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그중 큰 과목밭을 갖고 그중 여유 있는 생활을 하여가는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잊어버렸으나 동리 사람들이 부르기를 오 생원이라고 불렀다.
얼굴이 동탕하고 목소리가 마치 여름에 버드나무에 앉아서 길게 목 늘여 우는 매미 소리같이 저르렁저르렁하였다.
그는 몹시 부지런한 중년 늙은이로 아침이면 새벽 일찍이 일어나서 앞뒤로 뒷짐을 지고 돌아다니며 집안일을 보살피는데 그 동리에는 그가 마치 시계와 같아서 그가 일어나는 때가 동리 사람이 일어나는 때였다. 만일 그가 아침에 돌아다니며 잔소리를 하지 않으면 동리 사람들이 이상하여 그의 집으로 가보면 그는 반드시 몸이 불편하여 누웠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때는 일 년 삼백육십 일에 한 번 있기가 어려운 일이요, 이태나 삼 년에 한 번 있거나 말거나 하였다.
---「벙어리 삼룡이」중에서
“아, 그 애 녀석도, 눈이 없는가? 왜 앞을 보지 못해?”
하는 소리를 듣고서는 쥐구멍으로라도 들어가 버리고 싶도록 온몸이 옴츠러졌다. 그리고 또 자기 뒤로 따라 나오며 주먹을 들고서 때리려 덤비는 자기 어머니가,
“이 망할 녀석, 눈깔을 얻다 팔아먹고 다니느냐?”
하고 덤비는 듯하여 질겁을 하여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있더니 보기 싫은 젖퉁이를 털럭털럭하면서 어머니가 쫓아 나왔다.
“이 망할 녀석, 눈깔이 없니? 나리 마님 새 버선에다가 그것이 무엇이냐? 왜 그렇게 질뚱바리냐, 사람의 자식이.”
어머니는 그래도 말이 적었다. 그러고는 곧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진태는 간이 콩알만 하게 무서운 것은 둘째 쳐놓고, 웬일인지 분한 생각이 난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자기 잘못 같지는 않다. 자기가 눈 삼태기를 들고 가는데 교장 어른이 딴생각을 하면서 오시다가 닥달린 것이지 자기가 한눈을 팔다가 그리한 것은 아니다.
---「행랑 자식」중에서
“온 천만의 소리를 다 하는구나. 그게 무슨 소리냐. 너도 아다시피 내가 너를 장난삼아 그러는 것도 아니겠고 후사가 없어 그러는 것이니까 네가 내 아들이나 하나 나주렴. 그러면 내 것이 모두 네 것이 되지 않겠니? 자아, 그러지 말고 오늘 허락을 하렴. 그러면 내일이라도 방원이란 놈을 내쫓고 너를 불러들일 터이니.”
“어떻게 내쫓을 수가 있에요.”
“허어, 그것이 그리 어려울 것이 무엇 있니? 내가 나가라는데 제가 나가지 않고 배길 줄 아니?”
“그렇지만 너무 과하지 않을까요?”
“무엇? 저런 생각을 하니까 네가 이 모양으로 이때까지 있었지. 어떻단 말이냐? 그런 것은 조금도 염려하지 말구, 자 또 네 서방에게 들킬라 어서 들어가자.”
“먼저 들어가세요.”
“왜?”
“남이 보면 수상히 알게요.”
---「물레방아」중에서
수님이는 조금 여윈 얼굴에 봄철에 늘어진 버들가지같이 이리저리 겨 묻은 머리털이 두서너 줄 섬세하게 내리덮인 두 눈에 근심스러운 빛을 띠고서 다시 쌔근쌔근 코가 메이어 숨소리가 높은 어린애를 보더니,
“그럼 어떻게 하나. 돈이 있어야 또 약을 지어 오지, 오늘 번 돈이라고는 어제보다 쌀이 나빠서 어떻게 뉘와 돌이 많은지 사십 전밖에 못 벌었는데 이것으로 약을 또 지어 오면 내일 아침 쌀 못 팔 텐데.”
