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항상 무언가 해명하고 변명한다. 해명할 수 없는 현상과 감정의 복합체인 삶조차도 우리에게 해명을 요구한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해명을 요구한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스스로도 우리 자신에게 해명을 요구한다. 결국 우리는 우리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모든 것들과 우리 자신을 지나치리만큼 과도하게 해명하여 완전히 무너뜨리는 단계까지 이르게 된다. --- p.12
두려움이란 단지 구덩이를, 무덤을, 하늘에 파고 있는 (언젠가 내가 편히 누울 수 있는) 무덤을 만드는 데 필요한 나의 삽질일 뿐이다. --- p.20
혹시 네가 검은 눈동자를 가진 딸아이로 태어나지는 않을까? 너의 작은 코 주위에는 주근깨가 엷게 흩어져 있지는 않을까? 아니면 네가 고집 센 아들인 것일까? 너의 눈은 회청색 조약돌처럼 근사하고 힘찰까?―물론, 나의 삶을 너의 존재의 가능성으로 생각할 경우에 해당하는 말이겠지만 말이다. 그날 나는 밤이 새도록 오로지 이 질문만을 깊이 생각했다. --- p.25~26
여하튼, 내가 글을 쓰며 삶을 되풀이하는 동안, 나를 추동하는 것은 어쩌면 나의 은밀한 발버둥의 은밀한 희망이다, 말하자면, 내가 이 희망을 일단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알아차린 한, 나는 아마도 광적으로, 미친 듯 부지런히 중단 없이 글을 쓰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대체 무엇을 위해 내가 글을 써야 한단 말인가. --- p.69
“의미를 찾는 일은 그만둡시다, 의미 따위는 없는 곳에서: 금세기, 이 중단 없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발포 명령은 다시 한번 대량 학살을 준비하고 있으며, 그리고 운명은 사형수의 제비를 나에게 쥐여 주려고 한다는 것,―그것이 전부입니다.” --- p.109
행복이란 어쩌면 너무 단순한 것이어서, 그것에 대해서라면 아무것도 쓸 수 없을 거라고, 나는 적었다, 그 당시 내가 적어 두었던 쪽지에서 내가 지금 막 읽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것을 보며 다시 옮겨 적고 있는 것처럼, 행복하게 보낸 삶은, 그에 따르면, 무감각하게 보낸 삶이다, 라고 나는 적었다. 삶을 글로 쓰는 일은 삶을 물음에 던지는 일임은 명백하다, (…) --- p.120
나는 학살자들, 삶을 훼손한 자들이 큰 소리로 스스로를 생명의 길로 선언하는 것을 질리도록 봐 왔다, 그런 일들은 지나치게 자주 반복되어 내 안에서 반항심을 다시 불러일으키지도 못할 지경이라고, 내가 말했다, 삶을 훼손하는 자들 때문에 삶을 혐오하게 되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다, 그보다 더 처참한 일도 없다고, 아우슈비츠에서도 아이들은 태어났다고, 내가 말했다, (…) --- p.127
“안 돼!” 절대로 나는 다른 한 인간의 아버지, 운명, 신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안 돼!” 어린 시절 내가 겪었던 일을 또 다른 한 아이가 겪게 해서는 안 된다,
“안 돼!” 내 안에서 무엇인가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이 어린 시절을 그에게―너에게―나에게 겪게 해서는 안 된다, (…) --- p.129~130
내 마음은 저 계단을 쌓은 돌더미처럼 무겁기만 하다. 마침내 모든 것이 가라앉고, 다시 떠오르고, 사방으로 흩어진다, 마치 하나의 비참한 비밀처럼. 무엇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치욕을 직면한 채 살아야 하는 것일까? --- p.135
지난 몇 년 사이
나는 내 일의 본질도 깨달았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어떤 삽질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나를 위해 구름 속에, 바람 속에, 허공에 파기 시작했던 저 무덤을 계속 파는 일, 끝까지 파야 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 p.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