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는 밤하늘의 별을 보고 군대가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어야 하고, 넓은 들판을 불어가는 바람을 맞으면서도 내일의 정세를 가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잘것없는 풀뿌리와 나무열매가 어떤 병에 잘 듣는지도 알아야 하고, 여기 앉아서 천리 밖의 승패를 점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작은 것과 큰 것, 좁은 것과 넓은 것, 작은 씨앗과 저 넓은 하늘을 동시에 이해할 수 있는 귀와 눈을 가질 때 비로소 천하를 움직일 수 있는 군단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습니다.”
장량은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천하를 다투는 군사라면 그런 자질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보편적인 사실을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그 말을 못 알아들을 유방이 아니었다. 유방은 다시 한번 충격에 사로잡혔다. 자신감을 이렇게 표현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놀라움이었다. 딱히 힘주어 말하지도 않는다. 알아들을 자세가 되어 있으면 알아듣고, 못 알아들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태도로 보였다. 일견, 상대를 무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겸손한 것 같기도 한 어투.
유방은 퍼뜩 제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재빨리 평소의 호방하면서도 어눌한 태도를 되찾았고, 바로 지금 자신이 그 말에 대한 반응을 보여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아, 언젠가는 자네가 군사를 맡아야 하겠지. 열심히 한번 해 봐.”
그 순간, 천하 제패를 향한 ‘유방과 장량’이라는 짝이 형성되었다. 비록, 군사의 지위를 얻지는 못했지만, 구장이라는 묘한 직책을 얻고, 작전회의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도 얻었다. 장량으로서는 일단 성공적인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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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의 머리 속으로 유방 진영의 이름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런 솜씨를 발휘할 만한 인간은 없었다.
“아, 알았다. 그놈이야. 유방 진영을 지휘하는 자는 그놈밖에 없어. 군사 장량. 그 놈의 바람은 장군이 되는 것도 아니고, 승상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 놈은 유방의 막사에서 오로지 계략만을 꾸미고 있어. 왜 장량은 유방 같은 인물을 돕는가. 난 이해할 수 없다. 도저히 알 수 없어…….”
항우의 분노는 서서히 잠들었다. 유방은 밉다. 그 살을 씹어 먹어도 성이 차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장량에게는 적개심이 일지 않았다.
“삼촌, 장량을 어떻게 생각해요?”
항우는 갑자기 항백에게 물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이라고 해야겠지요. 욕심이 없는 사람이지요.”
항백은 항우의 역린(逆鱗)을 건드릴 각오를 하고 진실을 알렸다.
“은혜와 의리를 아는 사람인가.”
항우는 조용히 말한 다음,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는 표정으로 덧붙였다.
“삼촌은 좋은 친구를 두었군요. 은의(恩義)란 고귀한 거지요.”
“그렇지요.”
항백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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