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연이 숨을 참으며 자신을 감싼 망량의 옷을 틀어쥐었다.
“어디로 숨은 거지?”
남자가 물을 마시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아직은 위로 올라갈 수 없었다. 그는 여전히 우물 곁에 서서 물을 마셨다. 연은 더 못 참겠다는 듯 몸부림을 쳤다. 그러자 기포가 물 위로 올라갔다. 남자는 그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숨을 참지 못해 발버둥을 치자 망량이 그녀를 붙잡았다.
‘아직…… 아직 안 돼!’
그는 연을 끌어안고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부드러운 입술에서 기포가 계속 새어 나왔다. 그는 완전히 입을 막아 숨을 불어넣었다.
“우웁…….”
연이 놀라서 그를 밀쳐내려고 했지만 그는 한 손으로 연의 목덜미를 감싸 쥐었다. 그녀는 망량의 부드러운 입술을 통해 들어오는 따뜻한 공기에 더 저항할 수 없어 눈을 감았다.
(pp. 68~69)
망량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툭툭 털고 일어나 가버렸다. 그가 나간 뒤 연은 멍하게 그가 앉았던 자리를 보다가 또 이마에 손을 대보았다.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이 계속 남았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흔들리면 안 되는데…… 왜 자꾸…….’
그녀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문을 두드리는 듯했다. 오랫동안 억지로 욱여넣고 잠가놓은 감정들이 하나둘 올라오면서 그와 함께했던 일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우물가에서 넘어져 그의 위로 올라탔던 일, 여장을 했을 때 갑자기 문을 열어 그와 입 맞췄던 순간, 사냥꾼의 총에 맞아 쓰러진 그를 안고 울었던 일, 그가 손을 잡았을 때의 그 감촉, 엉엉 울던 자신을 안아주던 따뜻한 품, 마지막으로 그가 계향이와 포옹했을 때 느꼈던 강한 질투심까지.
단순히 정체를 알 수 없는 흔들림이라고만 생각해왔다. 이런 두근거림은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꾸만 깊어지는 마음이 단지 흔들린다고 하기에는 너무 커져버린 게 아닐까. 그 의미를 깨닫는 순간 그녀는 제 입을 가렸다.
“내가 망량이를…….”
(pp. 133~134)
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종달새들도 날아가고 이제 객주 입구로 가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연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망량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작고 가느다란 손가락의 촉감이 부드러웠다.
“연아.”
망량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연은 또 무슨 작전을 알려주려나 바짝 긴장한 얼굴로 돌아봤다. 달빛을 받은 여린 얼굴과 고운 턱선, 분홍빛 입술. 이 얼굴을 보는 것이 이제 오늘로 끝일까. 그가 손을 꼭 쥐었다.
“다행이야, 너를 좋아하게 돼서.”
연은 그 말에 주춤했다. 긴박한 상황에 이런 고백이라니. 그 순간 망량의 손이 마치 우물 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녀를 사로잡았다. 순식간에 부드러운 입술이 와 닿았다. 달콤한 입맞춤. 그러나 너무 짧은 순간이었다. 망량은 안타까운 얼굴로 그녀를 놓았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기분이 이상하다. 무언가 묻고 싶었지만 그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났다.
“멍하게 있으면 안 된다고 했지.”
망량이 수풀을 헤치며 말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다정하고 신비한 두 눈동자.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저만치 먼저 갔다. 그녀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입술을 만져보았다. 방금 전 촉감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번에는 분명 착각이 아니었다.
‘망량…….’
(pp. 140~142)
“예쁘다.”
연이 환한 얼굴로 옥가락지를 집었다.
“응?”
망량이 그녀를 쳐다봤다.
“예, 예뻐?”
“응.”
그는 픽픽 웃음을 흘리며 머리를 긁적이더니 가락지를 집어 내밀었다.
“그, 그럼 한번 껴봐. 이거 한 쌍이니까 너 하나, 나 하나 끼면 되겠다.”
“정말?”
망량이 가락지 중에 하나를 내밀어 연의 왼손 약지에 끼워주었다. 꼭 들어맞는 반지. 그녀의 연분홍 입술에 기쁨이 묻어났다.
“고마워! 정말 예쁘다. 자, 너도 껴봐.”
연이 남은 가락지 하나를 망량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에 끼워주었다. 역시나 손에 꼭 맞았다. 망량이 빙긋 웃었다. 두 사람의 눈빛이 서로를 따뜻하게 바라보았다. 달천 길을 함께 걸은 시간처럼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았다.
‘당신을 은애합니다.’
그 순간 검은 밤하늘에서 펑, 펑. 우레 같은 소리와 함께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붉은 불꽃, 푸른 불꽃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가 둥근 빛을 그리며 땅으로 내려왔다. 사람들은 처음 보는 낯설고 아름다운 광경에 넋을 잃고 하늘만 올려다봤다.
“별이 부서져 내리는 것 같아.”
연이 중얼거렸다. 예쁜 콧날 위로 커다란 눈망울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망량의 손이 저도 모르게 장옷에 닿았다. 장옷은 미끄러지듯 땋은 머리를 타고 떨어졌다. 그는 모두가 불꽃에 정신을 잃은 틈을 타 그녀의 입술을 가볍게 훔쳤다. 꿈처럼 짧은 순간이 스치고 지나갔다. 망량은 처음 만난 그 순간처럼 신비롭고 다정한 눈동자로 그녀를 응시했다. 연의 볼이 밤하늘의 붉은 불꽃만큼이나 달아올랐다. 마음이 두근거리고 설렜다. 반지를 나눠 낀 손이 서로를 붙잡는 순간 그들은 또다시 깨달았다.
‘언제까지나 함께하고 싶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차마 그 말이 목구멍으로 넘어오지는 않았다. 이 달콤한 오늘이 지나면 영영 이별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그랬다. 점점 둥글게 차오르는 밤하늘의 흰 달, 그 아래로 아름다운 불꽃들이 호수의 파문처럼 퍼졌다.
(pp. 215~217)
해가 뜨기 직전에 망량은 잠에서 깼다. 연은 여전히 눈을 뜨지 못했다. 어젯밤 그들은 성산화 구경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그대로 함께 손을 잡고 누웠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이제까지 살아온 과거, 좋아하고 싫어하는 취향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더 이상 망량은 입을 맞추지도 끌어안지도 안았다. 자신이 떠난 후의 일을 생각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더 조심스러워졌다.
‘내가 떠난 후에도 힘들지 않으면 좋을 텐데.’
그는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쌔근거리는 모습이 어린아이처럼 순해 보였다.
‘이 얼굴을, 코를, 뺨을, 입술을, 턱을 모두 기억하마. 바람이 불어 네 향기를 맡게 된다면 난 널 찾게 될 거야.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몇 번의 환생을 거치더라도 우린 꼭 다시 만나게 될 거다. 꼭.’
(pp. 247~248)
“연아.”
망량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잊고 싶지 않은 이 얼굴을, 코를, 뺨을, 입술을, 턱을 모두 기억하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연이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짧고 강렬한 입맞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인으로서 낸 용기였다. 찰나였지만 이제까지 함께했던 날들이 그들을 훑고 바람처럼 지나갔다. 연의 작은 손이 비틀거리며 그를 놓아주었다. 그녀의 보석 같은 눈동자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 소원은…… 내 소원은…….”
망량은 고개를 흔들었지만 그녀의 소원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내 소원은…… 피리의 봉인이 풀리는 거야. 너는, 너는 이제 자유야.”
(p.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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