하며 다시 고개를 돌려 자기 어머니를 쳐다보다가 어머니 얼굴이 불쾌해 보이니까 다시 고개를 어린애 편으로 돌리자 어린애는 무엇에 놀랐는지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두 손을 공중으로 대고 산약山藥 같은 손가락을 벌리고서 바늘에 찔린 듯이 와아 하고 운다.
수님이는 우는 소리를 듣더니 질겁을 해서 어린애를 끼어안고 허리춤에서 젖을 꺼내어 물려주며,
“오, 오, 우지 마, 우지 마.”
---「자기를 찾기 전」중에서
“진지 잡수셔요.”
하는 은령銀鈴 같은 소리가 들린다. 그 목소리 하나만 가져도 미인 노릇을 할 듯한 여성의 소리이다. 깜깜한 난취한 세상에서 가인의 노래를 듣는 듯이 피가 돌고 가슴이 뛰고 마음이 공중에 뜬다.
“밥?”
높은 기계를 솔로 쓸면서 오만스럽게 대답을 한다. 그것으로써 내외인 것을 짐작하였다.
“이리 와서 이 손님 면도를 좀 해드려.”
하는 소리가 분명치 못하게 들리었다. 나는 그 소리를 분명히 이해할 때까지 적어도 이 분은 걸렸다. 왜 그런고 하니 여편네더러 그렇게 손님의 면도를 하라고 할 리가 없는 까닭이다. 그러할 리가 있기는 있다. 동경서 여자가 머리를 깎는 이발관이 한두 군데가 아니지마는 자기의 머리를 여자가 깎아준다는 것까지는 아주 예상 밖인 까닭이다.
---「여이발사」중에서
“아따 퍽도 그러네. 편지를 한두 장 받는 터가 아니요, 어떻게 안단 말이오. 하지만 누군지는 몰라도 남에게 편지를 하려면 자기의 이름과 주소를 쓰는 법이지…… 아냐 도루 우체통에 넣어버려.”
하고 짐짓 화나는 체하고 편지를 뜯지도 않고 장머리에다 올려놓았다. 그것은 아내의 마음이 풀리면 슬그머니
갖다 보자는 수작이다.
“왜 보시지를 않소? 어서 보고 가보시구려. 내 혼자 집 보고있을게.”
서로 이렇게 찧고 까불다가 아내가,
“대관절 나는 혼자 살림살이는 참 못 하겠소.”
하고 주인의 약점을 쥐인지라 거침없이 요구가 나온다.
“할멈이 간 후에 혼자 숱한 살림살이를 하자니까 사람이 죽겠구려.”
“왜 사람 하나를 얻으라니까 얻지 않고 그래.”
“사람이 어디 그렇게 입에 맞은 떡처럼 있소.”
---「계집 하인」중에서
“무슨 화가 그렇게 나셔요?”
하며 혼자 빙그레 웃는다. 마누라는,
“그것을 알아 무엇해.”
하고 소리를 지르니까 더부살이는 하려는 말이 쑥 들어가며 혓바닥을 내밀었다 다시 잡아당기며 아무 소리 없다.
주인마누라가 나온 뒤에 술집의 공기는 웬일인지 근신하듯이 조용하다. 그리고 우글우글 끓어오르는 국솥의
물김까지 입을 딱 닫은 듯이 아무 소리가 없다.
옆에서 떡을 굽던 거지는 얼른 떡을 집어 먹고 아무 소리 없이 밖으로 나갔다. 이것을 본 주인 노파는,
“저것 봐라. 거지가 안주 도적질해 먹고 달아난다.”
하고 소리를 지르며 쫓아 나간다.
술청에 앉은 어린 주인은 이 꼴을 보고서,
“아녜요. 내가 준 것이에요.”
---「은화·백동화」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