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저, 이제 베를린으로 출근합니다.
다녀오겠습니다!
2013년 7월, 9년 만에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40일 만에 드디어 내 몸과 마음에 꼭 맞는 집을 갖게 됐다. 나를 꼭 닮은 이 집을 닮은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그때쯤은 마지막이지만 처음 같은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까.
영화 〈굿바이 레닌〉의 감독 역시 구서독 출신이다. 감독은 희비극적인 드라마 속에 사회주의 붕괴 이후 통일 독일에 안착하지 못한 구동독인들의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며 아픈 역사를 기억한다. 당사자가 아닌 누군가가 타인의 삶을 기억해줄 때 그 기억은 더욱 온전해지는 걸까. 내가 들춰내고 싶지 않은 시절을 온전하게 기억해준 여의사를 만나서 결국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과 비로소 화해했듯, 구동독 출신인 사람들도 두 영화를 보며 지난 시절을 비로소 추억했을까 그래서 나는, 정작 나는 무엇을, 누구를 기억하고 있을까.
성공한 영화 〈국제시장〉은 그래서 감동적이지만 충분히 감동적이진 못했다. 천만 관객을 얻기 위해서는 포기해야 하는 게 많단 사실을 또 한 번 깨닫게 해준 영화. 유감스럽지만 나에게 〈국제시장〉은 그런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베를리날레, 칸이나 베니스와 달리 한겨울의 맹추위 속에 열하루 동안 4백여 편의 영화가 소개되는 베를린 국제영화제가 이제 또다시 개막을 열흘 앞두고 있다.
이제 기차역 굴다리 밑에 간판도 없는 바(Bar)로 들어갈 시간이다. 호그와트 학교로 가는 플랫폼 9와 3/4처럼 간판이 없는 바의 철문 옆에 잘 보이지도 않는 벨을 누르자 팀버튼의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미친 모자장수 같은 남자가 문을 살짝 열고 빼꼼 내다보더니 내 얼굴을 알아보고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화려한 네온사인 간판이 없는 도시에서, 그날 밤 우리는 심지어 가게 이름조차 적혀있지 않은 철문 안으로 토끼를 쫓아가는 앨리스처럼 하나씩 하나씩 빨려 들어갔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난 언젠가 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 그땐 정말로 팻 분의 캐럴을 틀어야겠단 생각을 굳혔다. 〈학생부군신위〉처럼 완벽한 장례를 치를 순 없을지라도 당신이 젊고 빛났던 시절에 좋아했던 그 음악을 꼭 들려드리겠다고, 그래서 10분 만에 조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도 당신을 특별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 시절 베를린이란 도시를 주제로 한 소설에 대해 석사논문을 써서 졸업을 했고, 베를린을 무대로 활동했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연구하겠다고 베를린으로 훌쩍 유학을 떠났었다.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천사 다미엘이 위태롭게 걸터앉아 베를린 시내를 내려다보던 승전탑을 지나 100번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녔고, 8년 만에 학업을 중단하고 서울로 돌아오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찾아간 전시회가 바로 빔 벤더스의 사진전이었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와서 번역가, 북에이전트가 됐고, 몇 년 전부터 한 출판사의 대표가 빔 벤더스의 사진집을 출간하고 싶다고, 그러니 그 책 좀 찾아서 중개해달라고 의뢰를 해왔다. 이후 몇 년에 걸친 우여곡절 끝에 결국 판권계약이 성사됐고, 내친김에 번역까지 하게 됐다. 이쯤 되면 감히 운명이란 말을 써도 되지 않을까.
그나저나, 영화 〈팔레르모 슈팅〉에서 주인공 핀이 들고 다니던 중형 필름카메라 ‘Makina 67’, 양손으로 붙잡고 앞으로 툭 흔들어주면 장총처럼 렌즈가 튀어나오던 그 카메라가 자꾸 눈에 밟힌다. 요즘은 돈 주고도 구하기 힘들 텐데 대책 없는 지름신이 도졌으니, 큰일 났다.
혹시 영화를 보게 되거든 마지막 장면을 볼 때 감정 관리를 잘 하셔야 할 거예요. 잭과 수지가 덤덤하게 헤어지는 장면에서 My funny Valentine이 흐르는데 난 그 장면이 미칠 듯이 쓸쓸하게 느껴졌거든요. 하지만 슬프지는 않았어요. 슬프지는 않은데 쓸쓸한 느낌이 드는 영화. 이 영화에 나오는 음악들도 영화랑 똑같이 생겼어요.
우리는 누구나 각자 자기만의 영화를 본다. 영화관에 동시에 앉아있는 수백 명의 관객들 역시 모두가 자기만의 영화를 본다. 소개팅을 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함께 영화를 보고 있는 미래의 커플도, 조조할인 영화를 나 혼자 즐기는 영화광도, 모두가 나만의 영화를 본다. 그날의 기분, 그날의 상황에 따라 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모두가 그렇게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받아들인다. 누군가 옆에서 꾸벅꾸벅 조는 동안에도 다른 누군가는 같은 스크린에서 인생의 영화를 만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는, 사진이라는 무한복제 기술이 발달하면서 일찌감치 사라진 게 아니라 여전히 세상 어디에나 편재하고 영화에도 역시 존재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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