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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선비와 여중군자

: 조선 지식인 여성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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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0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440쪽 | 670g | 153*214*24mm
ISBN13 9791191656275
ISBN10 1191656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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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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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조선 건국 이후 『소학』을 읽다

『소학』은 『대학』과 일종의 짝을 이루고 있으며, 신유학으로서의 주자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서적에 해당한다. 주희가 제자 유청지에게 소년들을 학습시켜 교화할 수 있는 내용의 서적을 편집하게 한 것인 만큼, 주희의 관심 역시 특별한 것이었다. 그래서 주희와 유자징을 공저자, 그러니까 두 사람의 공동 작품으로 보기도 한다. 주희는 『소학』에 「소학서제」와 「소학제사」를 쓰기도 했다. 때문에 신유학, 주자학이라는 맥락에서 『소학』을 이해하는 것이 관건이라 하겠다. 고려 말 주자학의 도입과 더불어 『소학』이 전래, 수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주자학을 위한 혁명이라 할 수 있는 조선의 건국은 새로운 장을 열어주었다. … 그처럼 세종이 적극적으로 『소학』을 권장한 것에 대해 이 책에서는 사상사라는 입장에서 그리고 남녀관계와 젠더론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세종시대에 활발하게 이루어진 『소학』의 보급과 전파에는 여러 가지 역사적 함의가 담겨 있었다. 정치체제 차원에서는 주자학에 바탕을 둔 새로운 문명과 세계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다. 그것은 『소학』과 『대학』을 근간으로 하는 유교(주자학) 사회의 구축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소학』의 유행은 남성 우위, 나아가서는 남존여비의 조짐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남녀칠세부동석, 삼종지도, 칠거지악 등의 명제가 『소학』에 나온다고 해서 오랜 관습과 문화가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없었다. 그런 명제가 큰 힘을 발휘하는 데는 시간을 필요로 했다.
--- p.47~49

2장 혼인과 족보 그리고 제사

그 같은 상대적 평등성은 여성의 재혼에 대해서도 일반적으로 관대한 편이었다. 심지어 고려 왕비 중에도 재가녀가 있었다. 재가녀라고 해서 사회적으로 차대나 불이익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또한 재산상속과 제사 등에서 아들과 딸의 지위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신유학을 표방하는 조선의 건국과 더불어 유교사회로의 지향성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유교사회로 탈바꿈할 수는 없었다. 조선 전기에 간행된 족보에서 선남후녀 원칙이 아니라, 아들과 딸 구별 없이 출생 연령순으로 기록한 것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고려시대의 유풍이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또한 양반 부녀자의 재가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데(‘후부’), 재가 사례는 『성화보』(1476)와 『가정보』(1565)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이 같은 양상은 혼인 양식에서도 확인된다. 고려시대의 경우, 결혼해서 처가에서 사는 남귀여가혼이 일반적이었다. 이 같은 풍속은 조선 건국 후 국가에서 친영을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기간 동안 유지되었고, 조선 후기에야 반친영이 이루어졌다. … 조선 전기까지는 재산상속 역시 균등하게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상속받은 몫에 대한 재산권이 보장되었다. 딸이 결혼했다고 해서 재산상속권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들과 딸에게 균분상속이 이루어졌다는 것, 이는 상속에 따른 의무도 균등했음을 말해준다. … 요컨대 조선 사회의 유교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짐과 더불어 여성의 정절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특히 『경국대전』에 포함된 재가녀 아들에 대한 차별 규정은 중요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성종 때 간행된 『경국대전』 과거시험 조목에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재가하거나 실절한 부녀의 아들 및 손자는 문과, 무과, 생원, 진사 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 과거 금지라는 규제의 영향력은 지대한 것이었다. 게다가 임진왜란 이후 사회 전반에 걸친 유교화의 심화 과정, 다시 말해서 주자학적 예학禮學 윤리의 정착, 그리고 종법적 부계 친족 중심의 문중, 종중이 형성되는 과정과 더불어 조선사회는 부계 남성 중심 사회로 변해갔다. 족보에서도 외손을 기재하지 않고, 아들을 먼저 적는 방식이 굳어졌다. 이후 그런 추세는 더욱 가속화되었으며, 재가 금지의 윤리가 양반 사대부는 물론이고 평민에까지 확산되었으며, 점차 수절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 p.84~87

3장 조선의 여성들은 재혼을 했을까?

