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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와 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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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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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3년 11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416쪽 | 148*210*30mm
ISBN13 9791160782929
ISBN10 116078292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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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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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점점 이슥해 가고 그녀와 나의 실루엣이 벽에 식탁에 오로라처럼 길게 드리우며 흔들렸다. 나 혼자 중얼거렸다. “원상 회복력을 상실한 용수철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처음부터 삐걱거리는 톱니의 규격이 안 맞고 강철의 소재가 달라 빨리 달아버리는 톱니바퀴를 그나마 힘겹게 받쳐주던 용수철이 세월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원상 회복력을 잃으면 그 기계는 계속 작동은 하겠지만 헛바퀴 돌아가며 제 기능을 못 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지? 고장 난 벽시계는 고장이 나서 멈추어 있더라도 손목시계마저 필요 없는 이 시대에 벽을 장식하는 무늬만의 역할이라도 있지만 부부는 어떨까?” 가만히 듣고만 있으면서도 그녀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무언가 중요한 말이 내게서 나올까 하는 약간의 기대도 하고 있는 듯 귀를 기울이는 자세였다. 나는 얼음에 섞여 쌉싸름한 스카치를 한 모금 마시며 벽난로에서 나오는 불빛 때문에 내 얼굴색은 불콰한 보기 좋은 모양을 만들어 주겠거니 하며 따듯한 눈길로 그녀를 깊이 응시하며 다음 내 말에 공감해 주기를 바랐다.

“민정과 나 우리 둘 이외에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단지 잘못된 톱니바퀴처럼 나를 만나게 된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하겠지. 나는 내 나름대로 사회적으로나 가정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 왔어요. 그래 모든 사회적 일에서 은퇴하고 아이들도 제대로 다 독립시키고 휑뎅그렁하게 남아있게 되자 이제 나는 어떤 역할이 남아있나 생각해 보니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요. 원심력 잃은 톱니바퀴는 그 기능을 다 하였고, 장식으로만 의미가 있는 고장난 벽시계가, 내가 외로이 자리를 지키는 거예요. 내 파트너인 다른 톱니바퀴와 아귀가 느슨해져 계속 헛바퀴만 돌아갈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나는 깊은 한숨을 내 쉬고 담배를 물고 스카치를 차가운 얼음 위에 더 부었다. 취기를 느꼈다.

“그리 오래 생각할 게 별로 없겠더구먼. 내, 톱니바퀴를 놓아 주기로 했어. 내가 놓아 준 것이 아니라 이미 따로 돌고 있던 거잖아. 서로 잘못 맞추어진 톱니바퀴를 오래전부터 암묵적으로 양해하고 있었다고 봐야지. 용수철의 원상 회복력마저 상실되니 아무런 의미가 없는 기계만 기능을 잃은 채 모양으로서만 역할을 하는 거야. 우리 서로 놓아주고 장식으로만 역할을 하는 것에서 둘 사이를 인연으로 남겨두는 데 이심전심으로 양해가 되었고, 나는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 내 파트너도 그의 공간을 갖도록 내가 오피스텔 얻어 나온 지 몇 년이나 되었다고. 집에서 독립하여 나오고 나서 나는 내가 걸어온 인생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나 알아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로펌도 때려치우고 신학대학에 들어가서 신학 공부를 하기 시작한 지 벌써 몇 년이나 되었단 말야. 아시겠소? 당신만 신앙생활 하는 게 아니라고~~. 내가 목사나 신부 되지 말라는 법 어디에 있냐고? 나도 괴롭고 외로울 때 많지만 단지 내색하지 않고 속으로만 삭여 왔다 이거야! 어휴, 나도 성직자가 돼서 당신처럼 고상하게 속세를 떠나 민정 당신 옆에 가서 지켜봐 주고 돌보아 줄 생각으로 내 인생 후반기 마지막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싶었다는 거지. 내 생각이 잘못됐어? 한번 내 입장에서 민정 당신 생각을 이야기해보라고. 내 생각이 잘못됐으면 지금이라도 신학대학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내 있어야 할 곳을 다시 찾아볼 테니~~ 나를 그렇게 애잔한 표정으로 집도 없이 오갈 데 없는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이 말이오! 민정 씨~~ 알았소이까?” 취기가 더욱 오르고 벽난로의 불꽃이 날름거리는 듯했다. 내 혀가 돌아가는 것 같았다.
--- p.367~370

취기가 어느 정도 오르자 최 씨가 내게 “갑자기 형부가 여기까지 오셨는데 오늘부터 ‘그림자 형부’라고 부르겠어요.” 하더니 스즈키 씨를 보고 “오늘부터 당신도 그림자 형님으로 모시라”고 말하였다. 스즈키 씨는 빙그레 웃기만 하고 내게 공손하게 사케를 따라주었다. 그리고 최 씨가 민정에게 사케를 한 잔 따라주며 “우리 ‘그림자 언니’의 진짜로의 새로운 사랑을 위하여 축배를 듭시다. 자 다 같이 건배!” 하며 주욱 들이켰다. 이어 내게 “에~ 또, 우리 그림자 형부는 페널티로 생맥주잔으로 사랑주 한 잔 더 주욱 하셔요” 하여 영문도 모르고 최 씨가 하라는 대로 민정을 껴안고 그 커다란 맥주잔에 그득히 넘치는 사케를 주욱 들이켰다. 숨이 막힐 듯했지만 한숨을 토하고 나니 기분은 괜찮은데 취기가 꽤나 올라왔고 최 씨가 깔깔대고 웃었다.

