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소금꽃이 투명하게 빛날수록 소금 농사를 짓는 염부는 얼마나 많은 들숨 날숨을 내쉬었을까. 또 얼마나 많은 한숨을 토해냈을까. 바다가 내어주는 만큼만 거두며 살아온 세월, 염부는 욕심내지 않는 소박한 삶을 바다에서 배웠다. 염부의 소금창고를 가득 채우는 건 소금뿐 아니라 물먹은 소금을 대파질하며 쌓아올린 묵직한 삶의 무게였으리라.
--- p.15
버거운 일상이 지속될 때마다 눈물 나도록 그곳이 그립다. 훌훌 다 던져버리자, 마음을 먹고 나서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달려가는 곳이다. 깊게 쌓인 눈길을 헤쳐가다 보면 눈 덮인 아담한 마을이 펼쳐진다. 굴뚝에서는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른다. 옛사랑 떠난 길 지워지라고 눈이 내린다. 내가 걸어온 길도, 누군가 걸어간 길도 흔적 없이 사라진다. 그래도 좋다.
--- p.34
죽음까지 마지막 한 걸음만이 남았더라도 살아내야 한다. 삶을 지탱하려는 노력도 계속돼야 한다. 내가 보란듯이 애쓰지 않으면 깊은 외로움이 엄습할 것이다. 삶에 대한 확신, 살아야 할 이유를 놓치면 생은 일회성이 된다. 급기야 다 무너진다. 나를 죽음으로 밀어내는 이가 있더라도 나를 매우 아끼는 사람이 있다면 살 가치는 충분하다. 그러니까 좀 힘들어도 반드시 살아남아야지. 살아갈 이유, 사랑하는 이를 위해 부디 끝까지 버텨 잘 살아주길.
--- p.58
과거에 내가 아프고 힘들었던 이유는 무리한 욕심 때문이었다. 삶 자체를 스스로 복잡하고 골치 아프게 만들었다. 욕심을 충족시키지 못하니 마음이 다쳤다. 마음이 다치니 몸이 아팠다. 몸과 마음이 모두 아프니까 삶이 무너졌다. 지금 이렇게 단순한 삶을 선택한 이후로는 모든 것이 간단명료해졌다. 이제는 ‘조금 부족한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때는 일단 멈춘다. 그리고 지금의 행복한 삶을 돌아본다. 그것을 오래 유지하기 위하여.
--- p.87
그러니까 놓친 꿈들을 후회하기보다는 지금 여기, 내 앞에 멈춘 것들을 위해 살면 그만이다. 아름다운 현재를 놓치지 않으면 된다. 어제보다 오늘 더 잘 살면 된다. 가끔은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며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면 된다. 결과가 어찌 됐든 충분히 수고했다고 칭찬하면 된다. 내가 지금, 여기, 이렇게 일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에 감사하면 된다. 다른 누구가 아닌 나 자신에게 가장 먼저 감사하자. 쉬지 않고 글을 쓴 나에게 패랭이꽃을 선물하자. 가끔은 꽃의 향기를 맡는 것도 중요하다.
--- p.119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하고 공허할 때, 무언가를 얻으려고 욕심을 부릴 때, 가진 것을 잃을까 노심초사할 때, 마음은 계속해서 흔들린다. 이런 마음을 안고 사는 내가 안타깝다. 눈앞에 목표가 있어야 인생의 방향을 잃지 않는다. 목표지점에 도착하느냐, 하지 못하느냐는 사실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사랑, 성취감, 행복, 열정이 살아갈 이유다.
--- p.132
다시, 희망을 잉태한 자연의 참모습은 나에게 침묵과 성찰의 시간을 선물한다. 참으로 위대하고 경이롭다. 나의 내년은 또 어떻게 전개될지. 부드럽게 살랑이며 설렘으로 다가오는 기쁨은 언제가 될지. 소낙비처럼 퍼붓는 고통을 온몸으로 맞아야 하는 날은 얼마나 될지. 가을 하늘처럼 푸르고 맑은 날은 언제일지. 회색빛 겨울 하늘 같은 고독한 날은 얼마나 될지.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상상해본다.
--- p.185
그러나 아무리 조심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잠시 미뤄질 뿐. 살다 보면 내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되는 일이 있다. 마음과 몸이 각각인 날이 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일이 일어난다. 그럴 때마다 가슴 안에는 무수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친다. 언어는 그곳에서 소리를 잃고 침묵한다. 침묵으로만 설명해야 될 일들이 생긴다. 내일 일도 알 수 없다는 것이 헛헛하다. 쓸쓸하다. 그런 인생을 버텨내는 나도 대단하다.
--- p.212
얼음물을 들이켜니 정신이 듭니다. 이제 나도 잘 지낼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도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당신도 나도, 행복하길 바랍니다. 더 이상 우리 사이의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각자의 곳에서 각자의 행복을 품고 잘 살기를 바랍니다.
--- p.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