현존하는 족보 중에서 가장 오래된 『안동권씨성화보』(1476년)에 나타난 부녀자들의 재가 기록에 주목해보고자 했다. 『성화보』에는 딸의 이름 대신 사위의 성명을 적고 있다. 딸의 자리에 딸의 남편이라는 ‘여부女夫’를 적었다. 하지만 본관은 적지 않았다. 사위를 표기하는 양식은 여부, 여女, 서壻, 여자부女子夫 등 다양한 형태에서 여부로, 그리고 다시 여로 변화해 정착되어가는데,『성화보』는 그 중간 형태를 보여준다. 아울러 『성화보』에서는 초실初室, 중실中室, 후실後室, 삼실三室 등을 명기하여 시집간 딸의 혼인 형태를 밝히고 있다. … 첫째, 거시적으로 볼 때 조선사회의 유교화 과정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불교가 지배적인 이념이었던 고려사회에 비해, 조선사회는 주자학을 지배 이념으로 택한 만큼 기본적인 방향성을 달리했다. … 둘째,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조선 초기에도 재가와 삼가가 현상적으로 분명히 존재했다. 1478년(성종 8) 조정에서 이루어진 조정 대신들의 재가녀 및 삼가녀 규제에 대한 논의가 이를 말해준다. … 셋째, 앞에서 말한 거시적인 조선의 유교화 과정과 두 번째 현상으로서의 재가와 삼가 현상 사이에 배치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 … 넷째, 『성화보』는 고려 말 조선 초라는 변혁기, 다시 말해서 유교적인 사회질서가 굳어져가는 과도기적인 양상을 말해주는 족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양상이 공존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 p.120~123

4장 조선의 지식인 여성, 여성선비와 여중군자

조선 후기에 글을 읽고 쓸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유교적인 소양을 지녔던 지식인 여성들이 일상적인 생활세계 속에서 어떤 생각을 가졌으며, 또한 어떠한 사회의식을 가졌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들은 혼인해서 이른바 현모양처로 살아가면서, 거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유교적인 지식과 소양을 쌓는다거나 적극적으로 주자학의 본령에까지 들어가서 문집을 남기는 등의 활발한 학문과 삶의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사회사적으로 볼 때 양난 이후 조선사회는 부계 중심의 종법질서 강화, 열녀와 정표정책 등 보수화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전통적인 여성상을 강조하는 교육과 정책이 여전했으며, 한층 더 강화되는 측면마저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여성의 자각 역시 이루어지고 있었다. 여성의 경제적 비중의 증가와 함께 그 시대에 유행했던 여성들의 책 읽기와 글쓰기 열풍에 힘입어,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사대부가 출신으로 지식과 식견을 가진 여성들이 등장했다. 그 같은 지식인 여성들은 ‘여성선비’와 ‘여중군자’라는 범주로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그 범주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사례로서 임윤지당과 이사주당, 그리고 강정일당의 삶과 학문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 이렇게 본다면 조선 후기에 들어서 주자학적 세계관이라는 큰 틀 속에서이긴 하지만 여성들, 특히 지식인 여성들에 대해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여성에게도 학문을 통해서 수신하고 실천하는 존재로서의 선비, 여성선비를 인정하게 되었고 나아가서는 유교에서의 이상적 인간으로서의 군자가 될 수 있다고 여기게 되었다. 실제로 지식인 여성 이사주당, 강정일당이 걸어간 길은 학문을 통해 수신하고 실천하는 선비의 삶이었다. … 요컨대 조선 후기를 살았던 지식인 여성들은 여성으로서의 직분과 위상을 결코 부인하지 않았다. 다만 거기에 얽매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분수는 다르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는 식의 독자적인 해석으로 나아갔다. 당시의 전통적인 여성상을 받아들이면서 그 위에서 학문과 실천에 힘썼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철저하게 주자학적인 세계관 안에 머물러 있었다. 당시 민간에서 유행하고 있던 서학이나 천주학 같은 가르침에 기대지 않았다.
--- p.192~198

