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길에 좋은 사람들을 만났구나! 인생이여, 늘 뜻밖의 사람과 일에 맞닥뜨리게 하여,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길로 이끌도다! 이제 한양으로 가는 길 위에서, 길동무를 셋이나 얻었으니, 앞날에는 어떤 일이 기다릴 것인가?’
--- p.52
천자문에 하늘(天)이 검다(玄)고 하였으니 하늘은 검다고만 가르치고 써야 하는가. 가을하늘은 파랗고, 노을 지는 하늘은 붉으며, 뭉게구름에 뒤덮인 하늘은 하얗거늘, 어찌 하늘을 검다고만 가르치고 써야 하는가?’
--- p.106
“자네 이야기 한 자락에 웃고 우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시게! 규방에 갇혀 평생을 바깥출입도 마음대로 못 하는 여인네들이 자네의 낭독을 듣고 얼마나 좋아들 하던가? 자네 나이 아직 스물도 안 되었네. 급하게 생각 말고 지금 이대로 좀더 가보세. 자네 정체는 내 어떻게 해서든 절대 드러나지 않게 해줄 것이니 염려치 말게나.”
--- p.156
‘전하께서는 이번 기회에 똑바로 아셔야 할 것입니다! 왕가의 일이건, 조정의 업무이건, 전하의 옥체 문제이건, 그 어떤 일도 이제 소신과 우리 벽파의 도움이 없이는 하나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말이옵니다.’
--- p.197
지난 8년간 이옥은 귀정이라는 거미줄에 걸린 한 마리의 나비였다. 참으로 긴 애증의 세월이었다! 이제 비로소 자신을 옥죄고 있던 그 거대한 거미줄에서 풀려난 것만 같았다. 통곡소리로 가득한 창덕궁 앞에서 유생 이옥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 p.240
“아이고,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는 동네 어르신들 말씀을 믿었어야 했는데! 이 일을 어쩔 것이여!”
--- p.295
‘왜 저들이 죽어야 했지? 도대체 누가 나를 죽이려 하는 것이지?’
--- p.331
“내 비록 선왕께 충군의 벌을 받은 죄인이었지만, 당신처럼 선왕이 세상을 타락시켰다고 생각하지 않소. 만백성들을 굽어살피셨던 선왕의 애민 정신만은 결단코 의심하지 않소! 오히려 당신들이야말로 백성들의 삶은 돌보지 않고 성인군자 놀음이나 하면서, 권력과 재물 모으는 데만 혈안이 된 자들이 아니오? 노론이니, 벽파니, 시파니, 계속 이름을 바꾸어도 본질은 그저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는 탐관오리일 뿐이오.”
--- pp.390~391
“문무자, 네놈이 우리를 아주 우습게 봤구나! 내가 돈이나 관직을 받고 청부나 하는 그런 천한 자로 보이더냐? 이 나라를 바른길로 가게 하려는 충정을 그리도 몰라주다니, 어찌 그러고도 네가 제대로 된 유생이라 할 수 있겠느냐.
--- p.393
“난 이미 오래전부터 낙향을 준비하고 있었지 않았는가. 자연을 벗삼아 지내면서 지금껏 살면서 배우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많은 글을 써보려 하네. 세상에 내놓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숨이 붙어 있는 한 원 없이 읽고 또 쓰겠네. 언젠가 자네들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도 한번 써보고 싶네그려.”
--- pp.42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