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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함을 찾아서
왕은철
풍월당 2023.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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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저자의 말

1부 따뜻함으로 응답하다

“식기 전에 당근 먹어라”
계모의 축복
노란 고무신
For 엄마
아이의 돌멩이
인형을 진찰하며
눈물의 원리
부모 면접
불가사리 하나만이라도
착한 발
돌아가도 된다
남들도 우리처럼 사랑할까
슬픈 야광볼
미안하다, 딸아
아버지의 소라 껍데기
어머니와 고양이
엄마에게 쓰는 편지
“어머니가 아파요”
마누라보다 아끼는 논
C33
45점을 준 선생님
살아 있는 순교
사랑의 응원단장
숨어서 통곡하는 충무공
우리들의 할머니
아버지의 눈
타자의 눈물
철학자의 어머니
하갈의 눈물
아빠의 낙하산
“그냥 우세요”
불편한 쌀밥
간지러운 말
어머니의 그림

2부 타자에 대한 연민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세상에서 가장 큰 눈물방울
무반주 음악처럼
강아지의 슬픈 눈
깨진 도자기의 은유
고래의 산후조리
코끼리의 애도
20세기에 부치는 노래
“엄마가 부끄럽지 않아요”
편지 대필
도스토옙스키의 양파
미안함의 기록
치유의 거부
곤장을 버리다
신의 눈물을 닦아주다
10실링이 남긴 상처
천 개의 태양
노비가 된 여인들
아이의 나무 도장
아버지의 품격
호스 보이
사진의 윤리
눈물의 문
김시습의 눈
밥 한 그릇
로벤 섬의 굴욕과 용서
조선의 슬픈 과부
국가에도 마음이 있어야
달에 그려진 토끼
제니의 다락방
약사가 된 이유
스스로 빛이 되는 용기
빌러비드의 유령
슬픈 귀납법
실천적 연민

3부 예술은 어떻게 우리를 치유하는가

구름으로 빚은 빵
므시외, 치유의 씨앗
고흐의 사마리아인
차이콥스키의 우크라이나
거미 가족
고흐의 눈
카텔란의 마법
음악과 복수
레이디 가가의 문신
늘 웃는 남자
얼음송곳
베토벤의 연금술
당나귀를 기억하라
타인은 지옥이 아니다
불편함의 미학
어떤 의사의 요구
눈물총
U2를 기다리며
중국 사과가 된 홍시
낮춤의 건축미학
프리다의 생명 예찬
나비 부인과 나비 씨
가짜의 과잉
수세미의 교훈
문화의사 이중섭
조용필의 “생명이여”
사진 속의 상처
소우주
소년이 목격한 죽음
“네, 알겠습니다”
고전의 상처
피리 부는 사나이
스토리 전쟁
U2의 위로

4부 삶의 모순 속에도 고귀함은 존재한다

솔거의 그림에 답이 있다
화가 난다
햇빛을 즐길 권리
고양이가 된 쥐
신화가 필요한 이유
사과나무의 상처
원칙주의자와 진보주의자
광신자의 치유
십자가 없는 십자가상
로봇의 위로
사진의 관음증
미켈란젤로처럼
뒤늦은 연민
모순에 갇힌 타자의 철학자
베토벤을 더 자주 들었다면
용서는 문화다
아버지의 눈물
나무꾼과 사슴
양치기의 기도
고마움의 방향
로봇의 사랑
남민
한국어의 상처
슬픈 초콜릿
슬픔의 산
지하실의 아이
고통의 소유권
애록의 버려진 아이들
어머니의 슬픈 기도
그래도 고맙습니다
토끼 오줌
전쟁의 품위
하나의 세계가 줄어들다
매미의 마지막처럼

