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느낌이 알아서 움직이는, 스스로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겠다는 희망은 이미 많은 사람에게 비웃음을 산 지 오래였지만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그저 나쁘지만 않으면 일단은 만나보고, 싫지만 않으면 연애를 시작하고, 그러다 어느새 정이 들어 결혼하고 애를 낳아 키우면 되는 거라는 결혼생활 선배들의 얘기에 아직도 반감이 드니 아직 철이 안 든 건지도 모르겠다. 하긴, 허구한 날 능력 있는 여자는 혼자 살아도 된다고 말하면서도 길게 눈이 마주칠 때면 언제 결혼할 건지를 묻는 사람들이니 그 의견에 그다지 예민하게 굴지 않아도 되겠지만.
하지만 결혼을 둘러싸고 그들이 뿜어내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어느 정도 내가 누리는 행복에 만족하며 살면서도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게 되니 이상하다. 혼자서도 나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가? 우리나라에서 결혼이라는 걸 안 하면 정말 사회적으로 루저가 되는 걸까? 직업도 있고, 가족도 있는데 남편 하나 없다고 패배감을 느낄 이유는 없지 않나. 내키지 않음에도 뭔가에 이끌려 치러내듯 하는 결혼엔 도무지 발을 담그고 싶지 않을 뿐인데. --- 「선택의 기로, 선 봐야 돼? 말아야 돼?」 중에서
스무 살이 가난한 젊음이라면 서른은 여유로운 안정.
우리의 화양연화는 바로 지금이야. --- 「지금은 우리가 가장 아름다운 때」 중에서
아이를 가진 주부들은 모든 상황이 자신들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떠들거나 통곡을 하는 건 당연하고, 그런 아이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 큰 소리로 혼을 내거나 엉덩이를 때려 그 장소를 더욱 시끄럽게 만드는 것은 부모의 의무인 거고, 비싼 돈을 낸 고객이기 때문에 그 모든 어지러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식사를 마쳐야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머릿속에 다른 사람들의 행복추구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외출을 감행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참아 왔고, 오랜만의 휴식을 끝까지 즐기고 싶다는 똘똘 뭉친 자의식만 존재할 뿐이다. --- 「대한민국의 브라만 계급, 아줌마」 중에서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에 남자들이 사라졌다. 대한민국은 남자와 여자의 수가 일정 비율을 유지하며, 서로 어울렁더울렁 살아가는 게 상식인 나라 아니었던가. 그런데 없다. 아무리 찾아봐도 괜찮은 남자가, 아니 괜찮지 않은 남자도 없다. 덕분에 내 주변엔 혼인대기 중인 여자들만이 차고 넘친다.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일까. --- 「괜찮은 남자는 다 어디로 갔을까」 중에서
금방 떠날 사람처럼 일상을 살고, 마치 여행하듯 하루하루를 즐길 수 있다면
내 일상은 지금보다 더 반짝일 텐데.
--- 「여행과 일상, 중간을 살다」 중에서
되는 일은 하나도 없고 관계는 계속 꼬이고
나는 점점 더 바보 같아지는데
이런 나 걱정해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이 한 마디를 떠올린다.
네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 - 영화 「굿 윌 헌팅」
나는 잘 살고 있다.
그럴 땐 그냥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지
내가 잘못해서는 아니다.---나 중심적으로 살기 도입부 중에서
나를 한없이 황홀하게 하는 대신 한층 더 가난하게 만드는 그 ‘행복 쇼핑’의 앞뒤엔 늘 변명이 따라붙는다. 우리가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거고. 노동의 대가로 얻어낸 재화를 보다 질 높게 누리는 일도 어쩌면 우리의 의무라고. 그 변명은 자기 합리화로 이어진다. 세상에 필요에 의한 쇼핑만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만약 있다고 해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며, 어차피 계속 그렇게 살 거면 적어도 죄책감은 조금씩 줄여가야 한다고. 누가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없는 거라고 했나. 나는 아로마 향초라는 행복을 일시불로 긁었는걸.
그래도 일말의 양심과 한정된 경제력을 가진 사람이기에 그 행복 쇼핑의 빈도를 최소한으로 줄여보려고 노력한다. 보다 더 저렴한 행복은 없는지도, 어디서 더 합리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지도 따져본다. 행복을 아무런 대가 없이 손에 넣겠다는 요행(!)도 바라지 않는다.
