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제도를 만드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처음부터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기준을 세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소상공인들로서도 정부의 보상 정책이 만족스러울 리가 없었다. 소상공인연합회를 비롯한 관련 단체의 의견을 다 듣는 것도 힘들었고, 일정 규모 이상 식당이나 유흥업소와 같은 곳은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발하기도 했다.
주머니를 되도록 풀지 않으려는 기재부 때문에 재난지원금을 포함한 손실보상금을 마련할 때도 애를 먹었다. 그나마 4차 재난지원금을 포함한 추경안이 국회에서 통과돼서 2021년 3월 내가 장관이 된지 50일 정도 됐을 즈음에 15조 원이 확보됐다. 그중에서 7조 2천억 원이 중기부로 배정됐다. 전임 장관 시절 지급됐던 3차 때와 비교하면 2조 6천억 원가량이 늘어났다. 앞서 말했듯이 이전보다 사각지대를 많이 줄이도록 설계해서 금액이 대폭 증가했다. 예컨대 상시근로자가 5명이 넘는 곳은 제외됐다가 추가로 포함됐고, 일반업종의 매출한도도 4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대폭 확대하는 등 여러 기준을 완화해 지원했다. 당시 대상자가 385만 명이었는데 피해 규모에 따라 100만 원에서 최대 50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도록 했다.
--- p.42, 「팬데믹이 심화시킨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라」 중에서
어떻게 해야 취임 초부터 밝힌 제2벤처붐을 이어가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나는 K-벤처가 살아야 우리 경제가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우리는 기존 관행을 혁신하는 방식으로 국내 경제의 위기를 극복한 성공의 경험이 있다. 바로 1997년에 발생한 외환위기를 극복한 과정이다. 이때의 성공 키워드도 바로 ‘벤처’였다.
벤처 창업붐 조성을 위한 정책은 디지털·비대면·그린경제 등 선도형 경제 창업을 활성화하는 방식으로 이뤄졌고 혁신을 통해서 최종적으로 유니콘을 탄생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디지털·비대면 분야에서 혁신 벤처·스타트업의 창업 촉진과 성장을 가속하기 위해 K-비대면 혁신 스타트업 1,000개 발굴을 추진하는 한편, 스타트업이 아기유니콘, 예비유니콘을 거쳐 유니콘으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K-유니콘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공단을 조성해도 입주기업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듯이 규제를 풀어도 새로운 산업 분야를 이끄는 기업들이 없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기유니콘, 예비유니콘을 위한 정책을 체계화하기 위해서 노력했고, 성과도 거둘 수 있었다.
--- p.93~94, 「우리 경제의 심장 벤처 스타트업을 유니콘기업으로 만들자」 중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과 공존에서 칼자루를 쥔 쪽은 대부분 대기업이다. 앞서 말한 분쟁 사례를 보더라도 갈등이 발생하면 중소기업으로서는 보상은커녕 눈 뜨고 코 베이듯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가령 예전에는 중소기업이 기술 침해를 당해도 그 피해 입증을 침해받은 쪽이 전부 다 해야 했다. 원래 손해배상을 입증할 때는 손해를 겪은 쪽이 입증하는 것이 맞기는 하다. 하지만 기술자료에 의한 기술 침해는 손해를 겪은 쪽에서 스스로 입증할 방법이 실무적으로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법을 바꿔 침해를 안 했다면 대기업이 구체적으로 해명하도록 하는 행위태양 제시의무를 도입하고, 또 기술과 관련해 서로가 공개하지 않는 비밀유지협약서를 반드시 쓰도록 하는 제도도 도입했다. 이런 제도를 도입했지만, 결국 분쟁이 장기화하면 중소기업은 도산하거나 치명타를 입고 회사가 경영난에 빠지게 된다. 만약 현대중공업의 상생을 위한 의지와 결단이 없었다면 아마 삼영기계도 기나긴 법정투쟁의 블랙홀에서 헤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제도뿐만 아니라 자상한 기업이라는 문화가 한몫을 한 것이다. 합의는 물론 양쪽 회사 모두의 대승적 결단이다. 두 회사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내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조정에 노력해 준 직원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남긴다.
--- p.129, 「분쟁 해결을 넘어 상생의 프로세스로 발전하다」 중에서
지금도 일본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고전을 겪는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에 한미일 삼각동맹과 중국이라는 과도한 대결 구도를 고집하면서 더욱 위태로운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는 일본의 반도체 소재 분야 수출 제재, 중국의 산업구조 변화 등에 대응할 수 있는 국가적 전략이 필요했고, 그것이 ‘기술 독립’, 특히 ‘소부장’에 대한 기술 독립이었다. 이처럼 국가의 현재와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정부의 존재 이유다. 그런데 소부장의 기반을 갖추게 하는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이 정부는 도대체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우려스럽다.