저자 소개1

전북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 클래리언대학교와 메릴랜드대학교에서 각각 영문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H. B. 이어하트재단, 케이프타운대학학술재단, 풀브라이트재단의 펠로 및 한국학술진흥재단의 해외파견 교수를 역임했으며, 케이프타운대학과 워싱턴대학에서 객원교수로 있었다. 유영번역상, 전숙희문학상, 한국영어영문학회 학술상, 생명의신비상, 전북대학교 학술상, 전북대학교 수업상을 수상했다.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문학평론가이고, 현재 전북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철의 시대』, 『피의 꽃잎』, 『연을 쫓는 아이』, 『페테르부르크의 대가』, 『마이클 K』
전북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 클래리언대학교와 메릴랜드대학교에서 각각 영문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H. B. 이어하트재단, 케이프타운대학학술재단, 풀브라이트재단의 펠로 및 한국학술진흥재단의 해외파견 교수를 역임했으며, 케이프타운대학과 워싱턴대학에서 객원교수로 있었다. 유영번역상, 전숙희문학상, 한국영어영문학회 학술상, 생명의신비상, 전북대학교 학술상, 전북대학교 수업상을 수상했다.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문학평론가이고, 현재 전북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철의 시대』, 『피의 꽃잎』, 『연을 쫓는 아이』, 『페테르부르크의 대가』, 『마이클 K』, 『전쟁 쓰레기』, 『다른 방에는 다른 놀라움이』 등의 책을 우리 말로 옮겼고, 『J. M. 쿳시의 대화적 소설』(문화관광부우수도서), 『문학의 거장들』(한국연구재단 우수도서), 『애도예찬』(전숙희문학상), 『타자의 정치학과 문학』(한국영어영문학회 학술상, 세종도서), 『트라우마와 문학, 그 침묵의 소리들』(생명의신비상, 세종도서)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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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0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394g | 128*195*20mm
ISBN13
9791189346454

책 속으로

“어째서 우리 어머니들은 우리가 저지른 말썽들을 만회할 수 있는 상을 타서 집으로 달려가기 전에 아흔아홉 살이 되어 무덤에 있어야 하는 걸까요?” 하객들은 이 말에 밴 그리움에 목이 메었다. 쿳시가 전하는 바람과 나무의 탄식, 풍수지탄. 그의 어머니는 18년 전에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 p.16

“사는 일이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돌아보고 뒤가 더 좋았으믄 거기로 돌아가도 되는 일이제.” 세상은 아픈 과거를 훌훌 털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주문하지만, 그는 꼭 그럴 필요는 없다며 과거가 더 좋았으면 그 기억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다만 불행한 순간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서 벗어나라고 한다. 집착하게 되면 너도 힘들고 죽은 아이도 “갈 길을 못 가고 헤맬 것”이다. “붙들고 있지 말어라. 어디에도 고이지 않게 흘러가게 둬라.”
--- p.36

“나는 죽음이 삶보다 현명한 일인데도 살아 있고 너는 삶이 죽음보다 현명한 일인데도 죽었구나.” 기막혀도 너무 기막힌 운명이었다. 아홉 명의 자식 중 다섯이 죽고 이제는 막내까지 죽다니, 자신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러는가 싶었다. 그의 고통스러운 마음과 아들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밴 「농아광지」는 자식을 잃은 아비의 고통과 상처를 지금도 생생하게 전한다. 다산에게 고통과 상처의 유일한 출구는 글이었다.
--- p.44

학교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위해 한 마리를 내쳤지만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쫓겨나 연극의 길로 들어선 제자가 공연을 할 때나 제자의 희곡이 공연될 때마다 극장을 찾았다. 폐암 수술을 받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할 때도 공연을 보러 와서 제자를 축복했다. 격려 엽서도 잊지 않았다. “미리의 목소리로, 미리의 노래를 평생 쉬지 않고 부르도록 하세요. 그 노래에 공감하는 사람, 그 노래로 용기를 얻은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그는 선생님의 사랑과 응원을 받으며 유명 작가가 되었다.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고 영어로 번역된 소설 『우에노역 공원 출구』로 2020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재일교포 유미리 작가가 그 학생이었다.
--- p.56

“당신한테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닙니다. 위로받으려 하지 말고 그냥 우세요.” 다만 눈물이 나올 때마다 아들이 하느님의 천사가 되어 천국에서 어머니의 우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그 눈물에 기뻐하고 있으며 그 눈물을 하느님께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굳이 상처를 덮으려고도, 나으려고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울음은 “상처를 열려고 하는 끊임없는 욕망에서 나오는 것”이니 울음이 나오면 울면 되고, 그 울음이 결국에는 하늘에 있는 아들에게 닿고 자비로운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된다는 거다.
--- p.75~76