5장 왕실 속 여중군자들

소혜왕후의 『내훈』은 성종 대에 유교 문명권 중심부의 성별지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재구성해 문자화한 최초의 문헌에 해당한다. 그런 만큼 고려에서 조선사회로의 이행, 대승불교에서 주자학으로 이행해가는 전환기라는 관점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거시적으로 조선사회의 신유학적 전환 내지 주자학적 전환이라는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 15세기 당대 최고의 지식인으로서의 소혜왕후는 주자학적인 남녀관계와 젠더 관련 명제를 바람직한 것으로, 여성이 따라야 규범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제시했지만, 『소학』에서 볼 수 있는 ‘열녀’ 이념에 대해서는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굶어 죽는 것보다 절개를 중시하는 과도한 엄격주의에는 이르지 않았다.
--- p.242~243

혜경궁 홍씨의 사적인 기록 편지와 공적인 기록 교서를 주요한 분석 자료로 삼아서, 혜경궁 홍씨의 삶과 생활세계를 살펴보았다. 그녀가 남긴 언간과 언교를 토대로 역사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재구성해보았다. 이는 지금까지 주로 한중록을 통해서 혜경궁 홍씨의 일생을 이해해온 것에 대한 보완으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선, 혜경궁 홍씨가 남긴 언간은 2편이 전해진다. 손위 시누이 화순옹주에게 보낸 언간은 일상적인 성격을 띠지만, 사도세자가 대리청정하면서 영조와 갈등하는 시기에 보낸 것이다. … 한편 혜경궁 홍씨는 7건의 언교를 내렸다. 그녀는 3대 왕조에 걸쳐서 70여 년간 궁중생활을 했지만 언교는 정조 연간에만 나타난다. 그것은 그녀가 정조의 생모였기 때문이며, 그 정치적 권위는 정조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그런데 정치적인 성격을 지닌 언교가 보이지 않는다. 조정 대신들의 요청에 대해서 언서로 비답을 내리고 있을 뿐이다.
--- p.271

정순왕후 김씨는 15세에 영조의 계비가 된 이후, 61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궁중정치 속에서 살았다. 정조 대에는 왕대비, 순조 대에는 대왕대비로서 왕실의 어른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순조 즉위 후에는 4년 동안 수렴청정을 함으로써 실질적인 정치권력을 행사한 것 같다. 영조, 정조, 순조로 이어지는 왕위 교체와 정치변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살았다. 수렴청정 시기에 스스로 여군女君, 여주女主라 칭하기도 했다. 영조 대에 이미 한글로 언교를 내렸던 그녀는 정조 대에도 그리고 순조 대에도 언교와 언서를 내었다. 전체 42건의 언교와 언서를 확인할 수 있는데, 역대 왕후들 중에서 가장 많다.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잘 알고 있었으며, 실제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다. 또한 수렴청정 시기를 전후해 언간을 쓰기도 했으며, 그들 일부가 남아 있다.
--- p.305

우선 헌종과 철종 대에 걸쳐서 두 차례 행해진 순원왕후의 수렴청정에 대해서는 보는 시각에 따라서 평가가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기존 연구를 보더라도 평가 내역이 조금씩 다르다. 순원왕후의 ‘독재’라는 평가에서부터 외척들 사이의 균형을 이루었다는 평가까지 다양하다. … 그러나 순조 대의 선례를 따라 『수렴청정절목』에 의거해 주로 차대에서 공식적인 과정을 통해 국정을 운영했다. 또한 순조의 유지를 이어 헌종의 보도를 맡긴 조인영을 중용했고, 풍양 조씨와 안동 김씨 두 외척 가문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하기도 했다. 앞으로 두 차례의 수렴청정을 개별적으로 논의할 필요도 있다. 순원왕후의 언간은 그런 측면에서 충분히 의미 있는 자료라 하겠다.
--- p.347~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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