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월성핵발전소 인근 마을 주민 40명에게 소변으로 삼중수소 검사를 했는데 100%가 오염됐다고 한다. 불안정한 원자핵이 방사선을 방출하는 능력 또는 그 세기를 방사능이라고 한다. 방사능은 외부피폭보다 호흡기나 음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내부피폭이 훨씬 위험하다. 방사능에는 남성보다 여성이, 어른보다 세포분열 속도가 빠른 어린이가 더 민감하다.
--- p.14, 「1장 : 2017년, 고리와 나아리」 중에서
독일은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이후 40년 동안 환경단체와 시민들이 핵에너지 반대 운동을 해 왔다. 이에 독일 정부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난 2011년 여름에 8개의 핵발전소 즉각 폐지를 선언했다. 그리고 2022년까지 핵에너지 완전 폐지를 목표로, 에너지전환을 위해 전력 회사들이 재생 가능 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도록 20년간 관세 혜택을 보장하고 있었다.
우리도 태양열, 지열, 풍력, 조력, 바이오매스까지 재생 가능 에너지를 개발할 수 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에서 보았듯이 핵발전소의 위험은 이미 우리 통제선을 넘었다. 경주와 포항의 지진을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게다가 핵폐기물 처리는 전 세계의 골칫거리다.
--- p.33, 「2장 : 2017~2018년, 신고리와 서울」 중에서
마침내 기다리던 여름이 왔다. 그런데 출발 24시간 전, 동네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져 왼쪽 발목 인대를 다쳤다. 대입학력고사 일주일 전, 유럽여행 열흘 전,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 이틀 전인 이번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 정도면 징크스. 그나마 다행인 건 처음엔 목발을 짚어야 했지만 두 번째는 반깁스, 세 번째엔 압박붕대로 점점 증세가 가벼워졌다는 점이다. 하지만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다친 다리로는 도보로 순례할 수 없다. 그러나 한번 먹은 마음 돌이킬 순 없었다. 예매했던 차표를 모두 취소하고 슬리퍼를 신고 자동차 핸들을 잡았다.
--- p.38, 「3장 : 2018년, 영광부터 서울까지」 중에서
막 핏빛으로 물드는 태양이 서해를 향해 곤두박질치는 시간에 하필이면 평택 미군기지를 지나고 있었다. 지난 5월에 광주에 다녀온 기억이 솟아나더니 눈물이 철철 흐르기 시작하면서 한마디가 떠올랐다.
‘살육의 시대.’
총칼로 짓밟히던 시절을 지나 핵무기와 핵발전소로 생명을 위협당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었다.
--- p.52, 「3장 : 2018년, 영광부터 서울까지」 중에서
탈핵운동의 끝에는 소박한 삶이 있다. 순례단이 나눠 주는 전단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크고 높고 넓고 많은 것이 최고인 물질 가치 기준에서 정신, 문화의 가치가 우선되는 작고 낮고 좁고 적은 것에도 행복할 수 있는 소박한 삶으로 우리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생활 규범을 바꿀 때 지구도 숨 쉬고 탈핵의 길도 열리고 생명의 길도 열릴 것입니다.”
--- p.55, 「3장 : 2018년, 영광부터 서울까지」 중에서
핵발전소 인근 주민 다수가 암에 걸렸다. 그런데 재판부는 장기간의 저선량 피폭은 피고(한수원)의 손해배상책임의 판단 기준으로 채택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리고 핵발전소 주변지역 여성의 경우 갑상선암 발병 비율이 2.5배가 높다는 역학조사 결과와 관련해서도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명시했다. 또한 원자력손해배상법상 사건이 되기 위해서는 원자력안전위원회고시 제2020-3호에 근거해 사고 등급 4 이상의 사고가 발생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4등급 이상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며 원고들의 주장을 기각했다. 민법 제750조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에 대해서도 피고의 불법행위를 인정할 수 없다며 원고들의 주장을 기각했다. 마지막으로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의 손해 및 인과관계에 대한 추정을 허용하는 입법이 이뤄지지 않는 한 사법부로서는 현행 법률과 판례에 기초한 증명책임의 법리에 따라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고 한다.
--- p.106-107, 「6장 : 2019년, 삼척과 고리부터 월성까지」 중에서
182일째 고공농성하고 있는 영남대 의료원 해고노동자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전 지도위원을 응원하기 위해 암 투병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부산에서부터 111km를 걸어가는 여정에 그 200여 명이 9km 남짓을 함께 걸었다.
남녀노소 빈부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한 번에 한 걸음씩만 걸을 수 있다. 걸음이야말로 평등한 행위이다. 우리는 생명을 살리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평등한 발걸음을 함께 내디뎠다. 길 위는 비움 실천에 가장 적합한 장소다. 어깨와 다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길 위로 나아간다.
--- p.129, 「8장 : 1일 1비움」 중에서
월성핵발전소는 경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접지역인 울산의 문제이기도 하고, 동일 활성단층 위에 있는 경상도의 문제이기도 하고, 핵발전소에서 핵쓰레기가 배출되는 이상 모든 핵발전소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쓰는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내 이웃의 문제는 곧 내 문제가 된다. 그것은 지구에 사는 이상 폭우와 폭염과 혹한과 지진을 누구라고 해서 피해 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미 지구는 우리에게 기후위기로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인간이 멈출 수 있는 재앙이라도 하루빨리 조치를 시도해야 한다.
--- p.155, 「9장 : 2020년, 경주 나아리와 울산 북구」 중에서
오후 1시쯤 저 멀리 고리핵발전소가 보였다. 그런데 그 지점부터 해변에 카페와 캠핑촌이 즐비했다. 대체 핵발전소가 관람 거리라도 된단 말인가. 방사능의 위험성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걸 보면서 차를 마시고 캠핑하고 싶지는 않을 텐데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일광해변 지나 임랑해변으로 가기 전, 마을에 들어서는 나를 보자 한 할아버지가 소리를 쳤다.
“아니 전기 안 쓰고 살아?”
그 뒤에 두세 명이 뭔가 거들려고 들썩였다. 그런데 내 뒤에 있던 은정이 맞받아쳐 더 크게 소리쳤다.
“방사능이랑 핵폐기물은 어쩔 건데요?”
그 뒤에 영상까지 걸어오는 걸 보자, 마을 분들이 더는 소리치지 않았다.
--- p.161-162, 「10장 : 2022년, 다시 고리와 나아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