경제와 관련한 외교 문제도 심각하다. 지금 국제적으로 공급망 자체가 불안해진 이유는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 때문이다. 예컨대 반도체를 둘러싼 패권 경쟁만 해도 민간기업과 시장만의 문제로 볼 수 없다. 21세기 패권 전쟁의 핵심은 이제 석유보다 반도체라는 말이 있다.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에 성공하려면 반도체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반도체 패권 다툼에서 미국은 일본과 대만을, 중국은 자립을 이야기한다. 한국은 그 틈바구니에 끼어 있다.
--- p.157~158, 「동북아의 균형자 역할을 할 경제적·정치적 역량이 필요하다」 중에서
유해화학물질인 불산이 유출되고 사망사고까지 일어나자 화성시는 그야말로 난리였다. 구미 불산 사고, 심지어 사망자가 2만 명 이상 추정되는 1984년 인도 보팔시 대참사까지 소환됐다. 그때 나는 경기도의회에서 구성한 민관합동조사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참여했다. (중략) 반도체 회사는 겉으로 보면 깔끔하고 조용하며, 내부를 봐도 모든 것이 자동화되어 있어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반도체를 만드는 과정은 실제로 많은 화학 공정을 거처야 하고, 수많은 화학물질이 사용된다. 이런 사실을 주민들에게 알리고 회사에도 안전관리의 의무를 부여해야 옳다고 판단했다. 외국에서는 이런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린다는 것, 징벌적 손해배상도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래서 사건의 전반을 조사하고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유해화학물질관리조례를 제정했다.
이 과정에서 경기도의회 직원들의 많은 연구와 도움이 있었고, 경제 바꾸는 정치 나 또한 의원으로서 현안이 생길 때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할지 많이 배우는 계기가 됐다. 그저 항의하고 규탄하는 것을 넘어 대안을 제시하는 정치를 경험한 것이다. 그리고 이 조례는 이듬해 한국지방자치학회에서 우수조례 개인 부문 대상으로 선정되면서 나는 수상의 영광도 누렸다.
--- p.223~224,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정치를 배우다' 중에서
참사를 방관하고 잘못을 덮으려는 지금의 정부와 대통령을 보니 노무현 대통령이 떠올랐다. 참여정부 때 농민시위가 있었는데, 농민 한 분이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때 경찰청장은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대통령은 직접 대국민 사과를 공개적으로 했다. (중략) 당시 농민시위는 매우 격화되어 폭력 사태까지 발생했다. 경찰로서도 할 말이 많은 사정이 있었다. 그러나 한 국민이 생명을 잃은 것에 대해 그 어떤 원칙과 법의 기준에 앞서 사과와 애도와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의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줬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의 수장으로 단 한 명이라도 아까운 목숨을 잃은 국민을 애도하고 고개를 숙였다. 대통령이란 자리가 어떤 자리고 정치가 할 일이 무엇인지 잘 보여 준 사례라고 생각한다.
윤석열 정부는 이태원 참사에 대해 깊이 반성해야 한다. 참사가 발생한 원인부터 그 이후에 벌어진 많은 과정까지 이 정권은 책임감, 인간에 대한 이해와 공감력 등이 부재함을 만천하에 보여줬다. 2023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계기로 정부와 여당이 ‘생생지락’의 가르침을 새겼으면 좋겠다. 아니, 나를 포함한 모든 정치인과 공무원이 같이 새겼으면 좋겠다.
--- p.265~266, 「시비지심과 생생지락으로 정치하다」 중에서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책임의 문제가 발생한다. 집행권이나 집행 방법에 대한 구체적이고 합법적 수단 없이 그냥 주장만 하고 만다면 그런 개인이나 단체에 무슨 책임을 물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정당은 선거라는 합법적 과정을 통해 책임을 지는 과정을 거듭한다. 흔해 빠진 말이고 싱겁게 느껴지지만, 결국 답은 국민을 바라보는 정치다. 이념의 잣대나 진영논리에 갇히지 않으려면 국민을 바라봐야 한다. 바라본다는 것은 두려워한다는 의미가 상당하다.
맹자 말씀에도 “군주는 배, 백성은 물君舟民水”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바로 옆에서 한순간에 정당이 망해 나가는 모습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니다. 정치인도, 심지어 정권도 예외가 아니었다. (중략) 현실을 헤쳐가야 하는 정당이라면 결국 조화를 중요시해야 하지 않을까? 이 복잡한 세상사 이슈들과 이해관계들을 일도양단할 수 있는 노선이 있을까? 나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발견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이지만, 이미 현실의 정치는 다른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여론의 대표성을 정확히 인지하면서 시대의 변화상을 놓치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김대중 대통령이 말씀하신 “상인의 현실감각과 선비의 문제의식”이 아닐까?
--- p.287~288,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대의민주주의를 추구해야 한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