그는 성인이 되어서도 슬픔과 고통으로 일렁이던 강아지의 눈빛을 잊지 못했다. 그것은 평생 아물지 않은 상처였다. 그가 고통을 주제로 한 『동정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마지막 장을 동물의 고통에 할애한 것은 그 상처에서 비롯했다. (…) 동물을 포함한 타자의 고통에 대한 관심은 이렇듯 강아지의 눈에서 시작되었다. 그 눈에 담긴 슬픔과 고통이 그를 깊고 따뜻한 사유로 이끌었다.
--- p.90

그녀가 보내는 연민의 눈길을 대하는 순간, 알로샤는 모두가 “더러운 여자”라고 생각하는 그녀에게서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보물 같은 영혼”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안쓰러운 눈길과 몇 마디 말을 붙들고 그들이 빠져 있던 극단적인 자학과 불신, 절망의 늪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렇다. 타자를 향한 아린 마음이 발휘하는 놀라운 힘. 이것이 도스토옙스키가 양파의 우화를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였다. 아니, 어쩌면 그의 소설들을 관통하는 메시지인지 모른다.
--- p.104~105

“나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돈을 받고 있었습니다. 두 생명이 파괴되었고 나는 그 대가로 돈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어했을까. 남베트남의 패망 직후 베트남을 탈출해 바다 위를 떠도는 난민들(‘보트 피플’)을 찍은 사진들로 기억되고 싶었다. 그 사진들로 미국 의회와 정부를 움직여 미국이 20만 명 이상의 베트남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데 공헌한 것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 p.127

시인은 밥 한 그릇에 외로움과 시장기를 해소하는 화자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러한 환대와 그것에 대한 기억이 얼마나 큰 위로와 삶의 버팀목이 될 수 있는지 뭉클하게 이야기한다. 화자가 느끼는 외로움과 시장기는 은유적인 의미에서 보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충족될 수 있는 내면의 갈증이다. 우리는 늘 그렇게 외롭고 배고픈 존재이고, 그래서 누군가의 환대를 필요로 하는 손님인지 모른다.
--- p.133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국가를 구한 것은 그러한 인간적인 몸짓이었다. 결국 필록테테스는 트로이로 가서 치료를 받고 그리스군을 승리로 이끌었다. 소포클레스가 여든세 살에 쓴 『필록테테스』에서 강조한 것은 개인만이 아니라 국가에도 따뜻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개개인의 아픈 상처를 보듬는 마음 말이다.
--- p.140

죄가 없는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들어 돌을 던지는 일은 지금도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그 야만성과 폭력성을 자각하지 못할 뿐이다. 일종의 얼어붙은 바다가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은 카프카의 말처럼 “우리 안에 있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얼음송곳”이어야 하는지 모른다. 구멍이 뚫리고 균열이 나야 우리 안의 모순이나 야만성이 보일 테니까. 그래야 잘못된 히스테리도 돌아보고 반성하게 되니까.
--- p.179

박 사장 집에 기생하는 서민들이 기생충으로 은유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영화가 보여주는 극심한 빈부 격차의 문제를 거시적으로 생각하면 꼭 그렇게 볼 것도 아니다. 엄밀히 말해 자본주의 체제에서 누가 누구에게 기생하는가. 실제로는 가난한 사람들이 숙주이고, 부자들이 그들에 기생해 부를 일구는 거라면 어쩔 것인가. (…) 그는 자신의 불편한 영화가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경제적·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사유와 성찰로 이어지기를 바랐던 것으로 보인다. 불편함은 그의 미학이자 정치학이었던 셈이다.
--- p.186~187

그가 이 그림을 그린 것은 1954년, 즉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가난 때문에 3년 전 일본으로 건너간 탓에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주거도 불안정한 상태였다. 현실은 그림이 보여주는 평온함과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그러나 현실이 아무리 가혹하고 불행해도, 그것이 그림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화가는 현실에 지배당하지 않았다. 니체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그가 가진 “힘의 의지”가 본질적으로 긍정적이면서 “건강”했기 때문이다. 그는 억압된 욕망을 분출하지도, 가혹한 세상을 그리지도, 암담한 세상을 재현하지도 않았다
--- p.208

