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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호주머니

신나는 호주머니

임명희 | 선우미디어 | 2000년 05월 3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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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05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38쪽 | 148*210*20mm
ISBN13 9788987771557
ISBN10 8987771555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다른 사람보다 손이 큰 걸까 팔길이가 긴 걸까. 어느 장소에 가든지 내가 제일 난처해하는 일은 손의 처리문제다. 그러므로 커다란 호주머니가 겉에 달린 옷을 입으면 든든하다. 가장 고민스러운 손의 은신처를 마련한 느긋함일까. 정신도 안정이 되고 고질인 어눌도 조금은 진정될 만큼 호주머니의 존재여부는 심리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친다.

묵은 신문을 정리하다가 얼마전에 사임한 여자장관 사진이 눈에 띄어 그 기사를 다시 훑어본다. 장관직에 있을 때 기자회견하는 사진이었는데 치마호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표정으로 보아 거침없는 평소의 말투가 터진 봇물처럼 흐를 것 같았다. 무슨 흥밋거리가 없는가 기웃거리는 독자들에게 보비위하는 기사내용 때문일까. 아니면 호주머니에 찌른 손 때문일까. 실수를 연발하는 그의 신중하지 못한 언행을 두둔하려는 마음이 아닌데도 그 사진 속의 모습은 편역을 들고 싶은 만치 묘한 호소력을 갖고 있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어야 할만큼 기댈 데 없는 마음 상태를 어느 면 공감하는 까닭이리라.

큼직큼직한 호주머니가 겉에 달린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참 편안해 보인다. 주머니에 울퉁불퉁 무얼 잔뜩 넣어가지고 다니는 모습을 촌스럽다고들 하지만 겉모양을 상관하지 않고 자기 편한 대로 넣을 것 다 넣고 다니는 사람은 느긋해 보인다. 무얼 저렇게 옹망졸망 많이 주워 담았을까. 바라보는 사람이 궁금하도록 불룩하게 호주머니의 배가 튀어나와 있는 사람, 지나치면 주책스러워 보일 법도 하지만 수수한 성격을 드러내는 몸짓같아 호감이 간다.

남의 호주머니는 비밀스럽게 가려져 있기 때문에 더 신비로운걸까? 그 내용물이 이유없이 궁금할 때가 있다. 물론 호주머니 용량보다 큰 물건을 넣었을 때엔 일부가 내다보여 안에 든 게 확인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개는 다른 이가 알 수 없이 감춰져 있어서 저 안에 뭐가 들었을까 궁금하게 만든다. 남의 주머니 속이 실질적인 필요와 상관없이 궁금하다면 그 안에 있는 것들을 탐하는 마음이 전혀 없더라도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을 여지가 다분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호기심이 돋아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호주머니. 그의 주머니에 들어있는 품목들을 무작위로 털어본다면 그의 직업이나 생활 정도나 취향 따위를 대충은 알아맞출 수 있다. 그러니 사람을 향한 호기심이 반짝이고 사람을 읽는 일이 재미있는데 그 사람의 암호를 읽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는 호주머니의 내용물이 왜 아니 궁금하랴.
--- p.6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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