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한국인의 범위는 20세기 이후 동아시아로 확장되어 왔다. 백름의 재일조선인미술사 연구는 일본 땅에서 전개된 한국인 미술의 역사를 소생시키는 작업이다. 사람이 만든 무늬인 예술의 역사를 서술하는 행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과정은 ‘우월’한 것을 수확하는 게 아니라, 소멸해 가는 것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노력이다. 그 시작은 ‘해석’이 아니라 ‘사실’에의 충실성이다. ‘사실’에 충실한 연구자 백름은 마치 주술사처럼 사라지는 것들을 우리 앞에 불러와 20세기 한국미술사의 영토를 넓혀주고 있다.
- 최열 (미술사학자)
이 책은 재일조선인 3세의 손으로 기록한 최초의 ‘재일조선인미술사’이다. 즉 1945년부터 8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본격적인 연구서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째서였을까. 저자는 어떻게 이를 해낼 수 있었던 것일까. 식민주의나 젠더론의 관점에서 상당히 축적된 재일조선인 문학연구와는 달리, 재일조선인의 미술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단편적으로만 전해져 왔다. 선행연구는 빈곤했으며 사료나 자료 역시 압도적으로 부족했다. 따라서 저자는 착실한 인터뷰 조사를 수행하며 작품과 자료를 발견하는 동시에 새로운 방법론까지 고안해냈다. 저자가 선택한 방법은 잊힌 ‘거장’과 ‘걸작’을 발굴하거나 정체성론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1945년 해방에서 1962년까지의 시기에 초점을 맞춰 점점이 흩어져 있던 흔적을 추적하여 그들의 발자취를 촘촘한 그물코로 건져 찾아내는 것이다. 백름은 격동의 시기를 월경越境하는 존재로 살아간 재일조선인의 생활과 문화에 관해, 자신의 실존을 걸고 질문한다. 기존의 ‘미술사’의 존재 방식까지 되묻고 있는 이 책은 재일조선인미술사 연구의 토대를 쌓은 획기적인 노작이기에 후속 연구자에게 필독서가 되리라 믿는다. 한국에서 많은 독자를 만나 새로운 논의가 일어나기를 바란다.
- 기타하라 메구미 (미술사학자, 오사카대학 명예교수)
책을 펼치는 순간, 화려한 색감으로 칠해진 군상들의 분노, 절망, 희망에 가득한 얼굴들과 마주할 것이다. 어떤 그림은 낯설기도 하고 어떤 그림은 익숙하다. 그러나 이 그림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림 하나하나에 얽힌 사연들과 그들 재일조선인이라 불리는 미술가들의 고뇌를 말하는 연구자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다가, 다시 그림들을 펼치고 이번에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미술사 연구자 백름은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사람들의 흔적을 무려 20년간의 연구를 통해 ‘발굴’해냈다. 페이지마다 등장하는 강렬한 그림들, 이 그림들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1945년 해방 이후부터 제주 4·3, 한국전쟁, 4·24 한신교육투쟁, 귀국운동, 4·19 혁명, 5·16 군사쿠데타 등 한반도와 일본의 격변 한가운데에서 재일조선인미술가들이 어떤 고뇌와 씨름했는지 사료와 인터뷰를 통해 보여준다. 또 이들이 단순히 ‘그리고 전시하는 일’에 머물지 않고 일본과 한반도의 변화를 위해 목적의식적인 활동을 펼쳤음을 증명한다. 한편, 그러한 시대를 살았던 재일조선인들의 폭발하는 듯한 긴장과 열정을 연구자 백름은 지극히 냉정하게 또는 객관적인 시각에서 서술하고 있다. 이는 연구자 스스로가 재일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졌으며 그가 연구하는 대상이 자신의 ‘지금’을 만든 선대들이라는 자각에서 오는 조심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전히 재일조선인에 대한 편견과 혐오, 무지가 만연한 곳이 현재의 일본과 한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깊이 이 책을 읽다 보면 글 저변에 깔린 저자의 자신감과 확신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백름은 이 연구를 통해 재일조선인미술가들이 올바른 역사적 위치를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하며, 점으로 산재한 이들을 하나의 선으로 연결하는 이 작업이 결국 남과 북, 일본이 잊고 있는 소중한 무언가를 깨닫게 해줄 것이라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책에서도 말하고 있듯 아직 해결되지 않은 많은 과제가 흥미진진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언젠가 남과 북, 일본에 흩어져 있는 그들의 그림이 한 장소에서 전시될 날을 그려본다.
- 김명준 (영화감독, ‘몽당연필_조선학교와 함께 하는 사람들’ 사무총장)
재일조선인미술사는 자명한 존재가 아니다. 일본의 ‘화단’을 통해 질서화된 ‘미술’이라는 제도에서 보면 주변적이고 단편적일지도 모른다. 백름은 그들의 역사를 서술하는 데 있어 ‘화단’에서 인정받기 위해 ‘주류’의 가치관에 따라 평가하는 방식의 연구 태도를 거부했다. 그렇게 미리 ‘주어진’ 미술을 출발점으로 삼지 않고, 전후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살아가며 표현 활동을 펼쳤던 미술가들의 삶의 현장에서 출발했다. 그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백름은 계속 움직였다. 재일조선인이 그린 작품을 보기 위해. 미술가와 그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삶과 투쟁 속에서 창출된 작품과 그 흔적을 찾기 위해. 거기서 빚어진 역사는 풍요롭다. 그 표현의 형태는 액자에 담긴 작품뿐만 아니라 삽화, 표지화, 만화 등 실로 다양하다. 미술가들은 문학가, 음악가, 영화감독 등과 교류하며, 일본 미술가들과도 관계를 맺으며, 냉전의 분단을 극복하고 연대하며 표현해 나갔다.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으로부터 출발한 까닭에 역사 서술은 폐쇄적이지 않고 모든 방향을 향해 열려 있다. 그것은 생활의 역사이고 투쟁의 역사, 유대의 역사이며 무엇보다도 표현의 역사이다. 또한 백름이 계속 살아 나간 현대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 번역본의 출판은 또 다른 새로운 연결고리를 만들어 낼 것이다. 더욱 풍요로운 재일조선인미술사 구축에, 그리고 분단을 극복한 인간적 관계 형성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 이타가키 류타 (역사학자, 도시샤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