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문명은 지구 전반에 걸쳐 환경오염과 파괴를 촉진시키고 있다. 현대 사회를 지칭하여 ‘생태 위기의 시대’라 규정하는 것은 이 같은 현실에 대한 인식에 바탕을 둔다. “위기란 기존의 체계가 더 이상 항상성(恒常性)을 유지하지 못하고 파국을 맞을 수 있는 위험에 처한 것”을 의미하며, “생태 위기란 사회를 포함하여 지구라는 생태계 전체가 이러한 의미에서의 위기에 이르렀다”는 것을 뜻한다. 생태 위기는 단순히 자연에만 해당하는 위기가 아니라, ‘자연계의 하위 생태계로서 사회가 맞고 있는 위기’이기 때문에, 인간의 자연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만을 원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사회 구조적 측면의 변화가 요구되는 것이다.
한국 문학은 생태 위기에 대한 이러한 제반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향과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한 시기에 집중되다가 지금은 담론영역에서 다소 벗어나고, 주변문제로 밀려난 느낌을 준다. 자칫 문학담론의 시류성 같은 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생태 및 환경문제는 일시적 현상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더 심화될 중차대한 문제이다. 지속적으로 생태계가 파괴되고 삶의 환경이 훼손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학이 이를 어떻게 수용하고 대응하는지에 대한 연구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생태주의론적 문학연구는 선택이 아니라 하나의 당위(當爲)의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현대시조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시조는 전통적으로 자연 친화적인 특성을 지닌다. 자연적 질서에 따라 생활양식의 구조를 형성해 온 선험적 경험이 시조인식의 바탕이 되어 온 것이다. 이러한 시조의 전통적 인식체계는 그대로 현대시조로 계승되어, 현대시조에서도 ‘자연서정’이 주제론적 근간을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해 인간과 자연과의 서정적 조응이 현대시조의 핵심적 주제론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시조는 서정적 조응에 멈추지 않고, 생태계 파괴와 인간 사회에 미치는 영향으로 사유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이 지점에서 현대시조의 인식론적 전환, 즉 생태론적 관점과 인식이 부각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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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자연 서정성이 두드러지는 시조의 입장에서 환경파괴와 관련된 ‘위기적 징후군’은 숙고해야 할 과제였다. 환경의 위기는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는 이원론적 사고관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인간과 자연은 불가분리의 유기체적 관계 속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인간과 자연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유기체인 것이다. 무엇보다 인간 자신이 자연의 일부이므로 이를 분리하는 이원주의는 그 자체가 하나의 모순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과 자연을 별개의 존재로 분리시켜 인식하는 이원주의는 산업화, 근대화 과정에서 시대적 지표로 떠오른다. 그 결과 자연파괴, 환경오염은 심각한 사회적 과제로 부각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원주의에 의해 초래된 자연파괴, 환경오염 문제는 현대시조의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 p.71
사회생태주의에서 북친이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은 그동안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던 보편적인 시각과 차이가 있다. 인간의 상식 속에 있는 자연은 인간이 보는 아름다운 전경이거나, 경치를 바라보면서 만나게 되는 정적 이미지들의 조화로움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인간은 거기서 휴식과 평온함을 얻는다. 이처럼 우리는 대개 자연을 ‘단선적(單線的) 사고방식(선형적 사고)’으로 인식하지만, 사회생태주의에서 말하는 자연은 ‘비선형적 사고’, 다른 말로 유기적 사고방식에 근거한다. 이는 “분석적 사고가 아니라 발전적 사고요, 어려운 말로 하면 도구적 사고가 아니라 변증법적 사고이다. 이 사고방식은 자연세계를 발전 과정”으로 이해하는 데서 기인한다. 사회생태주의는 자연세계를 하나의 유기체로 인식하고, 진화하는 총체로 여기는 것이다. 즉, 자연이 ‘무기물에서 유기체로, 미분화된 단세포 유기체의 세계에서 다세포 유기체의 세계로 진화’했다고 본다. 그리고 인간은 자연이 만들어 낸 ‘진화의 산물’일 뿐이다. 지식과 도덕적 능력, 도구를 조작하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은 자연 진화가 생산한 가장 진화된 생명체인 셈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역사와 자연 진화의 흐름은 서로 구분되어야 하는 분리 영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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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자본 축적의 사회를 뛰어넘어 자연과 공동체가 연계되는 조화로운 사회를 위하여, 포스터는 탐욕보다는 평등과 정의, 자연과의 새로운 조화가 요구된다고 본다. 그러므로 인간은 사회 진보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한다. 그는 여기에 지구의 미래가 달려 있으므로 더 많은 사람이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 현대시조에는 이러한 포스터의 주장에 부응하는 작품이 많이 제작되었다. 낭만적 생태주의와 합리적 생태주의는 각각의 가치성과 연관하여 우월을 가릴 수 없다. 생태주의와 관련된 여러 견해들의 장단점을 보완하면서 함께 가야 할 것이다.
살펴본 바대로 현대시조는 다른 장르와 마찬가지로 환경위기 시대의 현실을 인식하고 생태의식을 일깨우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생태주의에 대한 창작과 논의가 자칫 쇠퇴하는 현상을 보여준다. 생태문제는 일시적 시류에 그치는 단편적인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인 인간환경 문제이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생태 위기는 더욱 가중될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시조는 생태주의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창작과 연구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부각하고, 환기시키고자 한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앞으로 생태주의 시조가 활발하게 창작되고, 이와 관련된 담론도 적극 개진돼야 할 것이다. 나아가 문학의 영역을 넘어서 사회, 정치, 예술, 철학, 경제 전반에 걸쳐 이러한 논의가 활성화돼야 한다. 생태문제는 문학만이 담당할 수 없는 총체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본 연구는 생태주의가 문학은 물론 일반 영역 전반에 걸쳐 논의가 확산되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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