삶에 대한 낙관이 부재하는 시대를 살고 있어서인지, 사람들은 방탄소년단의 따뜻하면서도 세련된 노래에 실려 있는 삶에 대한 낙관적인 몸짓에 열광한다. 생명을 소모품 정도로 여기는 시대를 살고 있어서인지, 사람들은 인간이 별빛이며 작은 우주라는 사실을 환기하는 그들의 노래에서 절망을 떨쳐낼 힘을 얻는다. 위로와 환대라는 예술 본연의 기능에 이보다 더 충실하기도 힘들다.
--- p.215

화면 속 어머니들을 바라보며 노래하던 그가 이번에는 관객을 향해 돌아서서 노래를 이어갔다. 그러면서 〈실종자들의 어머니들〉은 남아메리카 어머니들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들딸을 비극적으로 잃은 세상 모든 어머니들을 위한 노래가 되었다. 이제 그것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의 노래였다. 그는 어느새 우리를 위로하고 있었다.
--- p.227

아버지 쥐의 인종주의적 발언은 과거의 쓰라린 상처로부터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탓이다.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자신들이 나치에 당한 것과 같은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도 그래서이다. 하기야 이것이 어찌 그들만의 모순이랴. 역사를 돌아보면, 쥐였던 자가 고양이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우리도 언젠가 남에게 그랬을지 모른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쥐』의 작가처럼 아버지의 것이라 하더라도 그 모순을 고백하고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 p.238

나무는 소년이 어렸을 때는 사과와 그늘을 내어주고, 성인이 되었을 때는 가지와 몸통을 내어주고, 노인이 되었을 때는 그루터기까지 내어준다. 그야말로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이다. 그런데 소년과 나무의 관계에서 소년만이 중요한 걸까. 자신을 내어주는 과정에서 나무가 받는 상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가지가 잘리고 몸통이 잘리는 나무의 아픔은 어찌해야 하는가.
--- p.243

레비나스는 질문자와 생각이 다르다며 유대인 편을 들었다. 그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이웃을 공격하고 부당한 취급을 하는” “잘못된 사람들”이라고 했다. 세상의 타자들을 위로하는 ‘타자의 철학’을 설파한 철학자라면, 자신이 아무리 유대인이라 해도 자민족 중심주의에 빠져 타자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너무 큰 모순이었다. 그의 철학이 주는 위로의 몸짓마저 잠시나마 허위로 느껴지게 만드는 모순이었다.
--- p.261~262

소설은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에 관한 이야기지만, 같은 반 아이들로부터 난민 취급을 당하는 아이에 관한 일화 는 문제의 핵심을 파고든다. 그 아이를 섬에 갇힌 난민으로 만드는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그런 식으로 세상을 보는 어른들이다. 소설은 남일동과 중앙동 사이의 거리, 가까우면 서도 아득한 그 거리 때문에 발생하는 불안감과 상처를 고통스럽게 응시한다. 아이들마저도 가학적으로 만드는 심리적 거리에 대한 알레고리적 성찰이라고나 할까.
--- p.278

아무리 끔찍한 짓을 저질렀어도 아들은 여전히 아들이었다. 그녀는 그 일이 일어났 을 때 아들이 스스로 죽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것이 두고두고 후회스러웠다. 또한 어머니로서 자식의 “머릿속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던 것에 대해서,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 용서를 빌고 싶었다. 그녀가 자살예방 운동에 거의 강박적으로 매달리게 된 것은 그래서다.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어떻게든 도와 살리고 싶었다. 크게 보면 모두가 내 자식이니까.

--- p.292

출판사 리뷰

상처와 아픔을 따뜻하게 보듬는
지혜와 연민의 이야기들!


1부 ‘따뜻함으로 응답하다’에는 따뜻함으로 상처를 감싸안아 삶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이야기, 2부 ‘타자에 대한 연민이 세상을 변화시킨다’에는 타자를 향한 따뜻한 연민으로 세상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드는 이야기, 3부 ‘예술은 어떻게 우리를 치유하는가’에는 상처를 치유해 한 차원 더 높게 승화시키는 예술의 힘에 관한 이야기, 4부 ‘삶의 모순 속에도 고귀함은 존재한다’에는 모순투성이의 세상에도 고귀한 진실은 존재함을 알려주는 이야기들이 각각 34편씩 담겨 있다.

