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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난간에 매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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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9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76쪽 | 252g | 125*195*100mm
ISBN13 9788979736083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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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썩지 않는 놈들이 있다 쓸모가 다하면 썩어 없어져야 하는데 저 혼자 썩지 않는다 썩을 놈들

자본주의가 낳은 불후의 명작 셋, 플라스틱 비닐 스티로폼 이 썩을 놈들이 안 썩는다는 말씀

티티카카 호수에도, 초모랑마 타르초 아래도, 극한의 남극점에도 썩지 않을 불후들 넘친다 인간이라는 썩을 놈 다녀간 곳은 어디든 불후의 천국이다

플라스틱이 흙 되는데 오백 년이라면, 임진년 피난 가며 버린 것이 여태 사라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고 동학 때 묻혔다면 아직 채 눈도 감지 않았다는 것

썩어야 할 것들이 하도 썩지 않으니 말도 바뀐다 썩을 놈 이젠 욕이 아니다 생태적, 지구적 상찬이다

백년도 못가 흙 될 것들이 흙도 되지 못할 것 남긴다
불후로 가득한 창백한 푸른 섬, 썩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불후의 명작이 될 것이다 읽을 이 하나 없이 고요한
---「김형로, 썩을 놈」중에서

수박만 한 우박이
야구공만 한 우박이
아기 주먹만 한 우박이
고양이 눈알만 한 우박이

지구의 머리통들이 깨져도
세계의 유리창들이 박살나도
중동의 오일 쇠파이프가 뚫려도
미래의 사과나무가 찢겨나가도

미국 땅의 회오리는 미국 땅의 회오리

아프리카의 모래폭풍은 아프리카의 모래폭풍

후쿠시마 핵 오염수 마셔도 된다고?
죽나 사나, 사나 죽나 그까짓 것 멸망해 봐야 안다고?

부산 시청 앞마당 초록공원 꽃이 만발 나무는 줄 맞춰 푸르러간다
섬뜩해라, 나비, 벌, 벌레 한 마리 눈 씻고 봐도 없다
환경단체 회원들은 새들에게 하늘권을 돌려줘라 외치지만
사람들만 발 빠르게 들어간다, 나온다
무슨 약정서처럼
플라스틱 커피잔을 하나씩 손에 들고

그렇다면 하늘 가리는 나무 모가지들을 댕강 쳐내야 한다고?
아파트의 높이는 구름층에 가까울수록 좋다고?

2023. 7. 3. 지구 역사상 가장 뜨거운 날로 기록됐다 하는데
대여섯 살 아이가 뙤약볕 아래 땀을 비 오듯 쏟아내는데
손바닥에 콩벌레 한 마리 올려놓고 잔지러진다
엄마도 그 누구도 울음을 달래지 못하네
죽은 벌레를 위한 가장 슬픈 장송곡이었네
---「고명자, 지나치게 이기적인 유전자들」중에서

털레털레 앞서가는 털뭉치가 녹는다 탈레탈레 뒤따라가는 털뭉치가 녹는다 언제 흰색이었나 누런 짐작이 녹는다 때묻은 큰 등이 녹는다 비루먹은 작은 엉덩이가 녹는다 납작한 배가 녹는다 바닥을 끌며 가는 검은 주둥이가 녹는다 사소한 엄폐물이 녹는다 해빙을 떠도는 전설이 녹는다 광활한 사냥터가 녹는다 잠잠한 잠행이 녹는다 먹잇감이 녹는다 신중한 사냥꾼이 녹는다 눈 위를 뒹구는 새끼곰 놀이가 녹는다 태어나지 않은 새끼곰이 녹는다 침묵의 N극이 녹는다 길고 풍성한 거울이 녹는다 거대한 백색 거울이 녹는다 능숙한 곰인형이 녹는다 곰인형을 눕힌 노란 침대가 녹는다 침대 위에서 읽어줄 차가운 동화가 녹는다 만화 속, 꿀 먹은 아이스크림이 녹는다 그림 속 털북숭이 그림자가 녹는다
---「최정란, 북극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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