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을 쓰면서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어요.”
수필교실 수강생이 들려준 이야기이다. 그녀가 수업시간에 발표했던 작품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한없이 자애롭고 인자한 분인데 비해, 친구들과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숨바꼭질을 하면서 뛰어놀기만 해도 하루해가 짧다고 생각하는 딸에게 어머니는 집안일을 무척 많이 시키는 억척같은 분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그녀는 작품을 발표할 때면 아버지 이야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눈물을 보였는데,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느껴져 듣는 사람들 모두 숙연해지고는 했다. 그런데 작품에서 어머니에 대한 내용은 매우 간략했으며, 간혹 어머니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아버지와는 다른 감정선이 느껴졌다.
이렇게 아빠 바보였던 그녀가 글을 쓰면서 어머니에 대해 가지고 있던 감정이 변화된 건 수필창작 과정에서 어떤 요소가 작용했기 때문일까? 바로 ‘의도적 반추’의 과정을 통해서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수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떠올리기 싫어서 애써 외면하고 있는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기억이 문득 떠올라서 힘들었던 적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갑자기, 불쑥, 의도치 않게 생각나는 기억을 ‘침습적 반추’라고 하며, 자신이 의도해서 떠올리는 기억은 ‘의도적 반추’라고 한다. 일부 심리학자들은 극심한 스트레스 사건을 겪은 이후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성장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다. 이를 ‘외상 후 성장’이라고 하는데, 외상 후 성장으로 이끄는 역할을 하는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의도적 반추’이다.
의도적 반추는 수필창작에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글감을 발견하면, 그 글감을 어떤 주제로 풀어낼 것인지 정하고, 문단마다 어떤 이야기로 문단을 구성할지 구상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주제와 어울릴 만한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때 의도적 반추를 하게 된다.
그런데 불현듯 떠오르는 침습적 반추도 의도적 반추로 변화될 수 있다. 자신이 경험한 스트레스 사건이 불현듯 떠올라서 힘들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떠오르는 생각을 자꾸만 곱씹으면서 의도적 반추로 변화시키는 과정을 거치게 되면, 이 또한 외상 후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힘든 기억이라고 해서 묻어두기보다는 꺼내는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외상을 극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수필창작과정에서 어머니를 이해하게 된 그녀도 그동안 어머니에 대해 안 좋았던 기억들이 불현듯 떠올라서 그 기억들이 자신의 감정을 지배하고, 그로 인해 어머니와 좋았던 기억마저 잊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린 시절 이야기를 소재로 글을 쓰다 보니 잊고 있었던 어머니에 대한 좋은 기억들이 차츰 떠오르게 되었고, 아버지의 삶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한 번도 떠올려보지 않았던 어머니의 삶을 되돌아보는 데까지 생각의 영역을 넓히게 된 것이다. 이는 ‘침습적 반추’가 ‘의도적 반추’로 변화되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도적 반추’를 통한 수필창작은 문학치료과정과 비슷한 면이 있다. 문학치료 현장에서 내담자는 문학심리상담사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에 들도록 재창작을 하게 되는데, 재창작을 하는 과정에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자신의 이야기를 반영하게 된다. 이를 문학치료학에서는 ‘자기서사’라고 칭한다. 자기서사를 달리 말하면 자기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가는데, 자신이 고수하며 만들어가는 이야기, 즉 자기서사가 삶에서 부대낌을 받거나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용납하는 선을 넘어설 때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때 내담자는 자신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고수해오던 자신의 이야기(자기서사)를 변화시켜야만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고수해오던 이야기를 갑자기 바꾼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상담을 받게 되는데, 문학치료 현장에서 자기서사의 변화를 꾀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활용되는 것이 이야기 다시 쓰기이다.
내담자는 다시 쓰기 한 내용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과 연결 지어 생각하게 되는데, 이때 ‘의도적 반추’를 하게 된다. 왜 이러한 이야기를 창작하게 되었는지, 이 이야기가 현재 자신의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탐색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자기를 이해하게 되고, 치유와 성장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야기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면서, 실행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수필창작도 마찬가지이다. 수필의 소재를 발견한 후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술술 잘 풀려서 단숨에 완성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의도적 반추 과정을 거치게 된다. 특히 경수필은 자신이 경험한 일을 글로 풀어내는 창작활동이므로 의도적 반추를 하면서 자기탐색과 자기이해를 하게 된다. 게다가 자기이해뿐만 아니라 작품에 등장하는 타인에 대한 이해도 가능하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감정을 날 것 그대로 거칠게 표현하는 수필가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감정을 다스리면서 그들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됨으로써 비로소 글로 표현할 수 있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타인이해가 가능하게 된다.
이처럼 자기 고백적이며, 자전적인 글쓰기인 수필창작에서 ‘의도적 반추’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의도적 반추’는 수필이 문학치유적인 글쓰기로서 매우 적합한 장르임을 증명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의도적 반추」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