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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리고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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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1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146*206*16mm
ISBN13 9791156626473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저는 작품을 통해서 공동체가 강제하는 개인의 삶에 대해, 공동체를 위한 개인의 선택과 그 결과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만들어 놓은 폭력적인 상황 앞에서 개인은 그저 황망할 따름입니다. 그로 인한 혼란은 해결의 실마리조차 잘 보이지 않습니다. 따져보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태초부터 지금까지 폭력적인 상황으로부터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 그 스스로가 모든 폭력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말」중에서

작가의 신비로운 감흥이 제게 스며들어, 독자의 신비로운 감흥이 되었습니다. 평생 독서하면서 두세 번 올까 하는 특별한 감정상태입니다. (...) 그 효과로 생각이 각성되어, 새롭게 사고할 수 있었고, 제 자신에 대해, 저의 글쓰기 방식에 대해 다시금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추천의 말」중에서

형은 국경지역에 대해 전혀 흥미가 없었다. 아주 여러 번 형이 말했다. 가능하다면 사람들이 힘을 모아 세상을 덜 까다롭게 만들고, 함께 평온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국경지역은 어디나 위험해. 제기랄, 될 수 있으면 피해야지.
--- p.29

처음에 녀석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녀석의 형이 동작이 굼떠 총에 맞은 거라고 생각했어. 만약 우리처럼 날렵했다면 살아남지 않았겠냐구. 그런데 나중에 생각이 달라졌어. 늦고 빠른 게 무언가를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 누군가가 군인의 목숨을 결정하는 거였어. 그렇게 생각하니까, 계속 그런 생각이 드니까, 네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내가 기록을 해야겠더라구. 그렇게 무서워할 일은 아니야.
--- p.58~59

나는 문득 내 얼굴에 곧바로 오줌을 갈겨대는 투명인간이 떠올랐다. 그자는 지금 어딘가 멀리서 누군가의 얼굴에 오줌을 갈겨대고 있을 것이다. 그자는 오줌을 눌 때면 몸 안의 물을 모두 바깥으로 날려 보냈다. 나는 편안해졌다. 자리로 돌아왔을 때 하늘 아래 짙고 선명한 산등성이를 볼 수 있었다.
--- p.103~104

내가 어렴풋이 기억하는 것은 항이 깜짝 놀라 부드럽게 불렀음에도 내가 물속으로 기어들어가 조용히 멀리 헤엄쳐 갔던 것이다.
―그만, 히에우.
사방이 물인데, 수만 개의 물결이 서로 겹쳐서 내 목에 닿았다가 사라졌다.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등줄기 끝에서부터 목덜미까지 찌르는 듯한 한기가 느껴졌다. 나를 아래로 내리누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내 몸의 피가 식고, 검게 변하고, 가슴 속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 p.107

그는 산에 사는 노인이 저지대에 사는 노인보다 오래 산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항상 생명을 연장시켜야 할 것이라고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말의 의미가 잘 이해되지 않아 궁금했다.
―왜 생명을 연장시켜야 하는 거지?
호텔직원은 나를 의심스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그가 나를 당연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유치한 놈이라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가 놀라서 내게 되물었다.
―제가 그렇게 말했나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말했다.
―담배 한 대만 주세요.
--- p.122

짱은 입술을 깨물고 나를 노려보며 물었다.
―어젯밤에 왜 나랑 안 했어?
나는 그녀의 태도에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피곤해서 그랬어.
―싫증난 거지, 그렇지?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다시 입술을 깨물었고, 뺨이 팽팽해져 더 하얗게 되었다.
―만약 싫증난 거라면 내가 알 수 있게 바로 말해.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인기척이 느껴져 그냥 차분하게 말했다.
―난 아직 널 잘 몰라. 어떻게 싫증날 수 있겠어?
--- p.162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니 요구할 권리가 있어.
나는 형 옆에 앉았다. 어머니가 밖에서 모든 말을 다 듣고 있었다. 형의 정신이 깨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사람들은 형한테 빚진 게 없어.
―그럼 제기랄 어떤 놈들이 나한테 빚을 진 거야?
형이 고집스럽게 물었고, 다시 눈이 붉어졌다.
―아무도 없어.
--- p.224

