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첫 출판론집 『순간의 책 영원의 책』을 펴낸 지 30년 만에 다시 『대한민국을 읽다』를 엮어낸다. 이번에도 책에 관한 이야기를 썼으므로 필자에게는 제2출판론집이 되는 셈이다.
3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러 우리의 출판 여건과 독서환경도 많이 바뀌었을 것이므로, 책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써야할지 주저하는 마음이 앞서기도 하였다. 『순간의 책 영원의 책』이 출판물과 도서관과 독서행위의 유기적 관계에 유념하면서, 인류문화사 개시 이래의 원초적이고 보편적 지적 행위인 독서행위를 주된 명제로 삼고, 그에 부수된 도서의 제작, 서적을 통한 지식과 정보의 전달·유통 기능을 고찰한 소론小論들 모음이었다면, 이번의 책 『대한민국을 읽다』는 탐서력 50년간의 기나긴 세월 동안, 도회의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니며 찾아내어 사 모으고, 주워 모은 산더미 같은 책 무더기 속에서 우선 손길이 닿는 대로 가까이 있는 것부터 뽑아내어 읽어 본 3~40여 권점의 근현대사 관련 도서와 문학서, 그리고 문서팸플릿 소책자 신문 전단지에 대한 가벼운 독후감 형식의 소략疏略한 ‘독서 평설’모음이다. 다만 우선적으로 선택해 읽은 이 도서와 문서들이 주로 필자의 개인적 독서 취향과 기호에 맞춘 문文-사史-철哲주제의 근현대사 관련물에 집중되어 있는 관계로, 한 독서인이 쓴 ‘독사여적讀史餘滴’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요즈음 대학가와 속세간을 불문하고, 독서들을 하지 않고… 책이 팔리지 않고… 복사와 표절을 통한 지식 절도 행위가 공공연히 성행하고… 인문학이 죽어가고… 마침내는 ‘스마트폰 커닝’까지… 라는 비명 소리들이 귀 아프게 들려오고 있다.
그 완성될 실체와 도달할 종국점을 점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와 거대한 규모로 시시각각 천변만화의 변화의 묘기를 보여주며 명멸을 거듭하는 기묘-현란한 기능의 디지털인터넷 문명 도구들이 쏟아내는, 채 검증-정제되지 않은 조잡한 대중문화 수준의 정보 거리들의 범람 속에, 우리의 지식사회는 당연한 ‘원인과 결과’로서의 ‘인문학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고, 또한 그 틈새를 파고드는 ‘…힐링’ ‘…콘서트’ ‘…토크쇼’란 그럴싸한 이름의 정치적-상업적 목적의 저질스런 언어유희성 이벤트들이 대학가와 신문-방송계를 점령-장악하여 인류 지성 최후의 보류이어야 할 아카데미즘의 성채를 야금야금 허물어 가고 있는 21세기 초엽의 이 문명 광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출판-지식산업과 독서문화가 그 설자리를 잃어갈 수밖에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독서이야기’ 운운하는 이 소책자가 얼마만큼 이 땅의 지식시장의 구매인들의 지적 호기심과 독서욕구를 자극하고 유발해 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절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이 소책자의 출판을 계기로, 독자들과 함께 비정상적인 출판문화와 독서문화의 정상화를 위한 싸움에의 힘찬 행보를 내딛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쾌히 출판을 허락해 주신 권선복 사장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또 ‘화상?像편집’의 까다롭고 수고스러웠을 여러 편집절차상의 고초와 난관을 극복하고 본서 특유의 유별나게 까탈스런 원고를 잘 어루만지고 다독거려가며 아름다운 지면의 책자를 꾸며주신 김정웅 편집주간과 김성호 님, 원고교열을 꼼꼼하게 해주신 권보송 님, 멋진 표지도안을 해주신 이세영 님께도 아울러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15. 6.
날로 녹음이 짙어가는 관악산 아래
난향(蘭香)서실에서, 지은이
---「시작하는 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