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1차로 절정에 올랐을 때, 나는 동네를 산책하다 커피숍 바깥의 콘센트에 전원을 꽂고 스마트폰으로 숙제하는 젊은이들을 자주 보았다. 등교가 어려워지자 집에 인터넷이나 컴퓨터가 없는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작은 스마트폰으로 아등바등 과제를 작성했다. 그걸 본 후로 나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완벽한 글은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세상이 늘 열린 공동체가 되도록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1장, 갑자기 마주한 줌 세상」중에서
지금의 나는 일상을 비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시인이라고 부른다. 사회적 시인은 일상에서 고통받는 다른 인간에게 인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서, 언어의 연금술사가 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인간이 인간에게 예의를 갖출 줄 알고, 나의 일상을 충만하게 느끼고 지구의 모든 이들이, 서로 느끼는 결은 다르더라도, 저마다의 충만한 일상을 살아가기를 바라고 소망해야 한다. 우리는 비범한 일상에서 사람 냄새 나는 시를 노래해야 한다. 조금은 낮은 마음으로.
---「2장, 일상 속의 비범」중에서
루이스 하이드의 책 《선물》에서는 선물의 정의를 움직이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인류가 살아남은 방법은 좋은 것들을 서로 나누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쌓아두는 경제는 희귀함을 낳고, 결국 사람을 가난에 빠뜨린다는 요지이다. 반면에 계속 주고 돌리는 선물 경제는 충만을 낳고 생명력을 창조하는데, 바로 이 삶의 원리를 통해 인류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나를 위하듯이 남을 위하는 경제 철학이 일상에 뿌리내리면 좋겠다.
---「3장, 불확실한 시대의 슬기로운 생활」중에서
현대 21세기 글로벌 시대의 팬데믹은 죽음을 거부하는 인류에게 과연 무엇을 의미하며, 우리는 팬데믹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할까? 글로벌한 시각에서 현대의 삶을 보면, 우리 앞에는 제한된 자원, 분배되지 않은 경제구조, 무한경쟁이 낳은 인간성의 피폐, 기술력의 발전만큼이나 소외된 사람들이라는 거대하고, 공통적인 문제가 가득하다. 이제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고 이 문제들을 직면해야만 한다.
---「5장, 메멘토 모리」중에서
어느 무더운 여름날, 나는 파리 제1구역의 어느 노천카페에 앉아 애플 사이다를 마시고 있었다. 손님 대부분이 백인이었고, 나 같은 아시아 사람들은 드물었다. 갑자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제도시 파리에서 다양한 인종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좀 기이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며칠 후 찾아간 교외에서는 흑인들을 쉽게 마주쳤다. (…) 다시 돌아온 파리는 여전히 아름다운 예술의 도시이지만, 나는 근대 식민주의 정신이 물씬 풍기는 거리와 건물의 파사드에 강하게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콩코르드 광장에는 이집트 룩소 신전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가 난민처럼 뻘줌하게 서 있다.
---「10장, 이주, 난민, 디아스포라」중에서
나는 결국 비효율성을 의도적으로 취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AI가 담지 못하는 것이 어떤 건지 궁금증을 느끼는 사람, 확실성을 강요하는 세상 한가운데서, 삶은 꼭 그렇게 확실함 위에 서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하는 사람, 그래서 불확실성에 몰입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어쩌면 그 사람들은 컴퓨터가 출력해줄 수 없는 것들을 잘 보고 매끈한 화면 뒤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AI의 능력을 고마워하면서도, 가끔은 플러그를 뽑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느껴지는 교감을 찾아 꽃 한송이 사 들고, 어찌 사나 궁금한 벗을 찾아 홀연히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그런 사람일 것이다.
---「12장, AI와 친해지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