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당장 내일 필요한 물건도 아닌데 ‘최저가이기 때문에, 로켓 배송이 가능하기 때문에, 상품 별점이 높기 때문에’ 배송 플랫폼을 통해 주문을 한다. 누군가가 이 물건을 나르기 위해 1월 1일에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일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제는 마트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물건을 받을 수 있는 데다, 오늘 밤에 주문해도 내일 새벽에 받을 수 있는 놀라운 배송 시스템에 많은 사람이 단순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세상 진짜 좋아졌다고. 나 역시 플랫폼 배송 기사를 취재하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플랫폼 배송 기사와 함께 새벽이슬을 맞으며 물건을 배송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현관문 밖에서 들려오는 ‘툭’ 소리와, 누군가가 보낸 배송인증 사진 한 장, 그리고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나. 그렇게 죄책감의 무게와 강도가 점점 희미해질 즈음 플랫폼 배송 기사, 박진용 씨의 노동 현실을 마주했다.
--- p.13~14,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한다」중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새로운 일거리를 찾던 동희 씨.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육아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지만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그는 습관처럼 일을 찾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이런 고민을 하던 차에 동희 씨는 우연히 가사 노동 서비스를 알게 됐다. 플랫폼 가사 노동 서비스라는 것이 다소 생소했지만, 4시간 단위로 계약이 이뤄진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면 4~5시간 정도의 여유가 생겼는데 그 시간에 돈을 벌 수 있다니! 시간이 허락되기만 한다면 4시간 동안 일하고 그 뒤에 또 다른 집으로 일하러 갈 수도 있었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는 일자리. 동희 씨가 그토록 찾아 헤맨 일자리였다.
--- p.45, 「자유롭게 일하면서 내가 잃은 것」중에서
하지만 다행히도 그는 직장에 다닐 때만큼만 일해도 그때보다 수입이 많다. 정해진 월급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일한 만큼 돈을 받기 때문이다. 개인 사업과 비교해도 플랫폼 노동이 좀 더 안정적이다. 개인 사업을 했을 때에는 돈을 떼이는 일도 종종 있었고, 그것이 큰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플랫폼에서 일하면서는 돈을 떼인 적은 한 번도 없다. 직장을 다니면서는 느끼지 못했던 일하는 즐거움과 프로젝트를 완수했을 때의 성취감, 그리고 다양한 커리어를 착실하게 쌓고 있다는 점은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긍정적인 변화다. 하지만 한 가지 고민이 있다. 아직까지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지금의 현실이 언제까지 영원할 수 있느냐이다. 게다가 대기업 직장인으로서 당연히 누렸던 4대 보험이나 퇴직금, 복리후생은 플랫폼 노동자가 된 후에는 전혀 보장받지 못한다. 그뿐인가. IT 기술의 발달로 플랫폼을 구축, 확장하는 비용도 과거에 비해 저렴해지고 있다. 경쟁은 치열해지고, 단가는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결국 미래를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감을 떨쳐내고자 저축과 투자에 열심히 눈을 돌리게 된다는 철우 씨. 그런데 이게 비단 철우 씨만의 문제일까?
--- p.68~69, 「고소득과 주 90시간 노동 사이에서」중에서
수양 씨는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바로 첫 번째 원데이 클래스 수업을 한 그날 말이다. 재능 공유 플랫폼에서 만난 첫 번째 고객이라는 데에 의미를 두고 최선을 다했다. 한 시간 반으로 예정된 수업은 두 시간이 넘도록 이어졌다. 그날 메이크업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수양 씨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내가 그토록 하고 싶어 했던 일이 이렇게 간단하게 이뤄지다니. 메이크업 수업을 한다는 글을 올린 것뿐인데, 이렇게 쉽게 고객과 연결될 수 있다니. 숍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이유로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포기하려 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한편으로 혼란스럽기도 했다. 대학 졸업장도 없는 데다 유명 숍 출신도 아닌 자신이 이렇게 돈을 벌다니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혼란스러운 감정을 다독인 것은 바로 첫 고객이 남긴 후기였다. 그날 그는 거리에서 펑펑 울며 집으로 돌아왔다.
--- p.88~89, 「고졸 출신의 N잡러」중에서
“시간당 평균 1만 5,000원, 라이더 연봉 1억 가능” 코로나19는 배달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시대를 만들었다. 2020년 언택트 시대로 빠르게 전환하면서 배달 산업은 전년 대비 130% 가까이 성장했고, 연봉이 1억 원인 라이더가 등장했다는 기사도 쏟아졌다. 그러나 정훈 씨는 “라이더들을 모집하기 위한 플랫폼 기업의 홍보일 뿐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한다. 정훈 씨가 배달 대행 앱을 켜서 며칠 전 정산 내역을 보여줬다. 오후 6시부터 밤 10시까지 총 12건을 배달한 그날의 수입은 총 4만 원. 하루 평균 80km를 달려도 시간당 평균 1만 원 넘게 벌기는 힘들다고 한다. 시간당 1만 5,000원을 벌려면 시간당 4건 정도를 배달해야 하는데 신호를 무시하고 보행로를 무단 질주하지 않고서는 어렵다는 것이다.
--- p.122, 「나는 ‘라이더’, 배달 노동자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