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그럴까’ 궁금한 것 중에는 머릿속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게 있습니다. 오래 묵은 궁금증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대화로 조금씩 무르익습니다. 그렇게 저온숙성하듯 오랫동안 조금씩 알아간 것들을 엮었습니다. 사소하거나 지루한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으니 먼저 목차를 훑어보시기를 바랄게요. 앞·뒤로는 식빵처럼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가운데에는 닭가슴살처럼 뻑뻑한 이야기를 넣었습니다. 지루하면 다음 꼭지로 넘어가시고요, 그래도 안 되겠다 싶으면 ‘극약처방―타이포그래피 이야기’(189쪽)로 건너뛰셔도 좋을 거예요.
--- p.11, 「27년 동안 글자를 만지면서…」 중에서
‘고양이’라고 쓴 후 100명에게 본 대로 쓰라고 시키면 100개의 글자체로 고양이를 쓸 것이다. 이것들을 보여주고 타이핑시키면 하나같이 ㄱㅗㅇㅑㅇㅇㅣ를 입력할 것이다. 문자코드로 저장된 ‘고양이’ (ACE0+C591+C774)는 언제든 다시 읽거나 따라 쓸 수 있다. 몸을 거쳐 유일한 고양이로 태어났다가 컴퓨터를 거쳐 하나의 ‘고양이’로 저장된다.이렇게 하나가 여럿이 되는 변이와 여럿이 하나가 되는 변환은, 말한 걸 듣고, 들은 걸 쓰고, 쓴 걸 읽기 위해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다. 결국 소통(말하기-듣기-쓰기-읽기)의 본질은 ‘하나로 모으기와 여럿으로 펼치기’의 반복이다쓰기는 살아있는 동물의 움직임이 남긴 독특한 궤적으로 만인의 예술이다. 그리고 타이포그래피는 그 궤적을 모아 폰트로 재현한 움직임으로, 만인을 위한 예술이다.
--- p.47, 「만인의 예술―쓰기」 중에서
한편 동아시아의 쓰기 문화는 목판술의 발명으로 일찌감치 찍기 문화를 꽃피운다. 8세기 중반에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찍었으니 천년 넘게 이어온 셈이다. 목판술의 번성은 목활자로 이어져 금속활자 발명의 토대가 됐다. 목판술은 서구 중심의 타이포그래피 역사관으로는 설명하기 애매해 홀대받았지만, 동아시아 타이포그래피의 기틀을 다진 보물 같은 존재다.오랫동안 꾸준히 가꿔온 복제술의 맥락에 ‘쓰기의 기계적 확장’이라는 이름을 붙여 봤다.
--- p.65, 「쓰기의 기계적 확장―복제술 이야기」 중에서
어떤 스타일을 따른다는 것은 어떤 공동체(일종의 클럽)에 가입하는 것이다. 그곳의 규범에 따라 행동하고 소속감·연대감을 느끼며 심리적 안정을 찾기도 한다. 우리는 스타일을 따르거나 거스르기를 반복하며 자신을 드러낸다. 그렇게 다수가 따르는 스타일의 추세를 트랜드라고 한다.인간은 더불어 살아가는 한 의·식·주에 걸쳐 여러 스타일을 따를 수밖에 없다. 단지 따르는 스타일이 많으면 세상의 변화를 빠르게 느낄 수 있고, 적으면 내 색깔을 뚜렷하게 만들 수 있을 뿐이다
--- p.91, 「한 몸의 여러 움직임―스타일 이야기」 중에서
타자기는 피아노의 구조를 본떠 만든 기계로, 키보드를 누르면 연결된 활자가 종이를 내려쳐 글자를 찍는다. 작고 가벼운데 입력(키보드)과 출력(프린터)을 동시에 처리했고 손글씨보다 가독성이 좋고 빨랐으며 휴대성까지 좋은 획기적인 고효율 IT 기기였다.그러나 한자를 중시하던 20세기 중반의 국민 정서는 한자 입력도 안 되는 한글타자기 따위는 굳이 원하지 않았고 개발 사실도 반기지 않았다. 하물며 재봉틀이나 탈곡기처럼 먹고사는 데 필요한 기계도 아니고, (한글을 쓰지 않는) 이웃 나라에 수출할 수도 없는 기계를, 해외 원조까지 받는 최빈국이 스스로 개발했다. 어찌 된 일일까
--- p.125, 「폰트·키보드·프린터를 하나로―한글타자기 이야기」 중에서
어릴 적 배운 한글은 너무도 독보적이어서 부모·형제·친구도 없이 다 큰 상태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신화 속 주인공 같았다. 그때는 참 멋져 보였으나 유소년기가 없다고 생각하니 안쓰럽다. 그러다 문득 ‘그게 가능한가?’며 오랜 생각을 의심했다.한글에게 친구는 없었던 걸까. 모아쓴 한글은 한자와 가까워 보이고 풀어쓴 한글은 라틴문자와 가까워 보인다. 일본의 가나와도 오랫동안 같은 고민을 해 온 사이다. 이제 보니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닌데 외로워 보인다. 혹시 문자들끼리는 친한데 사람들이 말리는 건 아닐까. 아니면 다들 내향적인 걸까. 한글의 MBTI(성격 유형)는 무얼까.
--- p.153, 「고독한 하이브리드―한글 이야기」 중에서
인류는, 뇌가 읽기를 싫어해 어떻게 해서든 읽지 않을 이유를 찾는 걸 알고부터 감미로운 타이포그래피라는 극약처방을 내려왔다. 그 덕분에 한 줄이라도 더 읽은 사람에게 타이포그래피는 고마운 존재지만, 여전히 단호한 사람에게는 불나방처럼 성가신 존재다.타이포그래피를 성가셔하는 사람보다 고마워하는 사람을 늘리려면 타이포그래퍼가 성가셔야 한다. 그들은 육중한 읽기의 빗장을 풀고 친절히 사색의 공간으로 안내하고는 어느새 명랑해진 사람을 멀찌감치서 지켜보며 온화하게 미소 짓는 비밀요원 같은 존재다. 미리 성가신 문제를 손보려면 그런 사명감과 자부심이 필요하다. 딱딱하게 말하면 직업윤리다. 불나방을 꽃나비로 바꾸는…
--- p.189, 「극약처방―타이포그래피 이야기」 중에서
집에 오는 길에 하늘을 보면 기분이 좋다. 가장 먼발치를 보는 것만으로 가장 멀리 보는 사람이 된다. 구름이 보이는 파란 여름 하늘도 좋고 달이 보이는 까만 겨울 하늘도 좋다. 그렇게 매일 만나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하루하루를 이어 붙이는 세계관이 된다.최근에 하늘을 본 것이 언제인가. 땅만 보며 출근해서 모니터만 보고 일하다가 폰만 보다 잠들면 마음이 막혀 숨도 얕아진다. 아침 하늘은 복어처럼 가슴을 부풀리고, 밤하늘은 어린 왕자처럼 삶을 비춰준다. 그렇게 우러르며 곱씹은 혼잣말은 현실이 된다.
--- p.221, 「삶의 오른팔―세계관 이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