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모든 것이 21세기에 들어 걸프로 이동했다. 걸프의 국가, 도시, 기업, 기구 그리고 대학들이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누리고 그 자리를 즐기고 있다. 걸프의 순간이 의미하는 것은 이집트, 시리아, 수단, 리비아에서 연상되는 실패, 경기침체, 패배의 연속이 아니다. 걸프의 순간은 성공과 개방을 상징한다. 오늘날 아랍 르네상스는 근심 속에 무거운 부담을 짊어진 전통적인 아랍의 수도, 도시, 국가, 사회가 아니라 걸프의 도시, 수도, 국가, 사회와 관련이 있다. 즉 걸프의 순간은 개인과 사회 발전, 삶의 질과 생활 지표 측면에서 최근까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수준으로 상당히 성숙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확인시켜준다. 이런 발전 지표 및 집단적 힘의 중요성과 함께 걸프의 순간의 원동력은 먼저 정치적 안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치적 안정감이 걸프 국가들이 다른 아랍 국가들도 가지지 못한 엄청난 규모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했다.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안정을 겸비한 걸프가 사회적으로 분열되고, 정치적으로 파편화된 아랍 공동체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국제관계 이론은 내부적 안정과 외부적 영향력의 행사 간에 유기적 관계가 있다고 설명한다. 국내적으로 안정된 국가들은 지리적으로 이웃한 국가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수준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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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세계와 글로벌 수준에서 볼 때, 걸프의 순간은 하루 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걸프의 순간은 힘든 탄생, 어려운 시기, 인내의 시간을 거쳐 이루어졌다. 걸프의 순간의 첫 번째 발전 단계는 지난 세기 1970년대 초, 영국군이 걸프에서 갑자기 철군을 결정하면서 제왕절개로 신생아가 태어나듯 시작되었다. 영국의 철수 이후 걸프의 신생 독립 국가들은 불안정한 지역에서 이웃 국가의 위협에 맞닥뜨렸고, 생존 문제에 직면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해야만 했다. 걸프 국가들이 처음에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생존과 국가의 지속성이었다. 걸프 국가들은 170년 동안 외부 세력으로부터 고립되어 있었다. 영국의 지배로부터 새로 독립한 나라로서 생존 가능성을 고민해야 했다. 첫 번째 걸프의 발전 단계에서는 안보에 대한 우려가 지배적이었다. 현재 아랍 세계의 중심이 걸프로 이동하고, 걸프가 자신감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걸프 국가들의 안보에 대한 우려는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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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지표가 걸프 여성들의 여건이 개선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걸프 국가들은 성평등 및 여성 능력 강화 지표에서 앞서 나가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바레인 외의 다른 아랍 국가들에서는 이들 국가만큼의 여성 평등 및 여성운동에 대한 장기적이고 오랜 기록과 역사를 찾기 어렵다. 이 국가들은 여성 평등 지표에서 각각 1, 2, 4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랍 여성 평등 지표 5위로 올라섰다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걸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걸프와 다른 아랍의 문화적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가운데, 특히 여성 능력 강화 지표에서 걸프 국가들이 이 지역의 다른 국가들을 앞서고 있다는 것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같은 맥락에서 걸프 여성들은 풍요로운 복지와 석유의 시대가 끝난 현시점에 걸맞은 사회적 의식을 가지게 되었으며, 아랍 여성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여성으로 손꼽히고 있다. 2023년에 발표된 ‘영향력 있는 아랍 기업인 여성 100명’ 명단에는 걸프 여성들이 주를 이루었다. 이 목록에는 52명의 걸프 여성들이 포함되며, 가장 영향력 있는 아랍 여성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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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문화, 창조성, 지식의 중심이 걸프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구심을 가질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 바로 걸프 언론의 순간이라는 데는 의문을 가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랍 방송의 주도권을 가진 걸프 지역의 언론사와 플랫폼들은 아랍인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아랍인들을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람들로 만들고 있다. 이제 아랍 언론의 중심은 카이로, 베이루트 같은 전통적인 도시들에서 두바이, 아부다비, 도하와 같은 걸프 도시들로 옮겨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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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걸프 국가들은 탈석유 시대를 대비하며,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와 신재생에너지, 제4차 산업혁명, 식량안보, 항공우주, 방위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의 기회가 창출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의 지도자들, 예컨대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아랍에미리트의 무함마드 빈 자이드 대통령, 카타르의 타밈 빈 하마드 국왕 등은 새로운 성장 기회를 추구하며 우리나라와 협력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 ‘제2의 중동 붐’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걸프 자체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배경에서 이 책은 걸프 국가들의 역사, 정치, 경제, 문화, 지식, 언론 등을 상세하게 다뤄 우리나라 독자들이 걸프를 더 잘 이해하도록 도와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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