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Alice: Curiouser and Curiouser》는 ‘앨리스’ 책들의 기원, 각색, 재창조를 살펴보는 전시다. 손으로 써서 만든 책 『땅속 나라의 앨리스』가 모든 연령층의 사랑을 받는 세계적 현상이 되기까지의 발전 과정을 기록하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한 박물관에서 문학, 예술, 영화, 연극, 과학, 대중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폭넓게 아우르면서 캐럴의 책을 살펴보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추천의 글 (V&A 박물관장)」중에서
앨리스의 거침없고 창의적인 호기심 그리고 발견을 향한 두려움 없는 탐험 정신은 초현실주의 예술가 살바도르 달리부터 ALICE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CERN(세른, 유럽입자물리연구소-역주) 과학자들에까지 영감을 주었다. 살아오는 동안 우리 모두는 가끔씩 앨리스‘였던’ 적이 있다. 소외되고 고립되어 혼란스러운 존재 말이다. 하지만 앨리스의 결단력과 자발적 참여성은 우리를 깨달음으로 이끈다. 마치 앨리스처럼, 우리는 우리가 던지는 질문, 우리가 배우는 교훈, 우리가 겪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더 강한 존재가 되어 간다. 앨리스가 원더랜드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여러분이 이 책 속에서 호기심을 가지고 창의적 탐구를 하길 바란다. 처음에는 앨리스의 모험 여정을 떠올리게 하는 화려한 일러스트를 통해 새로운 원더랜드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크리스티아나 S. 윌리엄스가 제작한 이들 일러스트에는 ‘앨리스’ 책에 등장하는 대상들이 숨어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여러분만의 모험으로 향하는 다음 단계를 발견하길 바란다.
---「들어가며」중에서
토끼 굴로 내려가다
“이러다 지구를 뚫고 떨어지는 건 아닐까!
머리를 거꾸로 하고 걷는 사람들 사이에 떨어진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홀을 빙 둘러서 문이 여러 개 나 있었는데, 그 문들은 모두 잠겨 있었다 …
앨리스는 풀이 죽어서 홀 한가운데로 나와 그곳을 빠져 나갈 방법을 궁리했다.
---「원더랜드(Wonderland)」중에서
캐럴은 삽화의 주제, 배치, 크기 등을 테니얼과 협의해 가며 상세하게 계획했다. 그래서 ‘앨리스’ 책을 보면 이미지가 텍스트 내용과 거의 일치하도록 배치되어 있다. 앨리스가 커튼을 젖히는 그림을 보면, 앨리스가 문을 발견했다고 설명하는 텍스트가 그림의 바로 오른쪽에 있다. 앨리스가 ‘망원경처럼’ 펼쳐져 길어지는 대목에는 앨리스의 머리와 목이 발에서부터 멀어지면서 늘어나는 과정이 설명되어 있는데 해당 페이지 하단, 그러니까 그림 속 앨리스의 발 바로 옆에 “아, 가엾은 작은 발아”라는 텍스트가 붙어 있다.(그림 23) 초판을 만들 때 계획했던 대로, 삽화는 그 삽화 가까이에 있는 텍스트에서 설명하는 한 순간 또는 한 동작의 진행 단계를 보여 주었다. 그래서 독자들은 텍스트를 읽는 동시에 삽화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에 출판된 ‘앨리스’ 책들에서는 이러한 특징을 잘 찾아볼 수 없다. 테니얼의 삽화가 캐럴의 텍스트와 결합되면서 유머러스한 특징이 한층 강조되었다. 테니얼은 구덩이에 거꾸로 박혀 있는 하얀 기사를 앨리스가 끌어당기는 모습을 그렸는데, 캐럴의 익살스러운 묘사와 테니얼의 그림이 서로 잘 조화된다.(그림 27)
---「앨리스를 만들다(Creating Alice)」중에서
이렇게 해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1886년 12월 23일 런던 프린스 오브 웨일스 극장에서 ‘꿈의 연극’으로 소개되며 초연되었다. 극은 단순한 흰색 드레스를 입은 앨리스를 요정들이 둘러싸며 시작되었다.(그림 37-40) 무대 의상은 루시언 베슈Lucien Besche가 테니얼의 삽화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했다. 『더 타임스』의 연극 평론가는 이 작품이 ‘매우 멋지다’고 극찬하면서 ‘모든 장면이 천진난만한 농담과 재치 있는 말로 가득해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펀치』의 표현처럼, 연극의 인기는 캐럴의 ‘책(들)을 다시 한번 알리는 훌륭한 광고’ 역할을 톡톡히 했다.
---「앨리스를 공연하다(Performing Alice)」중에서
독창적인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가 ‘앨리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60년대 뉴욕에서부터다. 쿠사마는 1968년 센트럴파크에 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동상 앞에서 성적 해방을 표현하는 알몸 ‘해프닝’을 연출했다.(그림 86) 몸 군데군데 물방울무늬를 그린 벌거벗은 무용수들이 벌인 도발적인 퍼포먼스였다. 이 이벤트에서 쿠사마는 연극, 예술, 정치를 통합해 보여 주었고, 앨리스를 항의와 반문화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쿠사마는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였고, 앨리스를 두고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앨리스는 히피의 할머니였다. 앨리스는 우울할 때 자신을 흥분시키기 위해 약을 복용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쿠사마를 대표하는 테마는 물방물무늬와 거울이다. 물방울무늬의 바탕에는 ‘각각의 점은 다른 우주로 들어가는 소용돌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리고 거울은 작품 속에 관객을 배치하는 역할을 한다. 오늘날에도 쿠사마는 환영처럼 보이는 몰입형 작품을 계속해서 제작하고 있으며, 이러한 작품을 통해 환상과 자유의 세계를 열고 인식과 현실의 상태를 변화시킨다. 쿠사마는 관객에게 이렇게 부탁한다. ‘자신을 잊으세요. 영원과 하나가 되세요. 환경의 일부가 되세요...’
---「앨리스를 다시 상상하다(Reimaging Alice)」중에서
앨리스가 결혼할 무렵 두 ‘앨리스’ 책은 영국에서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되었다. 화가 조지 던롭 레슬리는 1879년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딸에게 읽어주는 어머니를 그렸다. 이 그림은 소설의 명성은 물론이고 이 소설이 빅토리아 시대 가정에 스며들었음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그림 108) 그림 속의 딸아이는 레슬리의 실제 딸을 모델로 한 것인데, 레슬리의 딸 이름도 앨리스였다. 앨리스는 수수께끼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데,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매료되어 넋을 잃은 듯 보인다. 앨리스 하그리브스는 곧 세 아들 앨런(1881년 출생), 레오폴드(1883년 출생), 캐릴(1887년 출생)을 낳아 키우며 자신의 가정을 꾸려 갔다. 햄프셔주 커프넬스에 정착한 앨리스는 20세기까지 대중의 시선을 받지 않고 살았다. 앨리스는 1930년대에 미국을 방문하면서 비로소 엄청난 명성을 얻게 되고, 다른 사람이 쓴 이야기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자신의 모습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앨리스가 되다(Being Alice)」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