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둘이에요. 하나는 길고양이이고, 다른 하나는 도둑고양이예요. 사람들이 지어준 이름이랍니다.
길고양이로 불리는 건 다행이에요. 도둑고양이로 불릴 때는 많이 억울합니다. 내가 뭘 훔쳤다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별이네 집에서 빨랫줄에 걸려있는 생선을 훌쩍 뛰어 올라, 따 먹은 적은 있어요. 훔쳐 먹은 것은 아니랍니다. 감꽃이 흐드러지게 널린 별이네 뒤란에서 별이랑 같이 먹었거든요. 별이는 내가 사람나라에 와서 사귄 친구예요.
우리 엄마가 지어준 내 진짜 이름은 천재고양이랍니다.
나는 엄마 찾아 삼천 리 하고 있어요.
형제들과 함께 엄마 뒤를 따라서 꽃길을 걷고 있었어요. 길가에 자주달개비꽃이 한창이었거든요. 그만 꽃우물 속으로 풍덩 빠져버렸답니다. 꽃우물 속에서 빠져나와 고개를 들었어요. 엄마도 형제들도 안 보였어요.
그래서 꽃우물 속에 다시 빠져들었어요. 노란 아기똥풀이랑 금계국이랑, 정신없이 꽃향기 속에 한눈팔았어요. 꽃향기를 따라 걷다가 그만 고양이나라를 벗어나고 말았습니다. 고양이나라에는 없는 찻길가에 한참을 서 있었어요.
그러다 머뭇머뭇 낯선 길로 점점 깊이 들어갔어요. 사람나라라는 이정표를 만났어요. 쌩쌩거리며 많은 차가 달리는 길가에서, 두 눈을 희번덕이며 웅크리고 앉아있었습니다.
때마침 흰 고양이가 땅에 코를 박고 지나가고 있었어요.
“말 좀 물어보겠습니다옹.”
느닷없는 내 목소리에 흰 고양이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고개를 들었어요.
“넌 누구야?”
“나는 천재고양이입니다옹. 고양이나라에서 지금 막 왔습니다옹.”
“천재? 후훗. 재밌네. 여기는 사람나라인데…. 여기는 위험해. 너처럼 어린고양이한테는.”
“그래도 사람나라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옹.”
“천재가 뭘 물어보려고?”
“어디로 가야할지 길을 잘 몰라서입니다옹.”
“네가 가고 싶은 대로 가, 자유롭게 천재처럼. 산길이든 들길이든 자갈길이든.”
--- p.8~11
저만큼에서 우리 집 낡은 대문이 햇살에 반짝이고 있습니다.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어요. 낡을 대로 낡은 대문이 이때만큼 반가운 적은 없었어요.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대문을 지나서 마당으로 들어섰어요.
“엄마, 나 왔어요, 야옹!”
집 안이 한밤중처럼 고요합니다. 우리 가족이 나를 반기려고 한달음에 뛰어나올 줄 알았는데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동거인만이 우리가 물먹는 세숫대야만큼 커다랗게 눈을 뜨고 입은 반쯤 벌린 채, 나를 맞이했어요.
“네가 살아 돌아오다니!”
흥, 쓰레기봉지를 들고 서 있었을 때는 언제고? 나는 입을 삐죽거렸어요.
“우리 가족은 다 어디 갔어요, 야옹?”
“널 찾으러 모두 산에 갔다. 길이 어긋났나보구나. 네 남매들이 어젯밤 늦게까지 널 못 찾았다고, 오늘 새벽에 네 엄마랑 모두 같이 나갔다.”
“그래요, 야옹? 알았어요, 야옹.”
“꼬맹아, 어쨌거나 나 때문에 네가 죽을 뻔 했구나.”
“저 야옹이거든요, 야옹!”
이제는 꼬맹이라고?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한 군데도 없는 동거인입니다.
“으응, 그래. 야옹아, 참 장하고 멋지구나. 네가 살아서 돌아오다니! 말할 수 없이 고맙다.”