이미 써버린 돈에 대해서는 아쉬워하지 말 것.
대신 그것이 주는 쾌감은 알뜰하게 즐길 것.
언젠가 다가올 또 한 번의 기회를 위해 하기 싫은 일도 견뎌 나갈 것.---행복을 위한 쇼핑 중에서
그러고 보면 나한테 근성이라는 게 남아 있기는 한지. 언제부터인가 치열하게 산다, 열심히 한다는 말에 격하게 경기를 일으키고 ‘아, 되는 대로 살래’라며 탄력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요즘엔 누군가를 만나 식사 메뉴를 정할 때조차 입버릇처럼 “아무 거나 먹자”고 말하지 않나.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게 귀찮아서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딱히 먹고 싶은 게 없었다. 식욕이 살아 있는 인간은 삶에 대한 의욕 역시 살아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럼 나는 살고 싶다는 욕구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건가!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다는 지인들을 볼 때마다 아직 젊다, 며 입을 삐쭉대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부럽다. 무언가에 욕심을 내고 갖지 못해 안달하는 그 모습에는 내가 잊은 지 오래된 ‘근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경험이 쌓이고 아는 게 늘었다고 미리부터 포기하거나 타협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 된다!’는 생각으로 부딪혀 보겠다며 몸을 날리는 모습엔 사람을 움찔하게 만드는 젊음과 열정이 있으니까.
근성이란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패기.
끝까지 지켜내는 끈기.
깨끗이 포기하는 용기.
---근성 있는 여자 중에서
꿈은 계속 꾸어야 한다. 스물엔 서른을 꿈꾸고, 서른엔 마흔을 꿈꾸면 된다. 어슴푸레하게라도 꿈을 꾸고 노력하는 한, 무엇이라도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하지만 꿈을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꾸는 것, 즉 망상만은 피해야 한다. 현실이 힘드니까 그냥 한번 상상해보고, 또 포기하고….
꿈을 말하는 것까지는 아무도 황당하다고 해서 말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 이걸 해보면 어때?” 하고 주위에서 좀 더 구체적인 행동을 제안하거나 도움을 주려고 하면 “아니야, 됐어. 내가 뭘….” 하면서 포기하기를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다. 꿈을 말하는 게 정말로 그걸 하겠다는 게 아니라 잠시 일상에서 탈출하는 수단인 것이다. 그러면 정말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꿈을 안 꾸는 것보다도 오히려 나쁜 습관이다. --- p.24
많은 청춘들이 아프락사스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아프락사스가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알이 세계이며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는 점이다. (중략) 자신이 여전히 어린아이 같아서 불안을 느낀다면 알을 깨고 나가려고 싸우는 건강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서른이든 마흔이든 모두가 마찬가지다. 오히려 나는 천진난만한 거라고, 사랑스러운 거라고 애써 자위하며 유치하고 왜곡된 모습을 고집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좁은 알에 갇힌 채 안주해 버린다면 몸만 큰 새는 결국 죽어버리고 말 테니까…. --- pp.40-41
서른 즈음의 청춘들 역시 결혼이, 취직이, 인간관계가, 돈 문제 등등이 지지리도 안 풀릴 수 있다. 그것 역시 인생이다. (중략) 요즘 조금만 자기 뜻대로 안 되면 분노하고, 좌절하는 청춘이 많다. 애초부터 확률적으로 운이 매우 좋아야만 가능한 일인데, ‘꼭 된다’고 긍정하다가 실패하면 반대로 한없는 부정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꼭 될 것이다, 되어야 한다.’는 긍정이 아니다. 최면이자 압력이고 자아에 대한 과시다. ‘한번 해보자. 잘 되면 참 좋을 거야. 하지만 안 된다 하더라도 좋아.’ 하는 게 진짜 긍정이다. --- p.51
‘싱글 증후군’을 마주했을 때, 인생 자체가 총제적 난관이라고 우울의 늪으로 침잠할 필요는 없다. 사실 그것은 싱글들만 겪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한 사람들도 이런 상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중략) 싱글들이 겪는 고통의 중심은 사실 싱글이냐, 아니냐보다는 긍정적으로 변화해야 할 인생이 전환기에서 정체된다는 데 있다.
--- pp.164-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