형이 비명을 지르며 부스스한 머리로 나를 들이받았다. 우리는 함께 쓰러졌다. 나는 쓰러지며 종이부채처럼 펼쳐져 있는 흰 구름 떼를 보았다. 형은 마구잡이로 나를 때리며, 입으로는 계속 ‘꽁찌, 꽁찌’했다. 나는 몸을 움츠리고 주먹을 피하면서 헐떡거리며 말했다.
―저기 구름, 저 구름 좀 봐.
하지만 형은 듣지 않고, 미친 듯이 계속 때렸다. 나는 벌떡 일어나 형을 밀어내며 소리를 질렀다.
―그만해.
형은 고함소리에 멈췄다. 먼지를 털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길고 가는 평범한 구름만 보였다. 은행 경비 노인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노인은 모든 것을 다 봤다. 나는 동생이라고 말하고 지갑에 있는 돈을 다 건네면서, 가끔 형에게 먹을 것을 사주라고 부탁했다. 노인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내가 돈을 다 가질까 두렵지 않아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눈물이 펑펑 쏟아지고 노인도 울컥하게 만들었다. 나는 명확하게 말하려고 애썼다.
―제 형님은 상이군인이에요.
노인은 돈을 받아서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넣고 차렷 자세로 가슴을 내민 채 말했다.
―나도 반미항전군인입니다.
노인은 내게 말하지 않고 형에게 말했다.
--- p.232

은은한 습기 같은 기억 속에서, 혹은 지금과 같은 기억 속에서, 사무실로 돌아가는 내 여유로운 발걸음을 놈은 다음 장소를 일깨우는 방식으로, 한순간 싹둑 잘라버렸다. 나는 국경에 관해 매우 당찬 논평을 했다. 문장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은 제방쌓기가 오히려 제방을 부수는 괭이 같다는 것이다. 내가 외우고 있는 형의 수첩 속 기록이 샘물처럼 머릿속에서 솟구쳐 나오고 있다.
--- p.291

그렇게 네 번째는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분위기가 긴장되기 시작했다. 연락병이 훌쩍거리며 울었다.
‘나는 그를 위로했어.
―너도 그냥 너 자신이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 그래야 덜 무섭거든.
연락병은 고개를 저으며 속삭였지.
―저도 그러려고 애써봤어요. 그런데 자꾸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사실 나도 당혹스러웠어. 도대체 저놈들이 사람들을 데려가서 무슨 짓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 젠장, 젠장, 젠장, 젠장할…….’
--- p.300

‘너는 모를 거야. 너는 잡힌 사람의 감각이 어떤 건지 모를 거야. 갑자기 모든 것이 소름 끼치게 텅텅 비어버리지. 집결지에 모이던 그날 밤처럼 말이야. 그날 밤 우리집에 핀 꾸인 꽃은 정확히 백 송이였어. 자네 정확히 기억하지?
절대 잡히지 마라. 젠장.’
--- p.327

―히에우 오빠!
짱이 밖을 내다보며 내 이름을 불렀다. 내가 영혼들과 함께 허공에 떠 있는 모습을 본 듯했다. 영혼들은 곧 사라질 어둠 속에 나와 함께 있었다. 내가 여정 내내 짱의 곁에 머물러 있었던 것처럼.
―여기 있잖아, 왜 그렇게 불러?
내가 귀에 대고 말했지만 짱은 듣지 못했다. 그녀는 들었을 수도 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올라갈 때나 소리에 몰두할 수 있었지 내려갈 때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표류하는 이 황량한 국경 지대에서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어떻게 나와 그들을 구별할 수 있을까? 젠장…….
--- p.339

모임이라는 투명군복을 입고, 상대방 얼굴에 오염물을 뒤집어씌우는 행위는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갈등이 있는 세계 곳곳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입니다. 투명인간. 이는 이념이나 야심을 최대한 부풀려서 상대방을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싸움을 선동하는 권력자나 정치가로 보입니다. 그럼 나는 무엇이고 맞은편에 있는 그들은 무엇일까요. 나도 맞은편에 있는 그들도 그저 나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인 동시에, 소용돌이에 휩쓸리면 무자비하게 서로를 공격할 수도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옮긴이의 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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