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수십 명씩 환자를 보는 교수이자 의사인 사람들이 다학제 진료를 위해 모이다 보니 예상대로 점심시간이 희생되거나, 오후 진료가 끝난 느지막한 저녁 시간이 사용되었다. 여러 과 교수들과 환자들이 약속해놓은 날짜에 하필 수술이라도 늦게 끝나면, 지친 몰골로 허겁지겁 들어서는 외과 교수를 맞이하느라 다 같이 저녁 금식을 강요받을 때도 있다. 간혹 다학제에 참여한 환자와 가족들이 우리를 안쓰럽게 보며 “늦게라도 식사를 하시지...” 하며 마음을 건넬 때가 있는데, 우리는 그분들이 예정에 없던 동반 금식에 참여하게 된 것이 죄송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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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췌장암의 발생률은 2020년 기준 연간 8천 명 정도로, 한 해 새로 발생한 총 암 환자 24만 7천여 명의 약 3.4%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암인 ‘갑상선암’, ‘폐암’, ‘대장암’, ‘위암’이 각각 2만 6천~2만 9천 명 정도인 것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하지만 췌장암이 갖고 있는 8천 명이라는 숫자는 전체 암 발생률 8위로 결코 작지 않다. 주요 암종과 비교하자면 그 발생률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5년 생존율은 10% 정도에 불과하고, 병기가 높은 경우에는 5% 미만이다. 이렇게 불량한 예후는 췌장암을 불치병의 대명사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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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현재 상태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또 목표를 어떻게 정하는지에 따라 치료 전략은 달라진다. 절제 불가능으로 진단된 국소 진행성 병기는 암의 상태와 환자의 전신 상태, 나이, 치료의지, 목적에 따라 유도 항암치료와 완화적 목적의 치료 전략이 가능하다. 유도 항암치료의 목표치에 도달하기 위해 독성이 높더라도 치료 효과가 강력한 항암치료를 진행하여, 암의 크기가 어느 정도 줄어들면 수술 가능 상태로 전환될 수 있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이를 모니터링하면서 필요하면 적절한 시기에 수술하는 전략이다. 전략의 선택 여부는 전적으로 환자의 상태와 치료의 진행 상황을 세심하고도 장기적으로 살펴봄에 따라 정해질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치료의 질과 성적 면에서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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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담도암은 암 발생 순위 8위인 췌장암에 이어 9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한 해에 7천 명 정도에서 발병한다. 고령이 담도암의 가장 큰 요인인데, 우리나라에서도 고령화가 지속됨에 따라 담도암의 발생률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담도암은 췌장암과 마찬가지로 발생률은 높지 않지만 치료가 매우 어렵고, 예후도 그다지 좋지 않다. 20여 년이 넘도록 5년 생존율이 20~30%에 정체되어 있기에 여러 방면의 변화들이 반드시 필요한 분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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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에 생기는 모든 악성 종양을 간암이라 한다. 하지만 간에는 여러 종류의 세포들이 존재하고 그중 어느 세포에서 암이 발생하는가에 따라 각각 다른 이름과 성질을 가진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간암은 정확하게 얘기하면 간세포암을 의미한다. 그러나 간세포암 외에도 ‘간내 담도세포암’, ‘간 신경내분비종양’, ‘간 육종’, ‘간 림프종’ 등 다양한 간암이 있다. 간은 다른 암들이 가장 잘 전이되는 장기 중 하나여서 다른 곳에서부터 간으로 전이된 ‘전이 암’ 역시 잘 생긴다.
간 전이를 보일 수 있는 암들은 대장암, 위암, 췌장암, 담도암, 난소암, 유방암 등으로 다양하고, 이렇게 간으로 전이된 것을 이차성 간암이라 한다. 이 전이 암들은 간암의 성질을 갖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암, 즉 원발암과 같은 성질을 갖는다. 예를 들어 대장암이 간으로 전이되어 암이 생겼다면 이 암은 대장암의 성질을 가지므로 치료법 결정과 항암제 선택 역시 대장암에 준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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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나 교육을 떠올려볼 때, 약간의 칭찬만 해줘도 잘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적당한 자극을 줬을 때 잘하는 아이가 있고,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한 아이도 있다. 병도 마찬가지다. 병을 치료함에 있어 일률적인 치료는 없다. 어떤 병이든 그 병에 대해 더 정확하게 알고, 사례별로 세심하게 파악한 다음 덤벼야만 이길 확률도 높아진다. 담도암은 그 형태나 상태, 특징이 세부적으로 나뉘는 암종이다. 치료 전략 역시 세부적으로 나뉜다.
‘담도암에 대한 완치적 치료는 수술뿐이다’는 문구는 수십 년 전부터 최근까지 대부분의 담도암 논문에 인용되고 있다. 수술 외에는 효과적인 치료법이 마땅치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담도암치료가 기본적으로 ‘수술 가능 여부에 대한 판단’에서 시작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266~267
췌장담도암을 비롯해 많은 암들에서 이 예후 예측 단계의 연구가 이루어져 왔고,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분류된 환자들을 대상으로 일일이 맞춤형 전략을 짜는, 이른바 ‘정밀의학’ 분야는 이 시대 가장 핫한 영역 중 하나다. 단적인 예로 항암치료는 현재 모든 환자에게 병기에 따라 일률적으로 투여하는 수준이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는 환자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들(생리, 유전, 미생물, 행동, 노출력 등)을 종합하여 이 환자에 맞는 약은 고용량으로, 그렇지 않은 약은 제외하거나 낮은 용량으로 맞춤형 치료를 하게 될 것이다.
우리 팀도 그간 수많은 담도암 치료 경험과 풍부한 환자군을 바탕으로 유전 정보 분석을 통한 ‘담도암 정밀의학’ 세팅을 위한 준비 및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직은 더 많은 연구와 치료제의 개발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멈추지 않기 위해 모든 연구진이 한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 p.319~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