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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전하는 바람의 말

시인수첩 시인선-077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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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0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156쪽 | 212g | 124*198*10mm
ISBN13 9791192651163
ISBN10 1192651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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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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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골드와 촛불을 강에 띄워도
거품으로 얼룩진 소원들
능사의 옷을 닮은 차가운 웃음이다

비눗물 속에 잠긴 막대풍선 같은 종아리
힘껏 내리치는 빨래들의 비명은
저지대의 벽이 물러나 부서지는 소리

살아 있을 뿐 계층이 없는
가보처럼 물려받은 천직
아비는 태생 전부터
바닥에서도 더 낮게 기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허물을 벗어도 여전히 밑바닥

바닥과 근친인 너는
빙하를 거쳐 와 냉혈이다
쉿 소리를 내며
심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얼음나라다

감기지 않는 동그란 눈과 사라진 청각
미립자를 찾는 혀는 몸속 가장 높은 카스트
배로 밀며 가며
낮은 곳만 파고드는 유전자

세상에 모든 꽃은 흙에서 핀다
---「뱀꽃도 흙에서 핀다」중에서

고의였을까 실수였을까
시멘트 바닥에 찍힌 발자국 도장
누군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사라진 흔적 같다

길이 늪이었음을 알고
모든 것을 밀어 넣었다가 끄집어냈을
물러선 발자국

미장공이 발라놓은 단 하루의 매끈한 관용,
실수를 받아주는 곳은 물렁하다

한 번 뛰어오른 다음
같은 모양으로 내려앉지 못하는 것은
흔적들이 어딘가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남겨진 것은
낡은 신발만 가득한 세상,
제 것이 아닌 것 같아 늘 새롭게 찍고 싶은
엘리시움으로 떠난 발자국이다

구름 속을 밟고 싶었던
발을 두고 어디로 갔을까

판화처럼 찍힌 두 개의 늪에
어제 놓인 두 시의 하늘이 고여 있다
---「늪」중에서

침묵 속에는 더 많은 소리가 들어 있다

침묵을 모르는 너는
너무 많은 이름을 가졌어
생성과 소멸의 큰 눈으로 방황을 하지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푸른 춤사위를 만드는 조련사다

너의 길은 늘 특별한 순간들
직진의 습성이 휘돌아 오면
들판은 굽이치는 바다가 된다

초식의 생이란
흔들리고 휘어지고 뿌리가 뽑혀도
무수한 팔을 뻗어
부러지지 않는 세상을 기원하는 것이 전부다

고요는 고요한대로
별들은 내려와 수런수런
안으로 자란 흉터를 끌어안고
못다 쓴 일기를 쓴다

너의 길을 따라가다 울퉁불퉁해진 글씨체
옹이진 매듭을 풀어 가면
마디마다 움트는 꽃순들 웃는 소리
폭풍 소리로 쓸려간 곡절이 노래가 된다
---「나무가 전하는 바람의 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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