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생의 ‘디자인은 (선)이다.’라는 정의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 학생은 자기 이름의 가운데 글자를 따서 디자인을 정의했다. 얼핏 평범한 듯했지만, 線, 鮮, 善, 宣, 先, 選 등 ‘선’으로 읽히는 무수한 풀이를 듣고 나니 디자인의 본질을 잘 설명하는 명답이라 할 만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줄을 의미하는 ‘線’은 ‘점, 선, 면’ 등 조형 요소의 하나로, ‘선이 곱다.’라는 말처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제격이다. 베풀 ‘宣’은 요즘 주목받고 있는 나눔과 배려의 디자인과 맥락이 통한다. 가릴 ‘選’은 디자인 평가에서 여러 시안 중 가장 좋은 것을 골라내는 것과 의미와 통한다. 감동 디자인에는 정답이나 오답이 있는 게 아니라 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 p.19, 「프롤로그」 중에서
무엇을 디자인하든 사람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사람 혹은 인간 중심 디자인 철학의 시발점은 미국 산업 디자인의 선구자 헨리 드레이퍼스의 저서 『사람을 위한 디자인』이다. 드레이퍼스는 제품으로 사람이 더 안전하고 편안하고 행복해진다면, 거기에 더해 제품을 사고 싶어진다면 디자이너는 성공한 것이지만, 사람과 제품이 접촉할 때 마찰이 생긴다면 실패한 것으로 여겼다. 사람 중심 디자인의 접근은 무엇보다 먼저 사람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공감을 넘어 감동을 주는 솔루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 p.29, 「디자인은 사람 중심이다」 중에서
여권은 ‘조용한 외교관’이다. 네덜란드 여권은 페이지마다 위대한 선조들의 초상과 주요 업적을 담은 작은 그림 역사책이고, 핀란드 여권은 페이지를 넘기면 오른쪽 모서리에 달리는 순록이 보이는 플립 북 스타일이다. 캐나다 여권은 단색조로 인쇄된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에 자외선 불빛을 비추면 현란한 색채가 나타나 위조가 어렵다. 이렇듯 여권은 국가의 품격과 정체성을 나타낸다.
--- p.61, 「디자인은 심미적이다」 중에서
디자인은 나날이 새로워져야 한다. 이제까지 없었던 것인 만큼 ‘novelty’, 즉 ‘참신함과 신기함’을 갖춰야 한다. 과학자와 공학자들이 이끄는 기술의 혁신은 디자이너의 재능과 노력을 통해 새로운 디자인 창출로 이어진다. 합판, 합성수지, 스테인리스 스틸, 그래핀 등의 갖가지 신소재는 인공물의 디자인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요즘 색채, 소재, 마무리의 합성어인 ‘CMF’가 주목받고 있다. 제품의 정밀화와 고급화에 효과적인 CMF 디자인은 특히 스마트하고 정교한 디지털 기기의 디자인 진화를 이끄는 해법이 되고 있다.
--- p.83, 「디자인은 새로움이다」 중에서
뉴욕시는 2023년 3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자는 취지로 We ♥ NYC라는 새 로고를 도입했다. 디자이너 그래엄 클리포드는 ‘I(나)’를 ‘WE(우리)’로 바꿔 ‘지역사회와 함께’라는 의미를 담고 ‘NYC’로 뉴욕시가 주체라는 것을 명시했다. 새 로고를 옹호하는 뉴요커들과 독창성이 없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자, 시 당국은 새 로고가 기존 로고를 완전히 대체하는 게 아니라 보완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도시 공동체를 추구하는 뉴욕시의 새 로고가 자연과 문화를 강조한 기존 로고와 어떤 상생 효과를 이루어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 p.115, 「디자인은 논쟁적이다」 중에서
“디자인은 생각을 시각화하는 것”이라는 소울 바스의 주장처럼 생각은 디자인의 원동력이다. 디자이너의 생각에 따라 디자인의 수준과 품격은 확연히 달라진다. 창의적인 문제 해결 방법인 디자인 싱킹의 핵심은 제품, 서비스, 프로세스는
물론 전략을 개발할 때 디자이너처럼 생각하라는 것이다. 기존 방식대로 투자수익이나 생산성을 높이려는 데만 급급하지 말아야 한다. 사용자의 처지와 입장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 발상의 전환이야말로 독창적인 디자인의 출발점이다.
--- p.163, 「디자인은 생각이다」 중에서
“나는 사람도 형제도 아닙니까Am I not a man and a brother?” 쇠사슬에 손발이 묶인 흑인 노예가 무릎을 꾼 채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모습이 애처롭다. 이것은 영국 도자기 회사 웨지우드의 창업자인 조사이어 웨지우드가 1787년 흑인 노예들의 참담한 실상을 알리기 위해 제작한 메달에 새겨진 문구와 부조다. 청교도적 성향을 띤 ‘범대서양
노예무역 폐지 운동’에 앞장선 웨지우드는 당대 최고의 조각가 헨리 웨버와 윌리엄 해크우드에게 의뢰한 메달을 사회 지도층에 무상으로 배포했다.
--- p.221, 「디자인은 역사다」 중에서
우리 주변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해 약간의 불편함도 받아들이고 사용해온 제품이 많다. 어쩌면 둥근 원통형의 유색 와인병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가르콘와인Garcon Wines의 창업자 조 레벨Joe Revell은 와인병의 형태가 지닌 불편함에 주목했다. 어느 날 집을 비운 사이 배송된 와인이 현관문 우편함에 들어가지 않아 반송된 것을 알고 레벨은 와인병의 부피가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다가 둥근 와인병을 포장하는 데도 많은 공간이 필요하고 부피가 큰 만큼 물류비용이 비싸지는 등 여러 가지로 자원 낭비가 심하다고 생각했다.
--- p.261, 「디자인은 공생이다」 중에서
“미래 예측에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디자인하는 것”이라는 버크민스터 풀러의 주장에 공감하는 것은 디자인이 원래 미래 지향적이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는 향후 기술과 트렌드의 발전 방향, 미래 사용자의 욕구와 기호 변화 등을 선견지명을 가지고 통합해서 미래의 인공물을 디자인한다. 그들의 연구 제품이나 콘셉트 등을 보면 시대를 앞서가는 특성으로 디자인이 미래의 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기존 형식이나 제약에 너무 얽매이지 않는 독창적인 디자인 콘셉트는 미래 베스트셀러의 원천이다.
--- p.323, 「디자인은 미래다」 중에서
디자인은 이상주의적 열망과 실용주의적 제약 사이의 간극을 최소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존과 아브릴 블레이크는 1944년부터 25년간 영국에서 산업을 위한 디자인 진흥 활동을 기술한 책의 제목을 『실용적인 이상주의자』라고 지었다. 얼핏 보면 ‘실용’과 ‘이상’이라는 상반되는 두 단어의 조합이 생뚱맞게 느껴지지만, 디자이너가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이 두 가지 상황을 넘나들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 p.348,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