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그런 말 듣고도 왜 가만히 있어?”
“뭐, 뭐가?”
“너에 대해 나쁜 말을 하고 있었잖아. 억울하지도 않아?”
소금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누가 억울하지 않고 기분 나쁘지 않단 말인가.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나더러 싸우라고?”
성큼, 한 걸음 나선 한빛이 몸을 돌려 소금과 마주 봤다. 그의 얼굴은 어쩐지 화가 잔뜩 난 표정이었다.
“그럼, 억울한 소리를 하는데도 그냥 둔단 말이야? 싸워야지, 싸워서 이겨야지!”
소금은 확 짜증이 일었다.
“이겨서 뭐하게? 그 사람들이 뭐라 떠들든 나하곤 상관없는데 뭐 하러 일을 크게 만들어? 싸워서 얻는 게 뭔데?”
“그럼 그냥 둔다고? 너한테 뭐라 하는데, 그냥 둔다고?”
한빛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소금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는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너, 정말 못났구나?”
“뭐, 뭐라고?”
“왜 사람들이 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걸 그냥 냅둬? 화도 안 나?”
소금은 입을 꾹 다물었다. 어차피 그래 봤자 종국에 나쁜 말 듣는 건 언제나 소금이었다. 소금이라고 안 싸워봤겠는가.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얼굴도 못난 게 성격도 더럽다는 말뿐. 그 말을 들은 뒤로 소금은 더 이상 소모전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화가 나면 뭐해? 어차피 잘못은 다 내가 했다고 하는데.”
우울함이 잔뜩 묻어나는 소금의 말에 한빛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넌 모르지? 원래 못생긴 사람들이 죄가 큰 거야. 세상이 그래.”
소금은 외모 때문에 아주 많은 억울한 일을 당해야 했다. 그럼에도 이를 악물고 살을 빼겠다고 결심하지 않은 건, 자신감 부족 때문이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그런 의지마저 앗아가곤 했다. 뭔가를 하려 해도 네 까짓 게 뭘 하겠어, 라는 시선.
“꽃소금.”
낮은 목소리가 한빛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소금의 얼굴에 걸린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탓하고 있다는 듯한 표정.
“세상은 안 그래.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 칭찬하는 게 세상이야.”
“무슨…… 뜻이야?”
“외모하곤 상관없어. 네가 네 자신에게 최선을 다한다면 사람들은, 세상은 네 편이야. 그걸 왜 모르니?”
“웃기고 있네. 그건 너 같은 사람들이나 하는 소리야.”
한빛의 눈이 깊어졌다. 왜 사람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지 답답했다.
“꽃소금.”
“왜 자꾸 불러!”
짜증을 부리며 걸어가는 소금의 어깨를 잡곤 한빛이 돌려 세웠다. 컥, 하는 소리와 함께 소금은 숨을 들이마셨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한빛의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 항상 느끼한 표정을 짓거나 살랑살랑 웃기만 하던 그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져 있었다. 어깨를 꽉 잡은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감이 느껴졌다.
“왜, 왜 이래?”
“너.”
낮은 목소리와 숨결이 그녀의 이마에 와 닿았다.
“왜, 왜 그래……?”
“너, 예뻐.”
한빛은 진심을 담아 속삭였다.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 따윈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저 소금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무, 무슨 소리야?”
입으로는 부정을 하면서도 그녀의 얼굴을 발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잘생긴 남자가 진지하게 자신에게 예쁘다는 말을 건네고 있었다. 순간, 소금은 자신을 되찾았다.
“이거 놔!”
거친 몸짓으로 한빛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소금은 입술을 깨물며 그를 노려봤다.
“내 눈엔 네가 제일 예뻐.”
하마터면 그의 말에 눈물이 나올 뻔했다. 그만큼 한빛의 눈빛은 진지했고 진심이 담겨 있어 보였다. 하지만 소금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장난치지 말고 너한테 어울리는 여자나 찾아봐. 나 놀리는 재미가 쏠쏠한가 본데, 난 싫거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처럼 대놓고 놀림을 당하는 경우는 난생처음이었다. 그녀에 대해 뭐라 험담을 늘어놓을 때는 적어도 그녀의 뒤에서 하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남자는 대놓고 그녀를 놀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놀리는 거 아냐!”
한빛은 한빛대로 화가 났다. 왜 사람의 진심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넌 왜 사람의 진심을 믿지 못하니?”
“진심?”
소금의 눈이 한빛의 눈을 꿰뚫었다.
“진심이라고? 지금 네가 한 말이? 미친놈. 작업 걸려면 너랑 딱 어울리는 여자한테나 걸어. 지금 저 사람들이 안 보이니? 너랑 같이 있으면 나만 욕먹거든? 그리고 그런 개코같은 멘트, 요즘 시대에 안 맞는 거 알지?”
따다다닥, 쏘아대는 소금의 눈에는 물기가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한빛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예쁘다는데 왜 우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이런 경험이 없던 탓에 그는 돌아서 가버리는 소금을 잡을 수 없었다. 우는 여자를 달래주는 일, 지금껏 한빛이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뭐야, 왜 울어…….”
널찍한 소금의 등을 바라보며 한빛은 가만히 중얼거렸다. 어떻게 해야 소금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빛은 한동안 뜨거운 태양 아래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그렇게 서 있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