그러다 최 씨는 “그림자 형부 합격! 우리 언니 사랑할 자격이 있어! 그런데 그림자 형부 말이야, 우리 언니 곧 서울로 가서 살 건데 언니 눈에서 눈물 나게 하면 내가 가만 안 둘 거야! 아시겠지요?” 하더니 민정을 껴안고 흐느꼈다. 스즈키 씨가 눈을 껌벅이며 모르는 척 넘어가라고 신호를 보냈다. 민정이 바로 그녀를 데리고 옆방으로 갔다. 한 식경이나 지났을까 잠시 후에 진정이 되었는지 최 씨가 들어와서 “형부 죄송해요. 언니가 너무나 불쌍해서~ 제가 지나쳤어요. 언니가 형부의 그림자로 평생 살겠다고 해서 어이도 없고, 너무 화도 나고, 형부가 갑자기 너무 나쁜 사람 같아 보여서. 그렇지만 언니 마음도 잘 이해할 수 있고, 평소에 형부를 제가 너무 좋아하고 존경하는데~ 용서하세요!” 하며 또 깊디깊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였다.

이에 스즈키 씨가 “형님이 당신 마음 다 알고 이해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만 그쳐” 했고, 민정이 “네 마음 우민 아니 그림자 형부도 다 알아 그만, 형부 참 나쁜 사람이지만 어떻게 해? 내가 선택한 길이니. 근데 너는 천재다. 그림자 형부 딱 맞는, 어울리는 말이야”라고 했다. 그 상황에서 나는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
--- p.303~305

오래전부터 그녀에게 아호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녀의 작품에 사인으로 쓸 수 있게 하고 싶었다. 동서양에서 자정은 끝과 시작을 상징하는 시간이다. 영험하다고 하는 시간 자정에 맞추어 민정과 나 우리 둘만의 신성한 의식을 치르고 싶었다. 새로 출발한다는 자정이 되었다. 민정에게 아호를 지어주었다. ‘혜인’이라고, 베풀 혜(惠), 어질 인(仁)이라고. 요산요수에서 지자는 바다를 좋아하고, 인자는 산을 좋아한다는 옛 구절에서 ‘인’, 그리고 많은 것을 뭇 사람들에게 베풀라는 뜻의 베풀 혜 그래서 ‘혜인’이라고 민정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발음도 좋고 뜻도 너무 좋아요, 나 그렇게 살게요, 이처럼 나만을 생각하고 항상 나를 지켜주려 하니 내가 우민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잖아요, 사랑해!” 하면서 민정이 이내 나에게 안겨 왔다. 통나무집 들창으로 달빛과 별빛이 어우러져 들어와 장작불 불꽃에서 나는 열기와 함께 우리 둘의 몸을 뜨겁게 달구며 불태우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장작 불꽃 튀는 소리가 우리를 더욱 가까이 서로 힘차게 안으라고 하는 게시처럼 들리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서로를 탐하며 야수가 되어갔다. 우리 둘 다 서로에게 목말라 있었다. 우리 둘만이 아니고 늘 제삼자가 있어 우리 단둘의 시간은 거의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기나긴 세월이었다. 깊고 깊은 밤이 지나가고 장작불은 아직 불꽃이 미약하나마 타고 있었고 그 불꽃이 재로 덮일까 봐 그녀의 곁을 밤새도록 지키며 우리의 불길이 재가 되지 않도록 나는 갖은 정성을 다하였다. 우리가 가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소진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밤은 우리가 원하는 만큼 길지 않다고 느껴졌다. 이윽고 여명의 희미한 빛이 아쉬움을 남기게 서서히 통나무집 창으로 스며들어 왔다. 우리 둘은 서로를 보고 낄낄대고 시원하게 웃어 재꼈다. 더이상 바랄 것도 남아있는 미진함도 없었다. 우리 둘은 물안개가 통나무집을 감싸며 피어오르는 이른 새벽에 깊은 숲속의 청량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며 민정과 나만의 통나무집을 나섰다. 우리 둘 다 ‘픽!’ 하고 우리 둘만이 알 수 있는 웃음을 지었다. 민정은 우리의 사랑이 진하게 배어버린 그곳에다 “겨울에 다시 올게” 하고는 발길을 돌렸다.
--- p.313~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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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주변 사람들의 실제 에피소드에 기반해 쓴 이번 장편소설은 그의 청년 시절이었던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를 넘나드는 낭만적인 ‘연애소설’로, 그 시절을 같이 살았던 60, 70대는 물론 젊은이들도 탐닉할 만한 ‘대하 드라마’로 읽힌다. 소설을 처음 쓰는 신인이지만 소설은 전개가 매끄럽고 드라마틱하기도 하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경제관료였지만 학창 시절 많은 문학 서적을 탐독한 문학청년이었음이 분명하다. 이 소설을 읽은 사람들에게 벅찬 감동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특히 개발연대에 한국 사회를 살아온 60, 70대에게 ‘오로라와 춤을’은 옛날을 회상케 하며 다시 사랑을 찾는 기폭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생은 희로애락이 교차하나 즐겁고 사랑스러운 것이 아닐까. 작가는 이번 소설을 통해 사랑은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것임을 다시 일깨워줬고, 이 소설을 읽는 60, 70대는 물론 젊은이들도 사랑을 기억하고 다시 사랑하고 싶어질 것이 틀림없다.
- 정세용 (전 서울신문 기자,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내일신문 편집국장/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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