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말입니다, 선생님, 우리는 고작해야 창조주를 모방하는 자들일 뿐입니다. 우리의 덧없는 작품이, 제아무리 아름답고, 제아무리 의기양양하고, 제아무리 위대하다고 해도, 고작해야 보잘것없는 위조물에, 신이 만든 불멸의 작품 중 가장 하찮은 작품의 꺼져 버린 반짝임에 지나지 않습니다. 온전한 독창성이란 숭고하고 벼락이 내리치는 시나이산의 둥지에서만 제 알의 껍질을 깰 뿐인 새끼 독수리와 같은 것입니다. ― 그렇습니다, 선생님, 저는 오랫동안 절대적인 예술을 찾아다녔습니다! 아아! 착란이었습니다! 아아! 광기였습니다! 불행이라는 무쇠 화관으로 주름진 제 이마를 한번 보십시오!
--- p.36~37
예술은 언제나 상반되는 양면을 지니는데, 예를 들어 한쪽 면은 파울 렘브란트의 모습을, 그리고 반대쪽 면은 자크 칼로의 모습을 도드라지게 나타낼 한 닢의 메달과도 같다. ― 렘브란트는 자신의 누추한 집에 달팽이처럼 은둔하고, 명상과 기도에 제 생각을 빼앗겨 버리고, 집중하기 위해 두 눈을 감고, 아름다움, 학문, 지혜와 사랑의 정령들과 대화를 나누고, 자연의 신비로운 상징들을 꿰뚫으려고 온 힘을 다하는 백발 수염의 철학자이다. ― 반대로 칼로는 거만하게 마을 광장을 싸돌아다니고, 주점에서 소란을 피우고, 집시 여인에게 추근거리고, 자신의 뾰족한 검과 나팔 총을 걸고서만 맹세를 하고, 자신의 콧수염에 광을 내는 일 외에 다른 걱정거리라곤 갖고 있지 않은, 허풍쟁이에 추저분한 독일 용병이다.
--- p.41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서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 p.42
그리고 거기 푸른 물이 일렁이는 운하, 그리고 거기 금빛 유리창이 불타오르는 교회, 그리고 거기 햇볕에 빨래가 마르고 있는 스토엘, 그리고 거기 홉으로 푸르른 지붕들.
--- p.51
그는 본다, 회색 한 점으로, 꼼짝하지 않는 숫매의 깊이 팬 날개에 얼룩을 입히는 석조 타라스크들이, 회랑, 창, 삼각홍예, 작은 종루, 소탑, 지붕과 골조가 어지러이 뒤섞인 어둠 속에서 지붕 석판에 흐르는 물을 토해 내고 있는 모습을.
--- p.53
나는 멀리서 불어오는 향로의 향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신께서는 풍요로운 당신의 수확물 뒤에서 내가 빈자(貧者)의 이삭을 줍는 걸 허락해 주셨다.
그러나 저것은 스카르보, 내 목을 깨물고 있는, 그리고, 피 흐르는 내 상처를 지져 버리려고, 화덕에서 새빨갛게 달군 자신의 쇠 손가락을 거기에 찔러 넣고 있는!
--- p.102
인적 끊긴 도시를, 밤마다, 떠도는 미치광이가 차갑게 웃고 있었다, 한쪽 눈은 달을 보고, 다른 눈은 ? 터진 채로!
--- p.105
― “들어 봐요! ― 들어 봐요! ― 저예요, 저 달의 구슬픈 빛으로 반짝이는 그대의 마름모꼴 창문을 물방울로 살짝 스쳐 소리를 낸 것은 바로 저 옹딘이에요; 물결무늬 드레스를 입은, 성의 주인이 여기 있어요, 발코니에 서서 별이 총총한 아름다운 밤과 잠들어 있는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보고 있어요.
--- p.117
중세 음유시인의 연주, 중세 요정의 마법 주문, 그리고 중세 용자의 영광과 함께, 기사도는 영원히 사라져 버렸는데도, 어찌하여 벌레에게 파먹힌 먼지투성이 중세 이야기를 되살려 내려 하는 겁니까?
--- p.148
그대, 젊은 은둔자여, 홀로 그대의 독방에 틀어박혀, 그대 기도서 저 하얀 종이 위로 악마의 모습을 그려 보는 일로, 그리고 죽은 자의 두개골 같은 그대 두 뺨을 불경한 황금색 분으로 치장하는 일로 그대 즐거워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대의 위안인가?
--- p.157
내게 초가 한 채 있다면, 여름에는, 나무들 잎새를 그늘로 가지리라, 그리고 가을에는, 창가 저 네모난 정원에, 진줏빛 빗방울 머금은 이끼를 조금, 그리고 아몬드 향내 풍기는 꽃무를 조금, 가지리라.
--- p.179
10월, 겨울의 전령이, 우리들 거처의 문을 두드린다. 간헐적으로 쏟아지는 빗줄기가 뿌연 유리창을 흥건하게 적신다, 그리고 바람은 플라타너스의 낙엽들을 고적한 돌계단에 흩뿌린다.
--- p.183
오, 나의 젊은 시절이여, 너의 기쁨은 시간의 입맞춤으로 얼어붙었다, 그러나 너의 고통은 제 가슴에 파묻어 질식시킨 시간에 살아남았구나.
--- p.187
나의 책이 여기 있습니다, 주석자들이 저마다 주해로 흐릿하게 만들어 버리기 전에, 내가 만든 그대로, 그리고 있는 그대로 읽어야만 하는 책입니다.
--- p.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