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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0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140*205*20mm
ISBN13 9791156345602
ISBN10 115634560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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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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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가 정거장 역사로 미끄러지듯 들어오고 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승강장 계단을 몇 개씩 뛰어 내려갔다. 숨이 턱에 차고 머리털이 치솟았다. ‘이번에 또 놓치면 안 돼, 일 년을 더 기다려야 해, 안 돼~.’ 그러나 간발의 차이로 괴물 같은 열차는 기적 소리만 길게 남긴 채 이무기로 변신하여 밀림 속으로 스르르 사라졌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플랫폼에서 망연히 서서 그걸 바라보았다. 뒤늦게 죽을힘을 다해 계단을 뛰어 내려온 동료 몇몇도 열차 꽁무니를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굴렀지만, 열차는 이미 떠난 뒤였다.

직장에서 승진시험이나 심사를 앞둘 때면 나는 이렇게 아슬아슬한 꿈을 꾸곤 했다. 피라미드형으로 좁아지는 승진문은 계급이 올라갈수록 좁은 문이 아니라 숫제 바늘구멍이었다. 경쟁은 치열하다 못해 처절했다. 그런 방정맞은 꿈을 꾸고 나면 꿈은 거꾸로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하지만 그건 희망 사항일 뿐 사정없이 미끄러졌다. 불안하고 답답한 마음에 떨어져도 좋으니 시원하게 덜커덩 붙는 꿈이라도 한번 꾸어봤으면 좋겠다고 푸념해 봤지만, 무슨 꿈같은 소리냐는 듯 그런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몇 년마다 구사일생으로 열차에 매달리다시피 간신히 올라타긴 했다. 그것도 대개는 막차 맨 뒤 칸이었다. 그럴 때는 승진예정자 명단에 끼어도 순위가 늦어서 임용이 뒤처졌다. 직장 동료나 친구들은 나에게 ‘승진 복 대신 일 복은 많지 않으냐.’며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일복도 복이라면 도대체 무슨 복에 낄까 몰라도, 어느 직장인인들 신물 나게 일 안 해 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더군다나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영혼까지도 판다는 이 엄혹한 세태에…. 어쨌든 그런 전쟁 통에서 나는 용케도 견뎌내긴 했다.

퇴직하고 나서도 한동안 같은 꿈을 꾸었다. 예전과 다른 점은 종착역에 내린 것이다. 그곳에선 먼저 타려고 별별 야료를 부리던 군상들이나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하던 인사들 할 것 없이 모두 서성거리고 있었다. 더 갈 곳 없는 종착역에서 그들은 또 어디로 가려고 두리번거리고 있던 걸까. 그리고 세월이 한참 흘렀다. 그런데도 간밤에 또 왜 그 괴물 같은 열차를 타려고 등에 땀이 배도록 뛰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젠 은하철도를 타야 할 나이가 되어 가는데도 말이다
---「은하철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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