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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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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1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432쪽 | 574g | 148*210*22mm
ISBN13 9791198444301
ISBN10 1198444304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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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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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은 어두웠고 어둠 속 어딘가에서 길고양이의 앙칼진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거실 소파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마지막 남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미 열한 개비를 연달아 피운 탓에 혓바닥이 저렸고 목구멍은 쓰렸다. 그럼에도 그는 연신 담배연기를 들이마시고 내뿜었다.'내가 정말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담배를 피우는 내내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44년을 살아오는 동안 허파로 숨을 쉬는 생명은 쥐새끼 한 마리도 죽여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자신이 사람을 죽일 수 있을 만큼의 잔인함과 배짱을 가졌는지 스스로 판단하기는 어려웠다. 지난 여러 달 동안 살인을 계획하고 준비하면서 이 심각한 문제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당연히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당연히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막상 손에 피를 묻혀야 하는 때가 두세 시간 앞으로 다가오자, 그는 집에서 나서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 p.9

그는 첫 번째 살인 타깃으로 비교적 쉬운 자를 택했다. 작은 키에 왜소한 체구를 가진 66세의 독거노인이었다. 힘없고 가난한 늙은이를 죽이는 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 따위는 느끼지 못했다. 그에게는 우선 성공적인 살인 경험이 필요했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나머지 단추도 제대로 끼울 수 있는 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첫 번째 사냥감으로 약한 자를 고른 건 당연한 결정이었다.
--- p.12

그는 전기충격기를 바지 뒷주머니에 집어넣고 양손으로 타깃의 머리끄덩이를 움켜잡았다. 타깃을 질질 끌어서 차 뒤로 옮겼다. 로프를 양손에 감아쥐며 엎드려 있는 타깃의 허리 위에 올라탔다. 타깃의 숨통을 조이며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 p.23

“살해 도구와 살해 방법이 동일해. 범인이 보란 듯이 살해 도구를 현장에 그대로 두고 갔어. 두 사건 모두 피살자의 목에 빨랫줄이 감긴 채 발견됐는데 빨랫줄의 재질, 직경, 길이, 색깔이 모두 같아. 왜 그거 있잖아? 옥상 같은 데 매달아서 사용하는 주황색 빨랫줄, 그걸 사용했대. 피살자의 목을 감은 방법도 똑같고. 강남 사건을 담당한 팀장도 처음엔 연쇄살인인 걸 몰랐지. 그러다 오늘 오전에, 전산망에서 노원구 사건기록을 발견하고 동일범의 소행인 것 같다고 서울청에 보고한 거야.”
--- p.34

형사들은 두 사건이 성범죄자를 노린 연쇄살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데 서로 이견이 없었다. 만약 두 사건이 단순 살인이라면 금품을 노리지 않은 것으로 보아 두 피살자에게 공통으로 원한을 품은 자가 있거나 공통적인 이해관계로 얽힌 자가 있어야 할 텐데, 지금까지 수사한 내용으로 봐서는 그러한 정황이 드러난 바가 없었다.
--- p.50

“그 자식이 성폭행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걸 보면 앞으로도 태도를 바꾸지 않을 거야. 그리고 아마 그 자식, DNA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어떻게든 경찰 출석을 미루려고 할 게 분명해. 상습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놈은 그 분야에 관한 법률 지식이 거의 변호사 수준인 경우가 많거든. 만약 DNA 검출이 안 되면 성폭행뿐만 아니라 성관계 자체를 부인할 거야. DNA가 검출되면 성관계가 있었던 건 부인할 수 없으니까, 합의하에 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할 거고. 안 봐도 비디오야.”
--- p.127

출근길 라디오 뉴스도 성범죄자 연쇄살인사건에 관한 보도로 뜨거웠다. 그녀는 각 채널의 주파수가 저장된 카 오디오의 단축 버튼을 차례로 눌러 보았다. KBS, MBC, SBS 그리고 YTN까지.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언론사 입장에서는 연쇄살인이 안 그래도 호들갑을 떨기에 좋은 소재인데, 희생자가 모두 성범죄자라는 사실은 불타는 소재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 p.207

8월의 어느 무더운 날, 경찰에 변사체 발견 신고가 접수된 뒤 강서경찰서 소속 강력팀 형사들과 과학수사요원들이 차례로 사건 현장에 도착했다. 그들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건 피살자의 목에 감긴 빨랫줄이었다. 두 줄로 꼬아진 직경 5mm 정도의 주황색 빨랫줄. 강력팀장은 최근 발생한 성범죄자 연쇄살인사건과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휴대폰에 저장해 둔, 연쇄살인범이 사용했던 빨랫줄 사진과 대조해 보았다. 그러고 나서 피살자의 지갑에서 주민등록증을 꺼내 신원을 조회했다.
--- p.288

그녀는 과학수사요원이 건네준 라텍스 장갑과 덧신, 마스크를 착용한 후 룸 안으로 들어섰다. 검은 파리들이 윙윙댔다. 그녀는 시체의 끔찍한 모습을 보는 건 참을 만했으나 냄새만큼은 견디기 어려웠다. 방진 마스크를 착용했음에도 달걀 썩은 내와 생선 썩은 내가 섞인 듯한 고약한 냄새 때문에 숨 쉬는 게 힘들 정도였다. 그녀는 입으로 호흡하며 현장 조사를 시작했다.
--- p.290

어느덧 땅거미가 내렸다. 과학수사대는 현장 감식을 끝냈다. 그리고 훼손되거나 오염되지 않도록 시체를 보존 조치한 후 구급차에 실었다. 수사지원팀에서 피살자의 가족관계를 확인해 그의 부모와 형제들에게 사망 소식을 알렸으나 누구도 찾아오겠다고 하지 않았다. 부검에 대해 가족의 동의도, 거부도 없었으므로 그의 시체는 인근 병원 영안실에 임시로 안치된 후 부검영장이 발부되는 대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내질 것이었다.
--- p.298

유력한 용의차량을 찾아냈으나 그녀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량은 사흘 전에 이미 수리가 끝났는데, 외부는 물론 내부까지 말끔히 세차 된 상태였다. 그것이 범행차량이 맞는다면 중요한 증거물이 훼손된 셈이었다. 과학수사대가 정밀감식을 하더라도 화학약품까지 사용해 깨끗이 세차 된 차 안에서 범행 흔적을 찾아내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 p.362

그는 발가벗은 몸으로 주방 찬장과 싱크대 서랍을 뒤졌다. 찾는 물건이 보이지 않자 안방 장롱 서랍을 뒤졌다. 그는 가죽집에 꽂힌 캠핑용 나이프를 찾아냈다. 날의 길이가 7cm에 불과했으나 성인 남자의 정강이뼈도 자를 수 있을 만큼 날카롭고 단단한 칼이었다. 그는 옷장에서 속옷과 가벼운 긴소매 셔츠와 양 허벅지 부위에 커다란 주머니가 달린 레저용 긴바지를 꺼내 입었다. 바지 주머니에 나이프와 지갑과 차 키와 휴대폰을 쑤셔 넣은 후 집을 나섰다.
--- p.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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