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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환 산문 전집

[ 양장 ] 박인환문학관 학술연구총서-05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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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9월 1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28쪽 | 157*230*27mm
ISBN13 979113082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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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잡을 수 없고 인생은 늙었다. 나는 간성에서 기차를 타고 고성을 지나 금강산 구경을 했다. 비로봉…… 그것은 인간의 건실한 존엄성을 상징하며 외금강 푸른 물결과 접립(摺立)한 바위는 수난에 살던 우리들 가난한 민족의 저항하는 정신을 소리 없이 지니고 있다. 이처럼 강원도의 모든 풍물은 고난과 질곡과 박해에 억눌린 우리 민족의 슬픈 표정을 간직한 것과 다름이 없었으며 이것은 즉 강원도만이 가질 수 있었던 최후적인 한국의 유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원시림에 새소리, 금강(金剛)은 국토의 자랑」중에서

밤은 깊어졌다. 교회의 앞을 지날 때 요란스럽게 그러면서도 부드러운 찬미가가 들린다. 마치 술 취한 나를 비웃는 듯이……. 골목길을 지나 막 다음 골목으로 빠지려고 할 때 한 소녀가 울고 있었다. 보통 때 같으면 물어볼 필요도 없었지만 술의 힘을 빌려 왜 우는가를 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날 밤의 죽음. 나는 술이 활짝 깼다. 집이라고는 말뿐 판잣집 속 희미한 등불 아래에서 그의 어머니도 역시 흐느껴 울고 있다. 그래서 지나가는 행인의 친절로 주머니 속에 있던 돈을 모조리 꺼내 조위금으로 털어 버렸다. 그의 아버지가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 그 소녀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 필요도 없이 나는 그들이 거절하는 것을 뿌리치고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역할을 했을 따름이다.
---「크리스마스와 여자」중에서

나는 그들이 정신적으로 연령이 어리다고 여기서 말할 수는 없으나, 우리 한국의 어떤 일부의 대표적인 사람과 그곳 일부의 동일한 자격의 인간을 비한다면, 오히려 우리들이 정신적으로 지식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지 않는가 생각한다. 물론 아메리카 전반의 대가(大家)의 문화 수준은 우리가 비할 수가 없으나, 그러나 우리들이 조금도 정신적으로 뒤떨어져 있다고는 믿고 싶지가 않다.
---「19일간의 아메리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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