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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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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9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100쪽 | 128*182*15mm
ISBN13 9788960217324
ISBN10 8960217328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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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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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닭을 돌보고 나는 꽃을 돌본다
닭이 꽃밭을 헤집어 망가뜨릴 때마다 나는
부러진 꽃가지를 들어 호통치며 닭들을 쫓는다.
그렇게 마당을 몇 바퀴 돌고 나면
닭보다 먼저 내가 지쳐 꽃가지를 던지고 주저앉는다

그는 달걀을 거두고 나는 꽃씨를 거둔다
꽃씨가 발아되기 무섭게 꽃밭이 파헤쳐지지만
용케 살아남은 한두 포기가 꽃을 피운다

쇠락한 꽃들이 봄을 기약하며 잠자러 들어가면
꽃밭도 옷을 벗고 잠자리에 든다
이때부터 꽃밭은 벌레를 찾아 여행하는 닭들의 성지가 된다
잠자던 꽃들이 뿌리 뽑혀 놀라 까무러치고
그 광경에 내가 더 까무러쳐 빗자루를 들어 또 닭들을 쫓는다

애초에 상생할 수 없는 존재들이 한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파헤쳐진 화단을 매만지며
닭만 보이는 사람과 꽃만 보이는 사람이 닭과 꽃을 위해 다툰다
---「닭과 꽃」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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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후영만큼 그의 시는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내가 아는 후영만큼 그의 시는 품 넓은 배후를 거느린 듯 가만가만하고 조용조용하다. 그래서일 것이다. 나는 그의 시인 이름 후영을 내 맘대로 ‘뒷그림자’로 읽곤 하는데, 그때마다 “지나간 것도 다가올 것도 잠잠히 품어 안는 강”(「갠지스강 변」)을 떠올리곤 한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유독 눈빛(눈길, 눈 맞춤), 징후, 발효, 기도, 행간 등의 시어들을 자주 호출해 시의 밑간으로 삼곤 한다. 날 선 시간의 숨을 죽여 그 시간을 견뎌 낼 힘을 얻고자 한숨 돌리려는, 기다림의 틈이자 뜸의 자세일 것이다. 그런 후영이 “기도가 발효되어 팽창할 때쯤/ 반가운 소식 하나 첨탑 끝에 날아”(「비슈누의 아침」)들듯, 등단 후 17년을 기다렸다 첫 시집을 냈다. “짧은 행간/ 누군가 열고 갔을 문 하나”(「숲」)를 열어젖히고, 그의 시에서 단애 혹은 날개를 부르는 툭, 푹, 훅, 쿵, 뚝과 같은 부사들이 이끄는 마법의 순간처럼! 그 순간들이 그를 시인으로 거듭나게 했을 것이다. “뚝!/ 거기 꽃을 위한 자리는 없다”(「그래비티gravity」)를 거듭 확인하는! 내가 그의 ‘정원 수행’을 ‘사랑 수행’으로 읽다가 다시 ‘시인 수행’으로 읽는 까닭이다.
- 정끝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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