저자는 역사·신화·철학·문학·음악·미술·사진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통찰을 바탕으로 식민주의·인종주의·팔레스타인 문제 등 인류의 역사에 깃든 상처, 그리스 신화나 『심청전』 같은 전래 설화에 표현된 상처, 자크 데리다·에마뉘엘 레비나스 등 철학자들의 삶의 자취에 엿보이는 상처, 도스토옙스키·다산 정약용·오스카 와일드·릴케·존 쿳시·오에 겐자부로·신경숙·윤이형·정지아·조해진·최진영·함민복 등 문학가들의 글에 담긴 상처와 위로, 베토벤·차이콥스키·윤이상·U2·레이디 가가·조용필·방탄소년단 등 음악가들의 작품이 건네는 영감과 치유, 솔거·고흐·프리다 칼로·이중섭·노먼 록웰 등 화가들의 그림이 전하는 감동과 위로, 도널드 R. 윈슬로·데이비드 골드블랫·로버트 카파 등 사진가들의 작품에 드러난 상처를 따뜻하면서도 깊이 있는 시선으로 설파한다.

“우리는 늘 외롭고 배고픈 존재이고,
그래서 누군가의 환대를 필요로 하는 손님인지 모른다.”


불교에서는 삶이 고해(苦海)라고 말한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이 태어나는 것 자체를 트라우마로 보았다. 삶은 곧 고통이고, 탄생의 순간은 상처의 고통을 마주하는 트라우마적 사건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늘 힘들고 외로운 존재이며 누군가의 위로와 환대를 간절히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타자를 향한 따뜻한 연민의 마음으로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어야 하며, 나아가 인류 역사에 이어져 내려온 갈등과 다툼을 멈추고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삶은 상처로 시작되어 상처와 더불어 살다가 결국 죽음이라는 큰 상처로 끝난다. 삶이 곧 상처고 상처가 곧 삶인 셈이다. 상처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삶에서 중요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인지 모른다.

언제부턴가 ‘치유’라는 말과 ‘힐링’이라는 외래어가 남용되고 오용되면서 그것이 전제로 하는 상처의 고통과 치유의 절박함 및 어려움이 퇴색하긴 했지만, 이것만큼 중요한 개념도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사랑보다는 미움이, 용서보다는 복수가, 공감보다는 무관심이나 냉소가 기승을 부리는 시대이기에 더욱 그렇다. 나는 치유라는 말이 함의하는 고통과 절박함과 실존성을 어떻게든 내 글에서 되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다양한 스토리들에 깃든 상처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더하려 했다. 또한 상처를 보듬고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드는 따뜻한 소리와 이미지와 지혜를 어떻게든 캐내려고 노력했다.
―「저자의 말」에서

“당신한테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닙니다.
위로받으려 하지 말고 그냥 우세요.”


저자는 우리가 “치유에 대해 생각할 때 흔히 간과하는 점이 하나 있다”고 말한다. “치유에 관한 지나친 강박이나 기대가 치유를 방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카라마조프가(家)의 형제들』에 새겨진 도스토옙스키의 상처와 고통을 소개한다. 막내아들 알료샤를 간질로 잃은 도스토옙스키는 이 소설에 아들을 잃고 비통해하는 어머니를 등장시킨다. 소설 속에서 조시마 장로는 자신을 찾아온 아이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한테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닙니다. 위로받으려 하지 말고 그냥 우세요.” 눈물이 나올 때마다 아들이 천사가 되어 천국에서 어머니의 우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그 눈물을 하느님께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상처를 덮으려고도, 나으려고도 애쓰지 말라는 것이다. 울음이 나오면 울면 되고, 그 울음이 결국에는 하늘에 있는 아들에게 닿고 자비로운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된다는 거다. (「“그냥 우세요”」)

