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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테의 사람들

레테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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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9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196쪽 | 270g | 128*188*20mm
ISBN13 9791197167966
ISBN10 119716796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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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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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줌마라 부르는 이 노인네 송순복, 실은 내 친엄마다. 그러나 어느 땐 내가 잠시 그녀의 딸이 되고, 어느 땐 그녀를 돌보는 요양보호사가 되고, 어느 땐 이웃집 여자가 되고, 또 어느 땐 버려진 자기를 거두어 준 과거의 고마운 은인이 되기도 한다. 이러다가 어느 날인가 나는 또 다른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송 노인」중에서

엄마의 저녁 식사를 해결했으니 이젠 약을 먹여야 할 시간이다. 저녁 약은 네 알이나 되어 엄마는 이따금 먹지 않겠다고 떼를 쓰곤 했다. 치매란 현재로선 치료는 어렵고 증상 악화만 지연시키는 게 상책이다. 오늘 저녁엔 송 노인이 기특하게도 순순히 약을 받아먹었다.
---「엄마는 어디로

엄마의 입원과 내 몸살 덕으로 나는 일시 자유의 몸이 되었다. 나 자신에게 엄마로부터의 해방을 허락했고 병원비와 간병비가 나갈 것에 대해서도 액수를 놓고 마음 졸이지 않았다. 아니, 실은 그럴 힘이 남아 있질 않았다. 나는 오직 심신의 과부하로 무너질 것만 같은 내 몸의 통증에 대해서만 신경 쓰며 한시라도 이 숨 막히는 장소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일념 밖엔 없었으므로. 그래서인가 집으로 돌아가 큰대자로 뻗으니 얻어맞은 듯 몸이 쑤시면서도 마음만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
---「엄마는 무너지는 중」중에서

아니, 바라는 대상이 찾아온다 해도 그렇지, 지금 내 나이는 모험을 감행하기엔 무리 되는 시점이지 싶은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망설이게 하는 건 치매 엄마를 돌봐야 한다는 나의 등짐이요, 현실에 맞춰 틀이 굳어진 내 의식과 습관, 마치도 구타하는 남편 밑에서 몸부림을 치면서도 그에게 길든 아내처럼 살아가는 나 자신, 일탈을 꿈꾸면서도 유폐된 자기만의 방에서 안주하길 편안해하는 역설적인 나 자신인 것이다. 이런 모습들이 때론 남들 눈엔 효도로 비춰지고 미화되어 나는 또 그 안에 갇혀버리고 마는 것 같다.
---「청춘의 잔상」중에서

엄마의 치매가 어느 날 불쑥 나타난 건 아니었다. 나는 엄마가 전과 다른 행동을 보여도 누구나 겪는 노화 현상으로 여겼지, 그게 치매의 징후라는 걸 몰랐다. 변덕이 잦아지고 화를 잘 내고 반찬 솜씨가 달라지고 같은 이야기를 몇 번씩이나 처음처럼 말하고 최근에 있던 일을 기억 못 하고 두통을 호소하고··· 그 모든 걸 늙어가는 여자의 우울증이거나 일반적인 노화 증세라고 넘겼다.
---「까막골 여자」중에서

··· 젊은 날의 엄마의 얼굴이 아른아른 피어올랐다. 작고 가녀린 한 여인을 후벼 파며 몰아쳤을 평생의 회오리와 상흔들, 웃기고 울렸을 삶의 파편들, 인간이란 그가 가진 기억에 불과하다. 엄마는 이제 그 모든 걸 뒤로하고 레테의 강을 향해 가며 이승의 기억을 내려놓을 것이다. 젖먹이인 나를 품다가, 자신마저 젖먹이로 돌아갔다가, 마침내는 소실점 저 너머로 사라지며 그 강을 건널 것이다. 나는 상처투성이의 엄마를 가슴으로 품으며 엄마가 하루빨리 레테의 강을 건너 지나온 상흔들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마지막 퍼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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