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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만약 뜨거운 연주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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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0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96쪽 | 135*210*15mm
ISBN13 9791158544447
ISBN10 1158544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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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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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몰아쉬며 옥타브를 넘나들다가
페달에 막혀 치고 나가지 못하는 나에게
까만 눈의 도돌이표가 나지막히 속삭인다

우린 모두 허무의 바탕에 빛나는 별,
빛나는 선율이라네

다시 상처 입은 달세뇨로부터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피네를 향해 걷는다
사는 게 만약 뜨거운 연주라면 뜨거운 연주자로,
손과 발이 닿는 곳 어디에서든

유일한 노래가 되어 보려고
---「사는 게 만약 뜨거운 연주라면」중에서

비 오는 저녁, 배고픈 여자 하나가 카페로 들어선다 외로움과 괴로움만 남은 카페,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 외로움을 산다 외로움을 까먹으며 비가 그치길 하염없이 기다려 보다가 카페 주인에게 우산을 빌렸다

등이 구부정한 노인이 괴로움만 남은 카페에 왔다 진열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함께 온 아들에게 괴로움뿐이라 말했다 물이 떨어지는 우산을 든 아들이, 정말 괴로움뿐이냐 물었다 노인은 희미하게 웃었다

눈 내리는 오후, 앞 못 보는 꼬마 하나가 아빠의 손을 잡고 들어왔다 괴로움과 외로움을 쓸어 담는 남자 곁에서, 아이는 우연을 찾았다 같잖은 희망이 아닌, 타고난 재능이었다
---「인생 카페」중에서

기름기 번들번들한 얼굴로 고급 승용차를 모는
부자들에게 관대한 성직자가 있었다
부족한 점 하나 없는 그의 감동 설교에

가난한 성도들이 많이 울었다
---「폭소」중에서

동그라미는 기억도 안 나는 동창생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소외된 학창 시절을 보내왔을 동그라미가
정신질환을 앓는다 하여
안타까운 마음에 그동안 대응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동그라미를 도와,
악의적으로 진술서를 적은 동급생들에게는 너그럽게 선처하겠습니다
철없던 시절, 저로 인해 상처받은 분이 계실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는 점 마음에 새기고,
절대로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며 반성하고 살겠습니다

제 잘못된 학창 시절이 불씨가 되었던 점만큼은 부득불 인정합니다만,
저는 기억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말로 기억나지 않겠습니다
사실이라 한들, 학교폭력 공소시효는 이미 지났습니다

굉장히 오래된 과거의 일을 마치,
지금 눈앞에서 일어난 일처럼 또렷하게 기억하는 동그라미가
제정신으로 보이시나요?
---「술은 마셨지만 음주 운전은 아니에요」중에서

요란한 생일 파티가 길어지고
지붕 위에는 조각달이 차오르는데
만월엔 이르지 못한 계절
아홉 번째 날에 태어난 주인공들은
아홉 같은 밤을 지새며
십에 닿을 수 없는 건배를 한다

십이 아니어도 좋아!

여전히 아홉 같은 아침의 농담은
십을 몰라도 온종일 부르는 노래
마지막까지 하나쯤 모자란 이야기
끝까지 미완인 작품

그래서 낭만적인
---「아홉」중에서

세상의 어떤 결핍들은 그냥 주어지고, 사람은 오직 경험한 것들 안에서만 진실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바로 결핍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내게 거저 주어진 생명과 그저 주어진 약점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힘이다. 누구도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기에, 스스로 묻고, 찾고, 답해야 한다. 그렇게 매일을 성실하게 애쓰고 있을 또 다른 타인들에게 친절을 베풀면서 말이다. 헤아림의 깊이만큼 사람은 넓어진다. 내 이름을 사랑하기로 한 선택으로 다른 이들의 이름에도 사랑과 친절을 베풀고 싶다. 한낱 잔파도에 일렁이지 않는 깊은 물의 길을 걷고 싶다. 마침내 바다에 이르기 위하여. 그래서 내가 세상에 줄 수 있는 작은 친절은 진실한 글 한 편이란 생각을 해본다.
---「시인의 에세이」중에서

사는 건 마치 뜨거운 연주와도 같아서, 자신만의 박자와 셈여림을 따라 주어진 악보를 해석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매일 연습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삶이다. 미완이어도 괜찮은 하루다. 자유롭게 연주하며 즐길 수 있다면 더없이 아름다운 삶일 것이다. 건반 위에서 자기만의 방식대로 춤을 출 수 있는 자존만큼 눈부신 자태는 없다. 삶이 나를 비겁하게 속이는 시절마저도 나만의 특별한 자산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 틀림없이 그 곡은 명곡일 것이다.
---「시인의 에세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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