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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련 글 / 권혜수 그림 | 연암서가 | 2023년 09월 2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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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9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143쪽 | 145*210*20mm
ISBN13 9791160871142
ISBN10 1160871140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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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전학 온 친구예요. 지방 도시는 처음이라니까 여러분이 많이 도와주세요. 이진이는 자기소개부터 하고.”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 이진이가 나붓이 고개를 숙였다.
“윤이진이라고 해. 곧 겨울방학이 될 거고 방학만 끝나서 5학년이 되면 반이 바뀌어서 정도 들기 전에 헤어지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야. 한 학년이 한 반씩밖에 없는 미니 학교라니 재미있을 것 같아서 기대가 커. 잘 지내보자.”
--- p.10

지금 사용하는 에너지는 편리한 만큼 환경을 파괴하는 물질도 많다고 이진이가 설명했다. 하지만 핵융합 연구가 성공하면 그런 물질 없이 자동차도 굴리고, 전기도 쓸 수 있으니 공기도 저절로 맑아진다고 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나라는 어느 나라도 얕보지 못하는 에너지 강국이 된다는 설명에는 다들 탄성을 질렀다. 듣기만 해도 지겨운 과학 얘기였지만 신기했다.
--- p.19

“으~ 잔소리 대마왕! 이러니까 내가 운전 안 한댔잖아. 다음부터는 자기보다 내가 먼저 술 마실 거야.”
로미는 엄마의 말에 얼굴을 찡그렸던 일이 생각났다.
아빠가 싫지는 않다. 말을 많이 하는 만큼 아빠는 다정한 사람이다. 하지만 로미가 생각해도 아빠는 엄마한테 잔소리를 많이 한다. 여자가 꼼꼼하지 못하다는 잔소리가 대부분이다. 로미가 덜렁거리는 것도 엄마를 닮아서 그렇다는 말도 했다.
로미가 영교를 편하게 생각하는 건 아빠와 달라서일지도 모른다. 영교는 덤벙대는 로미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천생연분, 큭!’
속으로 중얼거린 로미는 혼자서 웃었다.
--- p.29

민우 아빠는 생선가게를 한다. 발을 접질렸을 때 민우가 생선 상자를 옮긴 적이 있다. 새벽에 아이가 시장을 드나드는 걸 누군가가 본 모양이었다. 도둑인 줄 알았다고 했는데 민우가 도둑이라는 소문으로 번진 것이다. 민우는 모르는 채 아이들이 수군대는 걸 들은 로미도 엄마한테 말을 전했다.
“하기 쉽다고 남의 말을 함부로 해선 안 돼. 그 말을 옮기는 건 더욱 안 되고. 사람들이 하는 남의 말은 대개가 흉이야. 칭찬도 하지만 그건 옮길 때마다 크기가 줄어드는데 희한하게도 흉은 옮길 때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거든. 나중에는 알맹이는 사라지고 부풀려진 거품만 떠돌아다니는 게 남의 말이야.”
--- p.35

대송미술관은 아담했다. 새로 지은 건물이라 모든 것이 깔끔했다.
로미와 영교를 비롯한 여덟 명의 친구들이 함께했다. 로미는 그림에 관심이 없었지만 영교가 가게 되어서 참여했다.
미술관에서는 발달장애인 세 명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었다.
“대송미술관 개관 기념전시회에 오신 어린이 관객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이진이 엄마가 인사를 했다.
--- p.46

“너 영교랑 사귀니?”
이진이가 불쑥 물었다.
“아니, 사귀긴. 그냥 친구야. 엄마들끼리도 친해.”
느닷없는 질문에 당황한 로미는 손사래를 쳤다.
“그래? 썸타는 것도 아니고?”
“아니라니까. 답답이 영교랑 무슨 썸을 타겠니?”
로미는 고개를 빠르게 가로젓기까지 했다.
“그래? 썸도 아니면 뭐지? 나랑 사귀자고 해볼까?”
작은 눈을 초승달처럼 만들어 깜빡이며 이진이가 중얼거렸다.
--- p.62