신경숙의 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소설 속 화자는 교통사고로 딸을 잃고 형언할 수 없는 절망 속에 빠져 있다. 화자의 아버지는 딸을 생각하는 마음에 말을 삼갔지만, 자신 역시 병들고 쇠약해지자 마침내 딸에게 말한다. “사는 일이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돌아보고 뒤가 더 좋았으믄 거기로 돌아가도 되는 일이제.” 세상은 아픈 과거를 훌훌 털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주문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과거가 더 좋았으면 그 기억으로 돌아가도 된다고.(「돌아가도 된다」)

저자는 말한다. “치유는 자연스럽게 다가오니 강제하지 말라”고, “따뜻함과 인내심이 답”이라고, “어쩌면 완전한 치유란 이상에 불과하니, 상처를 다독이며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최선일지 모른다”고.

인간은 빛나는 별이며 작은 우주,
위로와 환대는 예술 본연의 기능


예술에는 고통을 어루만지고 상처를 치유하는 놀라운 효과가 있다. 이러한 너그러움을 비추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저자는 신경의학자 올리버 색스가 어머니를 잃은 뒤 거리에서 슈베르트의 음악을 듣고 경험한 일을 소개하며 예술이 이러한 효과를 발휘하려면 자연스럽게 다가와야 한다고 말한다. “축복이나 은총처럼, 거리에서 우연히 들은 음악처럼.”

예술은 상상의 힘으로 세상을 따뜻하고 순수하게 만들기도 하고(「구름으로 빚은 빵」), 함민복 시인의 시 「반성」(“늘/강아지 만지고/손을 씻었다/내일부터는 손을 씻고/강아지를 만져야지.”)처럼 이 세상의 낮고 힘없는 존재, 즉 타자를 향한 미안함과 연민의 기록이며(「미안함의 기록」), 베토벤이 고통 속에서 현악 4중주 15번을 작곡했듯이 고통을 원천으로 삼기도 한다(「베토벤의 연금술」). 좌절감이 권위에 대한 도전의 몸짓을 통해 예술로 표출되기도 하고(「눈물총」), 차페크의 희곡 「하얀 역병」처럼 공동체의 윤리를 시험대 위에 올리기도 한다(「어떤 의사의 요구」).

또한 얼핏 예술은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것 같지만 때로는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 부인》처럼 편견을 숨기고 있기도 한데「나비 부인과 나비 씨」), 그런 왜곡된 시각과 모순을 바로잡는 일도 결국 예술 자신의 몫이다.

삶에는 모순과 아이러니가 가득하지만
그 안에도 진실은 존재한다


사실 우리네 삶은 모순투성이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수난을 당한 유대인들이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민족을 수난으로 몰아넣는 모순과 위선을 싫어한 자크 데리다에 대해 이야기하고(「치유의 거부」), 아트 슈피겔만의 그래픽소설 『쥐』를 소개하며 역사 속에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일이 많음을 지적한다(「고양이가 된 쥐」).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조차 “말과 행동이 어긋나는 모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1982년, 그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레바논의 난민촌에서 학살당한 사건과 관련해 프랑스의 한 라디오 방송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이웃을 공격하고 부당한 취급을 하는 잘못된 사람들”이라고 말해 유대인 편을 듦으로써, 타자들을 위로하는 ‘타자의 철학’을 설파한 철학자라는 자신의 명성을 무색하게 하는 커다란 모순을 드러냈다.(「모순에 갇힌 타자의 철학자」)

상처를 어루만지고 위로하는 것이 본연의 기능인 예술마저도 모순과 편견을 드러낼 때가 있다.(「나비 부인과 나비 씨」, 「사과나무의 상처」) 저자는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쥐』의 작가처럼 그 모순을 고백하고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신경의학자 올리버 색스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누구보다 사랑했던 어머니로부터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어머니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슬픔을 느꼈듯이, 그리고 그 자신이 세상에 이별을 고할 때는 환자들, 친구들, 독자들, 그리고 어머니에게 오로지 고마움의 감정만을 느꼈듯이(「그래도 고맙습니다」), 상처를 보듬고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결국 이러한 따뜻함일 것이다.

그러니 ‘따뜻함을 찾아서’ 상처를 다독이며 더불어 살아가자, 상처받은 현대인에게 이 책이 전하는 깊이 있고 온기 가득한 위로의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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