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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철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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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철학자들

: 포함과 창조의 새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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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9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150*210*175mm
ISBN13 979116629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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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공자의) ‘술이부작’은 서양문화와 대비되는 동아시아문화의 특징을 아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말입니다. 서양문화는, 특히 근대문화는, ‘작이불술(作而不述)’을 중시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창작을 하지 서술하지는 않는다”가 중시되는 문화입니다. 왜냐하면 서양에서는 해설이나 설명보다는 창작이나 창조를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독창성을 강조하는 문화입니다. 그래서 연속성이나 계승성보다는 단절성과 혁신성이 강조됩니다. 반면에 유학의 경우에는 ‘술’로 대변되는 연속성과 계승성을 강조합니다.
--- p.25-26

(天我心 天我氣에서 ‘天’은 ‘하늘하다’의 의미로서) 하늘이 동사로 쓰인 용례는 제가 아는 한 천도교에서 처음 본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 동학에서 말하는 인내천(人乃天), 즉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인간관과 “수심정기(守心正氣)”, 즉 “마음(心)을 지키고(守) 기운(氣)을 바르게 하라(正)”는 수양론이 융합된 결과로 보입니다. “천아심 천아기”는 줄이면 ‘천심천기(天心天氣)’라고 할 수 있는데, ‘수심정기’에서 수(守)와 정(正)의 자리에 천(天)이 들어간 형태니까요. “천아심 천아기”, 줄여서 “천심천기”는 천도교에서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경지가 하늘같은 경지임을 말해줍니다.
--- p.46

교토대학의 오구라 기조 교수는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 한국인들은 리를 지향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하였습니다. 이때 리는 ‘도덕지향성’을 말합니다. 즉 한국인들은 모든 것을 도덕적으로 환원시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향이 때로는 ‘상승지향성’과 맞물려 나타나기도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한국이라는 나라는 리를 둘러싸고 투쟁을 벌이는 하나의 거대한 극장이라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구라 교수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한국인들은 ‘하나의 리’를 지향합니다. 이 경우에 리는 ‘이념’을 말합니다. 즉 어떤 사상이든 한국에 들어오면 이념적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상의 분석은, 그 타당성 여부는 둘째 치고, 조선시대의 리가 현대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분석틀로 여전히 유효함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 p.86

최치원의 (퓽류도의) ‘포함삼교’는 삼교를 수용한 새로운 ‘도’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그것은 삼교의 소양을 골고루 갖춘 전인적 인간형의 양성을 지향합니다. 즉 유·불·도 삼교의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모두를 아우르는 인재를 기르겠다는 발상입니다. (중략) 최치원이 말하는 화랑의 풍류도도 이와 유사합니다. 화랑은 사상적으로 그 어느 것에도 얽매어 있지 않습니다. 모든 사상과 어우러지기 때문에 어떤 사상가라고 이름붙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냥 ‘풍류(떠돌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 p.107-108

『장자』 철학의 핵심 개념 중의 하나도 通(통)입니다. 『장자』는 “도가 통하면 하나가 된다”(道通爲一)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統이 아닌 通을 쓰기 때문에, 장자가 말하는 ‘통일’이란 여러 가치들이 하나로 통합되는 統一이 아니라, 다양한 가치들이 서로 소통하는 通一을 말합니다. 장자는 이러한 인식을 ‘제물(齊物)’이라고 하였습니다. ‘제물’이란 “사물을 고르게 한다”는 뜻으로, “다양한 가치관을 동등하게 인식한다”는 말입니다. 『장자』의 두 번째 장(章)이 「제물론」인데, ‘제물론’이란 “사물을 고르게 인식하기 위한 논의”라는 뜻입니다.
--- p.119

“‘다르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같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고, ‘같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는 말은 불교적 언어관을 잘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즉 불교에서는 어떤 명제를 주장할 때 그것이 부분적 진리만을 나타내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가령 “A와 B가 같다”고 할 때에는 “A와 B가 완전히 같다”는 의미가 아니라 “A와 B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A와 B가 다르다”고 할 때에는 “A와 B가 완전히 다르다”는 말이 아니라 “A와 B가 같지 않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어느 한 명제에 대해서, 그 명제 자체보다는 그 명제에서 말해지지 않은 ‘나머지’ 부분에 주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p.126-127

영조는 신하들에게 당파 싸움하는 편협한 마음에서 벗어나라고 하면서 “그대들의 마음은 개벽되었는가?”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개벽’은 ‘연다’는 뜻으로,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세계를 여는 것”을 말합니다. 홍대용은 새로운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과거의 진리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영조는 새로운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방식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둘 다 새로움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개벽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 마음개벽을 훗날 동학을 이끈 해월 최시형은 인심개벽(人心開闢)이라고 하였고, 일제강점기에 탄생한 원불교에서는 정신개벽이라고 하였습니다.
--- p.220

동학의 독특한 점은 보국안민의 계책을 최제우가 스스로 생각해 낸 것이 아니라 하늘님으로부터 계시의 형태로 내려 받았다는 점입니다. (중략) 최제우에게 새로운 도를 내려준 하늘님은 중국적인 성인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도교의 태상노군처럼 무수한 세월 동안 수양을 해서 성인이 되었다는 서술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산의 상제처럼 우주의 바깥에서 우주를 창조한 조물주로 설명되지도 않습니다. 그냥 한국의 전통적 하늘님 같은 느낌입니다. 한자 표현은 상제(上帝)나 천주(天主)라고 하지만, 실제 내용은 고대 유학의 상제나 천주교의 천주와도 약간 다릅니다.
--- p.252

원불교에서는 마음살림뿐만 아니라 생활살림도 중시합니다. (중략) 오늘날 중시되는 ‘일회용 안 쓰기 운동’이나 ‘지구 살리기 운동’도 넓은 의미로 보면 생활개선운동이나 생활살림운동에 해당합니다. 맹자가 “항산(恒山)이 없으면 항심(恒心)이 없다”고 했듯이, 생활살림은 마음살림의 기초가 됩니다. 다만 맹자에서는 위정자가 항산(경제력)을 제공해 준다고 한다면, 원불교에서는 민중이 스스로 항산을 확보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 p.309

(보은취회는) “관리들의 압박이 심해서 각 포(包-동학의 조직)의 도인들이 장차 모두 죽게 되었으니 불쌍한 이 생명들을(哀此生命) 어떻게 유지하고 보전하겠습니까?”라고 호소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불쌍한 이 생명들”이라는 표현은 보은취회가 일종의 ‘생명운동’으로 출발하였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타인의 생명을 불쌍히 여기는 데에서 시작된 민중운동이었던 것입니다.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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