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은 일정표와 실내 배치도를 점검하기 위해 ‘메이드’의 홀로그램 프레임을 띄우고 네온 컬러로 반짝이는 배너를 클릭했다. 혈연의 제약을 벗어던진 애착의 공동체 집합가족의 일원이 되어보세요! 한 시간 남짓이라는 1부 ‘티타임’ 때는 가능한 한 많은 가족과 통성명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거기서 두세 가족으로 후보를 좁힌 후, 2부에는 그들을 더 구체적으로 탐색해보기로 했다. --- p.10
“테이블은 없어도 모녀가 맞춘 게 하나 있네요? 이렇게 보면 선생님네는 화살표가 핵심 같아요.” “맞아요. 우리 가족은요,” 선민이 앳된 목소리로 강조했다. “일종의 신념 공동체라고 보시면 돼요.” “그렇구나!” 이심이 최선생을 향해 소근거렸다. “혹시 지금 제가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신다면 그건 선생님 기분 탓이에요.” --- p.82
이심은 친모녀처럼 옥신각신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접시에 남은 케이크를 입으로 가져갔다. 언제 다시 먹을 수 있을지 모르는 크림의 감미로운 풍미와 딸기 씨가 톡톡 씹히는 느낌을, 과육의 신선하고 새콤달콤한 맛을 음미했다. 입을 닦으면서는 케이크의 탐스러운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두지 않은 것을 아쉬워했다. 그랬다면 집합가족으로 편입하겠다고 처음 밝혔을 때 가족은 애완동물처럼 고를 수 없는 거라고 역정을 내던 아빠 앞에 흔들어 보일 수 있었을 텐데. 일로니를 돈을 주고 데려와놓고 돌보는 일은 나 몰라라 했던 사람은 잠자코 구경이나 하라고, 나는 이런 가족을 선택할 거라고. --- p.110~111
“타고나는 시대를 고를 수는 없고, 시대의 보편성을 뛰어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러나 엄마도 보편성 안에 갇힌 삶에 균열을 내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 p.117
“그럼요. 우리 모주임은 지원 동기를 대답할 때 긴장해서 목소리가 다 갈라졌었잖아요. 머리는 지금보다 한 삼 센티미터 길었고. B센터 뜻이 뭐냐고는 윤차장한테만 일곱 번을 물어봤고요. 업무 관련해서 내 기억은 틀릴 수가 없어요. 데이터로 저장되고 공유도 되니까. 그러자고 내가 열 시간 들여서 뇌수술까지 받았다는 거 아닙니까.” --- p.243
“이제부터 어떻게 될까?” “모르겠어.” 모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도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같은 방향을 따라 걸으니까 괜찮을 것 같아. 마구잡이로 미는 사람도 없으니까 위험하지 않을 것 같은데.”
몇십 년 뒤, 이 소설을 가리켜 예언서라고 부르게 되는 건 아닐까? 『한 사람을 더하면』 속 미래의 한국을 들여다보면 마음이 조여든다. 삶의 모든 순간에 점점 더 많은 비용이 드는 소설 속 미래 사회에서 가족의 의미는 철저히 경제 논리에 종속된다. 이야기가 예상을 벗어나 질주하는 순간에 이르러서는 마지막 장면까지 기분좋게 몰입해 읽었다. 근데 이거, 소설인 거지? 현실 아니지? 아직은.
- 이다혜 (작가, 기자)
이상한 가족을 꿈꿔본 적이 있다. 나와 사랑하는 사람과 친구와 친구의 애인이 한집에서 함께 사는 모습을. 내가 이상하다고 말한 것은 전통적이지 않은 가족의 형태가 아니다. 우리의 친분이 가족이 될 정도로 깊진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가족을 구성하는 일에 뒤따르는 심리적 압박감을 느낄 수 없었기에 마음이 묘하게 편했다. 『한 사람을 더하면』의 배경은 ‘무도회’를 통해 ‘집합가족’을 이룰 수 있는 미래 사회다. 주인공 이심은 직접 선택한 가족과 함께 정치적으로 암울한 상황 속에서 희망을 만들어간다. 나는 그들을 보며 정해진 틀 안에서만 가족을 만드는 일의 슬픔과 다가올 변화에 대해 생각했다. 은모든은 이 시대에 던져진 가족에 관한 중요한 질문을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내며 우리를 새로운 미래의 세계로 부드럽게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