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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한 슬라임이 되고 싶어

연정 | 발코니 | 2023년 10월 2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10.0 리뷰 1건 | 판매지수 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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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0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68쪽 | 120*190*11mm
ISBN13 9791192159119
ISBN10 119215911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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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운동장 돌 듯 산다. 집을 시작점으로 같은 길을 반복해서 맴돈다. 새로운 곳을 탐험하려 한다면 낯선 곳을 향하겠지만, 오직 집을 벗어나기 위한 외출이었기에 목적지가 없었다. 유년 시절 내 운동화 밑창은 한쪽만 빨리 닳았다. 조금 기울어진 채로 자주 서성였다. 나의 걸음은 모험이 아니라 방황이었다. 매년 봄을 살아갈 핑계로 삼는다.
---「봄핑계」중에서

내 본명에는 동그라미가 3개 있다. 타고난 성격마저 경계가 느슨한 탓에, 관계자가 아닌 인연도 내 삶에 쉽게 드나들었다. 동그란 받침에 앉아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연도 맺고 정도 들며 쉬어간다. 태어나기 전부터 묶인 관계가 아닌, 서로를 알아보고 선택한 인연들. 사랑이 뭉쳐진 이름으로 살아가니, 살다가 몇 번쯤 넘어져도 부러지지 않았다. 굴릴수록 거대해지는 눈사람처럼, 넘어져도 웃으며 굴러가는 나였다.
---「짓지도 않은 이름이지만, 불러준 사람들 곁에서」중에서

조그만은 내 주변 사람 중 가장 먼저 결혼했다. 20대 후반의 우리 일상은 아주 많이 달라졌다. 가정을 이룬 조그만이 평온해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그녀도 이젠 외롭거나 슬프지 않을 거라 넘겨짚었다. 각자 바쁘게 살다가 조그만의 신혼집에 놀러 갔던 날. 한참을 얘기하다 밤이 되어 같이 누웠는데, 조그만은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듯 말했다. “눈을 감으면 이대로 조용히 사라졌으면 좋겠어.”
---「조그만 정원에 아침이 오면」중에서

슬픔 속에 슬픔만 있지 않아서, 구석구석 들여다봐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우리의 외로움은 사랑이 그린 작품이라는 걸 잊지 말자. 그러니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잘 살고 싶다는 건, 용감하게 외로워하겠다는 선언. 짝사랑이어도 사랑을 그만두지 않겠다는 다짐.
---「외로움 목격자」중에서

나는 새로운 일을 시도하기도 전에 시작했다는 걸 공공연하게 알리며 나댄다. 겨우 두 번 정도 했으면서, 결과물에 취한 모습을 그럴듯하게 보정한 후 업로드 한다. 새로 고침을 반복하며 타인의 반응을 기다린다. 늘어나는 하트와 댓글에 만족한 후, 연습이 필요한 정체 구간에서 흥미를 잃는다. 한없이 가볍고 점도가 낮은 인내심이다. 100번을 주물러도 모양이 잡히지 않는 슬라임 같은 의지를 타고났다. 그래서 이목구비도 흐물거리는 걸까?
---「섹시한 슬라임이 되고 싶어」중에서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말을 들으면 힘이 빠졌다. 일단 난 체력이 안 좋다. 성격상 성실함과 어울리는 일은 전부 지겨워한다. 그런 나에게 꾸준히 달려야 하는 단 한 번의 경기란 최악이다. 시작하기도 전에 숨이 차고 지루한 기분. 내 인생은 몇 초간 온 힘을 다해 달린 후, 자리로 돌아가 김밥을 먹는 느긋한 운동회 같기를 바랐다.
---「서른 관람 평점 ★★★★☆」중에서

세상이 슬픔으로 가득 차 있는 건지, 슬픈 사람이 세상을 채울 만큼 많은 건지. 내일이 무서웠던 우리가 뒤척였던 밤을 이어 붙인다면, 우주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외딴섬의 우체통」중에서

첫 번째 책을 낸 후에 알았어요. 누군가 읽어야 책이 완성된다는 사실을요. 작가가 찍은 마침표 뒤로 독자들의 이야기가 이어져야 비로소 작가라고 불릴 수 있다는 것도요. 이 책이 완성되는 장면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작가의 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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