이제는 동거인을 의심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그런데 참 이상한 동거인입니다. 내가 살아서 돌아온 걸 왜 우리 동거인이 고마워하는지 모르겠어요.
어젯밤에 내린 비로 깨끗해진 장독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합니다.
장독대로 가고 싶었지만 바닥에 물기가 있을 것 같았어요.
나는 동백나무 그늘로 향했어요.
“야옹아, 네가 돌아올 걸 난 믿었어.”
뜻밖에도 동백나무가 내게 말을 했어요.
가족을 찾으러 갈까도 싶었지만요. 기운이 다 빠져버려서 다리가 내 마음대로 안 움직입니다.
동백나무와 친구하며 가족을 기다려야겠어요.
--- p.47~48
바다는 소리 없는 별빛처럼 아무 소리가 없습니다. 낚싯대도 고요한 바다처럼 멈춰 자세로 바다 위에 고요히 꽂혀있기만 합니다.
아저씨들도 아무 말 없이 바다를 내려다보고만 있습니다. 바람도 없어서 물결도 잔잔합니다.
별이는 고요한 바다가 심심했어요.
“눈나, 이게 무슨 냄새냐옹? 어디서 이 냄새가 나냐옹?”
“이 냄새는 바다 냄새다옹.”
구름이는 처음 맡은 바다냄새에 호기심이 생기나 봐요.
“여기 서 있는 아저씨들이 물고기를 잡는다옹. 그때 물고기 한 마리 얻어서 우리 같이 먹자옹. 그런데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은 아저씨가 아직 없네….”
그때 갑자기 저만큼 서 있던 아저씨가 낚싯대를 둥글게 흔들면서 큰 물고기를 잡아 올립니다.
“눈나, 저기 물고기가 매달려있다옹!”
“저게 낚시다옹. 낚싯대로 물고기를 바다에서 잡아 올리는 거다옹.”
“으응, 그렇구나옹.”
구름이가 머리를 살살 끄덕입니다.
고요하던 바다가 조금씩 술렁이기 시작합니다. 다른 아저씨들은 낚싯대를 흔들어보기도 하고, 물고기가 안 잡혀서인지 부스럭거리기도 합니다.
별이는 물고기를 부탁해보려고, 아저씨 가까이로 다가갔어요.
“아저씨, 우리가 아침부터 굶었어요. 집에서 쫓겨났거든요. 그 물고기를 우리한테 주시면 안 될까요?”
별이는 말을 조금 꾸몄어요. 반은 사실이고 반은 사실이 아니지만요. 구름이가 배가 고픈 것이 사실이니까요.
아저씨가 구름이와 별이 쪽으로 얼굴을 돌렸어요. 그리고 이상하다는 듯이 둘을 빤히 내려다봤어요.
“이 물고기는 오늘 처음 잡았다만. 너희가 배가 고프다니 하는 수 없구나. 물고기는 또 잡으면 되니까.” 하면서, 물고기를 별이와 구름이 앞에 던져줬어요.
“감사합니다, 아저씨.”
별이는 고개를 푹 숙이며 아저씨한테 인사했어요.
아저씨는 별이를 신기한 녀석이라는 눈빛으로 바라봤습니다.
구름이는 퍼덕이는 물고기를 앞발톱으로 살짝 찔러봤어요.
“아야, 아파….”
갑자기 물고기가 소리를 질렀어요.
“아이쿠, 깜짝이야!”
둘은 약속한 듯이 합창하며, 펄쩍 뛰어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어요.
“아저씨, 물고기가 아프다고 소리 질러요!”
별이는 아저씨를 보며, 어떡해요 하는 표정으로 말했어요.
“무슨 말이냐? 물고기가 그럴 리 있냐?”
“정말이에요.”
구름이도 거들었어요.
“너희가 먹어버리면 된다. 배고프다고 하지 않았느냐? 어서 먹어라.”
아저씨는 물고기 비명을 못 들었나 봐요.
“아저씨, 이 물고기가 움직여요.”
별이는 아저씨한테 물고기 사정을 설명하려고 애썼어요.
“지금 바다에서 막 잡아 올려서 그렇다.”
--- p.5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