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때마다 뉴욕의 새로운 명소를 만났다. 어리둥절해질 만큼 뉴욕은 빠르게 변했다. 그런데 그렇게 변화하는 풍경도 흥미로웠지만, 내 카메라가 머무는 지점과 마음이 가는 방향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처음 뉴욕을 촬영할 때는 카메라를 세워서 촬영한 세로 사진이 많았다면, 요즘은 가로 사진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의도한 바가 아니라 나의 시선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내 사진이 담기는 풍경이 맨해튼 중심에서 점점 외곽으로 바뀌는 것을 깨달았다. --- p.14, 「다시 뉴욕」 중에서
상업적인 광고 촬영이라면 콘셉트에 맞는 날씨가 조성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나는 사진을 찍으면서 날씨를 고려해 본 일이 별로 없다. 쿠스코에서도 그랬다. 맑고 쾌청한 날씨라고 좋은 사진을 얻는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애초부터 사진 찍기에 좋은 날씨란 따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게 좋은 날씨는 바로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는 그날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흔히들 말하는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 좋은 사진을 찍을 확률이 훨씬 높았다. 적에도 내게는 그랬고, 쿠스코에서는 그랬다. --- p.35, 「페루 쿠스코―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배꼽」 중에서
사실 아무리 전문적인 작가라도 풍경의 변화가 크지 않으면 무엇을 찍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특히 사막이나 휑한 초지 혹은 비슷한 지형이 연속되거나 비슷한 나무들만 있는 풍경일 때 특히 그렇다. 그럴 때는 무작정 무엇인가를 찍기 위해 고민하거나 달려들기보다 한 번쯤 카메라를 조용히 내려놓고 대상(지형)을 살피는 것이 좋다. 카메라의 프레임 바깥에도 수많은 풍경이 있다. 사진은 단지 풍경을 프레임에 가두는 행위만이 아니다. 프레임 밖 풍경도 놓치지 않아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러려면 가끔은 카메라를 내려놓고 눈으로 들어오는 커다란 프레임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 p.111, 「조슈아트리국립공원―With or Without you」 중에서
인물 사진을 찍을 때는 대화를 많이 한다. 때로는 사진 찍는 시간보다 더 많이 소모할 때도 있다. 이것저것 근황을 물어보기도 하고 사소한 주제를 놓고 짤막한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그렇게 사람에 다가가면서 대상으로 하여금 카메라 앞에서 긴장감을 풀고 렌즈를 친근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대화가 통하고 그 대화가 즐거웠다면 절반은 완성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내가 만나온 인물의 반 이상은 카메라에 그다지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다짜고짜 카메라를 들이대면 대부분 거부 반응을 나타내는데 그때 상대와 이야기를 하면서 찬찬히 들여다보면 어울리는 각도도 보이고, 기존 이미지와 다른 신선한 모습도 찾을 수 있다. --- p.141, 「당신이 꽃보다 아름다워」 중에서
배우 고두심 씨는 촬영을 위해 고향 제주도에서 가져온 전통의상을 손수 준비해왔고, 한국 화단의 대가 박서보 화백도 기꺼이 탈의하셔서 인상적인 사진을 위해 노력해주었다, 세계적인 미술가 제프 쿤스도 장시간에 걸친 다양한 요구에도 흔쾌히 동의해 인상적인 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 최근에 찍은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촬영도 좋은 기억으로 남는데, 그녀는 나와 작업하기 위해 무려 2년을 기다렸다고 한다. 물론 사는 곳이 국내가 아닌 해외이고 국제적인 활동을 많이 하기에 그렇다손 치더라도 긴 시간을 기다려준 그녀와의 작업은 지금도 나에겐 커다란 기쁨으로 남아있다. --- p.147, 「당신이 꽃보다 아름다워」 중에서
다정하지만 조금은 큰 목소리로 리드를 해야 하고, 주목도 시켜야 하기에 때때로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도 필요하다. 사진가는 차분한 협연자이지만 때로는 카리스마 있는 지휘자여야 한다. 좋은 작품 사진은 오랫동안 기분 좋게 하지만, 좋은 가족사진은 평생을 기분 좋게 한다.
--- p.187, 「가족사진은 사진의 시작」 중에서
하늘은 나에게 마음과 같은 대상이다. 비행기에 올라타 하늘에서 마주한 창 너머의 하늘도, 대지에 발을 디딘 채 올려다본 하늘도 사진을 찍을 당시 내 감정을 엿보는 듯하기 때문이다. 밝고 어두운 것, 구름이 많고 적음와 관계없이, 붉고 아름답게 노을 지거나 대기의 변화로 오묘한 색을 발산하는 우연한 시간에도 그 하늘이라는 커다란 시공간에 내 감정이 담긴다. 누군가 내가 촬영한 하늘을 마주하면서 쓸쓸하거나 행복하거나 더러 기대에 부푼다면, 결국 그것은 당시의 솔직한 내 감정이었을 확률이 높다. 그 많은 하늘 사진에는 매번 숨길 수 없는 내 감정이 흐르고 있는 셈이다. --- p.215, 「하늘은 숨길 수 없는 나의 감정」 중에서
이윽고 나의 사진들은 2015년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이루마의 음악으로, 음반으로 발표되었다. 당시 이루마는 나의 사진에 대해 “있는 그대로를 담은 안웅철의 곶자왈 풍경 속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죠. 잠깐 머물렀다가 사라질 것만 같았던 풍경들 그리고 선율들…”이라고 말했다. 이후 나는 그의 음악에 영감을 받아 직접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기도 했으니, 어쩌면 두 아티스트의 가장 바람직한 컬레버레이션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 p.237, 「마지막 천국, 곶자왈」 중에서
어머니는 오래전부터 “꽃은 온전히 자연에서 봐야 한다”고 말씀하곤 했다. 어머니는 꽃을 보고 싶으면 화단이나 공원, 가까운 산과 같은 자연이 있는 곳으로 나가서 보길 원했다. 그래서 나는 뿌리가 온전히 박힌(살아있는!) 꽃과 식물들만 사진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인공적인 조명도 피한다. 장미와 수국, 매화 등 모든 꽃 사진은 자연으로 나아가 뿌리를 박고 살아있는 상태의 식물에 다가가 촬영한 것이다. --- p.241, 「그래도 아름다운 것은 꽃」 중에서
잘 찍은 고양이 사진의 절반은 기다림이다. 그 나머지 절반에서 또 절반은 운이며, 그리고 나머지가 우연이다. --- p.292, 「오늘도 찍고 있습니다」 중에서
젊음은 떨어져도 상관없다. 다시 오를 힘이 있으니. 때로는 떨어지는 것도 아름답다.
--- p.295, 「오늘도 찍고 있습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