넣고, 그의 통은 잠깐 새에 차고 하였다. 하루에 삼십이 전씩의 공전이 그의 손에 들어왔다.
그러나 대엿새 하는 동안에 그는 이상한 현상을 하나 발견하였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젊은 여인부 한 여남은 사람은 언제나 송충이는 안 잡고 아래서 지절거리며 웃고 날뛰기만 하고 있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놀고 있는 인부의 공전은 일하는 사람의 공전보다 팔 전이나 더 많이 내어주는 것이다.
---「감자」중에서
이 일을 잘 아는 나는, M이 결혼을 안 하는 이유를 여기다가 연결시켜 가지고, 그의 도덕심(?)에 동정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일생을 빈곤한 가운데서 보내고, 늙은 뒤에도 슬하도 없이 쓸쓸하게 지낼 그, 더구나 자기를 봉양할 슬하가 없기 때문에, 백발이 되도록 제 손으로 이 고해를 헤엄치어 나갈 그는, 과연 한 가련한 존재이겠습니다.
이렇던 M이 어느덧 우리의 모르는 틈에 우물쭈물 혼약을 한 것이외다.
하기는 며칠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을 먹은 뒤에, 혼자서 신간 치료보고서를 읽고 있을 때에 M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비교적 어두운 얼굴로서, 내가 묻는 이야기에도 그다지 시원치 않은 듯이 입술엣대답을 억지로 하고 있다가, 이런 질문을 나에게 던졌습니다.
“남자가 매독을 앓으면 생식을 못 하나?”
---「발가락이 닮았다」중에서
그 사진을 가리키며 혜경에게 묻는 L 군의 구조口調에는 얼마간의 적개심이 나타나 있었다.
“제 주인 되는 양반이올시다.”
“그렇습니까? 훌륭한 분이올시다.”
이렇게 대꾸는 하였다. 그러나 그날 밤 L 군은 잠을 자지 못하였다. 아까 낮에 혜경의 방에서 본 사진이 연하여 L 군의 눈앞에 어릿거렸다.
미남자, 호남자, 풍채 좋은 남자…… 세상에서 보통 풍채 좋은 남자를 가리켜 부르는 명사가 꽤 많이 있지만, L 군은 아직껏 아까 본 그 사진의 주인과 같은 호남아를 본 일이 없었다.
얼굴이 계집같이 이쁘게 생겼다기보다 남자답고 고귀하게 생긴 그 사진의 주인은, 옛날 희랍 조각에는 혹시 있을지 모르나 현세에 생존하는 인물로는 있을 수가 없을 만치 절세의 풍채 좋은인물이었다
---「사진과 편지」중에서
그러나 곰네에게는 그런 달끔한 시절은 없었다.
그래도 변한 데가 있었다.
남의 집에서 일하다가 밤늦게 혼자 쓸쓸한 제집으로 돌아오기가 싫은 때가 간간 있었다. 남편이 농터에서 농사짓는데 점심때쯤 그 아내가 밥 광주리를 이고 어린애를 등에 달고 농터로 찾아오는 것이 부러운 생각도 간간 났다. 누구가 혼사를 하였다, 누구가 상처를 하였다. 하는 소문이 귀에 심상치 않게 들리는 때가 잦아졌다.
게다가, 동리 여인들이
“곰네도 시집을 가야디 않나.”
“데리다가는 체니루 늙갔네.”
하는 소리며,
“부모가 없으니 누가 혼인을 주장해줄 사람이 있어야디.”
“힘 세서 새서방 얻어두 일은 세차게 잘할 테야.”
이런 소리들이 차차 귀에 솔깃하게 들렸다.
---「곰네」중에서
그 뒤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또 어디 땅이 뉘 손에 들어갔단 말을 들었다.
황 주사는 때때로 땅을 처분할 일이 있을 때만 집에 돌아왔지, 그밖에는 대개 서울, 평양 등지에 있었다.
십 년이라는 세월이 또한 흘러갔다.
대대로 몇 대를 이 근방의 재산가요 세력가이던 황 씨의 집안은 볼 나위가 없이 되었다. 토지는 거의 남의 손에 넘어가고, 남은 것이 얼마가 안 되었다. 종들도 모두 팔았다. 집도 사랑채를 따로 떼어 팔고 하여 지금은 노마님의 큰방과 주사의 아내와 어린아이들이 있는 건넌방과, 행랑과, 송 서방의 방, 그밖에는 부엌과 청간廳間 뿐이었다.
송 서방에게는 거짓말과 같은 변화였다. 모든 일이 다 머리에 잘 들어박히지 않는 것이 꿈의 일과 같았다.
---「송동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