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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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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0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117쪽 | 172g | 124*194*20mm
ISBN13 9791192986111
ISBN10 119298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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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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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빌려줄 수 있어? 아빠, 오늘 밀수 담배 좀 팔았어. 나는 초록 머리를 하고 클럽에 갈 거야. 클랙슨이 빽빽거리네. 덜떨어진 아빠 애인이 왔나 봐. 그년에게 제발 자동차 바꾸라고 해. 어젯밤에는 고속도로 한중간에 서 있는데 150킬로로 쌩쌩 달리는 차들이 나를 비켜 갔어. 죽음의 천사들은 맹인이야. 하지만 꿈은 기계들의 피투성이였어. 커트 코베인의 유서를 대필했다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을 만났어. 그 사람은 자기 고양이를 죽인 거야. 펭귄이 변기에 서서 오줌을 누었나 봐. 어제 쓴 일기에서 지린내가 나. 유치원은 술집으로 바뀌었고, 추문들이 동물 애호가의 입에서 흘러내려. 길에서 죽은 창녀를 개가 뜯어먹고 있어. 머리가 둘 달린 엄마는 도박장에 갔고, 동생은 홍대 앞 지하 클럽에 갔어. 나는 지금 고스트록에 물들어 있어. 아빠, 자살하지 마. 너무 웃기니까.
---「꼬깔콘을 손가락에 끼고」중에서

한밤의 헤비메탈, 너는 없어 여기 없어 씨바, 나선형 계단에서 담배를 피우는 한 남자, 밤하늘로 별들이 날고 누구나 중력을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십억 비트의 오르가슴이 티슈 한 장으로 포물선을 그린다 무중력을 견디는 머리가 짧은 여자, 느린 박자에서 지지직, 우주의 목소리가 대번에 속도를 높인다 테크니컬 헤비 헤비, 날개를 부러뜨릴 듯 씨바 씨바스, 어둠 속으로 날카로운 비트가 출렁인다
---「박쥐」중에서

나는 쓴다. 폴린 보티의 웅숭깊은 엉덩이에 쓴다. 애벌레는 하얀 거품을 덮어쓰고 투명하게 꿈틀거리지. 나는 도브 비누를 쓴다. 동그랗게 날아오르는 비눗방울들. 처끈처끈한 눈이 물끄러미 떠다니고 물의 메아리가 안개를 쓴다. 너는 라깡을 쓴다고 했지. 난 술이 깨지 않아 나가르주나인지 나가주, 나주인지 헷갈려 소주잔에 새우깡을 빠뜨렸지. 골디록스는 곰 세 마리의 욕조 안에서 거품 목욕을 했지. 태양이 유리창을 깨뜨릴 때 멀리서 어흐어흐, 애애, 공기가?쓸렸지. 시는 쓴 입술입니다. 애젖한 빨강이 달아오른 곽인식의 유리로 쓴 말들 나는 깊이 쓴다. 유리창이 얼비치게 투명한 비누를 쓴다.
---「나는 다단계 판매원이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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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전기철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 복화술 극을 보는 것 같다. 시의 행간마다 시공간을 교차하면서 감각적이고 낯선 존재들을 소환해내는 장면들은 각지고 견고하다가도 백지가 넘어가듯 가볍다. 시인은 우리가 생각해 오던 시의 질료와 서정의 장소들을 그로테스크하면서도 그만의 언어인 ‘유리로 쓴 말들’로 바꿔버린다. 그의 언어들은 벽과 어둠을 건너다니고, 장미 넝쿨 사이에서 천사의 손짓이 되고, 빛이 가득 찬 알약 통으로 반짝인다. 시집을 읽다 보면 여러 행성을 여행하는 시간 여행자를 만난다. 그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며 당신의 꿈속에 들어갔다가 저 멀리서 손을 흔드는 사람이다. 홀린 듯이 시공간을 넘나들다가 시집을 덮고 나면 당신은 슬픔 중에서 가장 말랑한 부분을 만지거나, 창문 너머에서 저음으로 떨리는 사랑과 증오를 얼핏 마주하게 될 것이다.
- 정현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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