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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장으로부터의 명상

어떤 문장으로부터의 명상

b판시선-067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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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1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09쪽 | 166g | 124*194*20mm
ISBN13 9791192986166
ISBN10 1192986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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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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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장으로부터의 명상; 글을 쓰는…… 데는, 누구나 알다시피, 타자기나 여의치 않을 경우 연필 한 자루와 종이 몇 장에 책상과 의자가 있으면 그만이다.*〉

글을 쓰려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알아보는 눈이 있어야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고 가는
말을 알아듣는 귀가 있어야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을 알아채는 감이 있어야 하고,
글을 잘 쓰려면
일속을 눈으로 알아보는 사람들 말고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행동을 알아야 하고
말귀를 귀로 알아듣는 사람들 말고
자신의 귀에 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음성을 알아야 하고
갈등 관계를 감으로 알아채는 사람들 말고
자신의 감에 잡히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고
깊이 생각한 적 있다

사실 그런 능력은 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직업인은 다 가지고 있는 걸 발견한 후엔
거기에 더하여 독서력과 상상력과 표현력을 지니고 있어야 문학가라고
가끔 빤한 주장을 하지만
아무리 명문장을 구사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혼자 쓸 수 있는 시간과
혼자 쓸 수 있는 장소와
혼자 쓸 수 있는 필기구가 없으면
문학가란 있을 수 없다고
늘 엄숙하게 전제한다

* 앨리스 먼로의 단편소설 「작업실」(〈행복한 그림자의 춤〉, 뿔, 2010, 12쪽) 중에서.

〈어떤 문장으로부터의 명상; 감응을 인간의 전유물로 여기는 것은 인간만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예외주의에 다름 아니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유한한 생명들에게 다른 신체와의 마주침은 존재의 조건이다. 신체와 신체의 마주침이 야기하는 신체의 변화에 대한 정서적인 반응의 집합이 감응이라면, 인간만이 감응적인 존재일 리가 없다.*〉

왜 인간만 지구를 장악하고 있을까?
이해할 수 없는 때가 있다
인간을 피해 도망하는 무리와
인간을 향해 돌진하는 무리가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동물이라면
동물의 언어를 사용하는 동물은
인간이 멸종한 후 지구를 장악하고는
(절대 멸종하지 않는다고 인간은 믿겠지만)
동물의 언어로 대화하다가
악수 대신에 다리를 비비고
포옹 대신에 옆구리를 맞대면서
인간이 사용하던 언어로
대화할 수 있도록 글을 쓸 수 있도록
진화하는 법을 알아낼 것이다
(절대 진화하지 못한다고 인간은 믿겠지만)
인간의 멸종이 불가능한 까닭은
인간이 서로 간에 느끼기 때문이라는 걸 인간 스스로 알고
동물의 진화가 가능한 까닭은
동물이 서로 간에 느끼기 때문이라는 걸 동물 스스로 안다
왜 동물은 지구를 장악하면 안 될까?
이해할 수 없는 때가 있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전쟁과 학살을 보게 되는 때
인간이 인간을 못살게 하는 수탈과 착취를 보게 되는 때

* 최유미의 글 「공생의 생물학과 감응의 생태학」(〈감응의 유물론과 예술〉, 최진석 엮음, 도서출판b, 2020, 98쪽) 중에서.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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