아이들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작년 여름에 이어 며칠 전 발사도 성공한 누리호 이야기로 이어졌다. 늘 그렇듯이 이진이가 이야기를 하고 아이들이 궁금한 걸 묻는 식이었다. 보통 때 같으면 로미도 거들었을 이야기였다.
“누리호 2차 발사 성공으로 우리나라도 인공위성 발사 성공국가가 된 거지. 대단하지 않니?”
유난히 달뜬 목소리로 이진이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이진이는 우주과학자나 천체 물리학자 되는 게 꿈이다. 셰프가 되어 세상을 누비고 싶은 로미와는 꿈의 범위가 달랐다.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우주를 넘보는 이진이가 로미는 멋지다고 생각했다. 로미가 이진이와 친해지게 된 것은 이런 꿈이 큰 몫을 했다.
“너는 하늘을 지켜, 난 땅의 먹거리를 책임질게.”
--- p.69

주위를 살피며 로미는 빠르게 이진이의 필통을 꺼냈다. 편지의 내용만 알아내곤 넣어 둘 생각이었다. 혹시 들키더라도 장난이라고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이진이 필통의 비밀번호를 알 수 없었다.
‘아이씨, 어쩌지?’
잠시 고민하던 로미는 이진이의 비밀필통을 제 가방에 넣었다.
‘그래. 편지 내용만 알아내곤 내일 일찍 학교 와서 이진이 서랍에 넣어두면 돼.
--- p.79

영교가 없으니 로미는 세상이 텅 빈 것처럼 허전했다. 이 넓은 세상에 저 혼자 있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시장 구경이라도 하면 허전한 마음이 채워질 것 같았다.
이진이 필통 문제로 어수선한 마음도 좀 잊고 싶었다. 이진이 생각을 하니 다시 화가 났다. 로미가 가져갔다는 걸 안다는 듯한 말투. 그러면서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사과까지 하던 이진이었다. 로미는 자신이 오랜 싸움에서 완전히 진 패잔병 같았다. 생각할수록 이진이가 얄미웠다.
“문자도 없는 거 보면 정말 이상해.”
중얼거리고 나니 로미는 영교가 의심되었다.
--- p.92

할아버지가 찰카닥거리는 쇳소리를 내며 코트를 양쪽으로 펼쳤다.
코트 안에는 열쇠가 아주 많았다. 코트 안쪽이 열쇠전시장 같았다.
멈칫거리며 뒤로 한 발짝 물러선 로미에게 할아버지가 말했다.
“마음 문을 열고 싶지? 골라보렴.”
“아, 아, 아니에요.”
로미는 양손을 내저으며 뒷걸음질을 쳤다.
더욱 이상한 할아버지란 생각에 더럭 겁이 났다.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 p.106

할아버지가 코트를 다시 한번 펄럭거렸다. 주머니마다 꽂힌 열쇠들도 빨리 고르라는 듯 짤그랑 소리를 냈다. 열쇠밖에 없는데 고르라니 더욱 이상했다.
“그걸 뭣에 쓰게요?”
“이건 시크릿 키(key)다. 마음 문을 여는 열쇠.”
로미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할아버지의 입에서 영어가 나오다니 우스웠다. 발음은 좋았지만 조금도 어울리는 말이 아니었다.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지금 너한테 꼭 필요할 텐데?”
--- p.116

“때론 열쇠로 열어야 할 게 꼭 있단다.”
점점 알 수 없는 말만 하던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열쇠에서 들리는 듯했다.
“그게 뭔데요?”
“네가 잠가 둔 거. 이건 그걸 열기만 하면 사라지는 열쇠란다.”
턱을 까딱했던 할아버지. 열쇠를 받으라고 재촉하던 할아버지와의 이야기가 자꾸 떠올랐다.
‘잠가 둔 거?’
로미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 잠시 뜨끔했다.
할아버지가 제 손에 열쇠를 쥐여 주던 조금 전 일이 옛일처럼 아득했다.
색깔 때문일까, 말랑한 느낌 때문일까. 분명 철로 된 열쇠인데도 가벼웠다. 훅 불면 떨어질 것 같기도 했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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